데카르트, 근대 철학과 자연과학의 기초를 세우다
예일대학교출판부의 <A Little History of ~> 시리즈 중에 하나인, 『철학의 역사(소소의 책, 2019)를 철학고전 읽기의 나침반으로 쓰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중세철학은 건너뛰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책장을 덮었으니, 다음 차례인 데카르트에 이르렀습니다. 작년 여름에 데카르트를 건너뛰고, 파스칼의 『팡세』로 넘어갔었습니다만 그만 늪에 빠지고 말았었죠. 그렇다면 잠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싶었습니다. 마침 나이절 워버턴은 데카르트 책으로 이 책과 다른 한 권의 얇은 책을 추전하고 있었습니다.
철학자로서의 명성은 주로 자신이 알 수 있는 것의 한계를 탐구한 저서 『성찰 Meditations』과 『방법서설Discourse on Method』에서 기인한다.
- 나이절 워버턴, 『철학의 역사』, 정미화 옮김, 소소의책, 2019, 91쪽
그래서 일단 『방법서설』부터 읽어봤습니다. 이렇게 리뷰를 쓰고 있으니, 다음 타자는 『성찰』이 되겠군요.
사실 재작년에 시작한 맥락 없는 고전 읽기의 시작은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이라는 목록에 근거했었습니다. 이 목록은 주니어김영사의 만화로도 출간되어 있습니다. 1번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으로 시작했는데요, 11번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읽은 이후에는 ‘맥락’에 대한 갈증이 커졌습니다. 시대적으로도 통일되지 않고, 앞의 책과 뒤에 책의 순서는 몹시나 단락短絡해서, 다른 기준이 필요했던 거죠. 그렇게 찾아낸 새로운 맥락이 앞서 언급한 ‘교황청 금서 목록Index Librorum Prohibitorum’이었고, 여기에 덧붙여 나이젤 워버턴을 쓰게 된 겁니다. 데카르트 역시 교황청 금서목록 등재를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1667년 개정된 금서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금서목록 등재가 갖는 의미는 신이란 관념을 굴레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정신적 해방을 위해 싸웠다는 반증이란 겁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같은 시리즈의 만화도 살펴봤습니다. 아니, 만화로도 읽었습니다. 이 시리즈의 만화로 ‘예습’하는 건, 책을 이해하는데 몹시 효과적입니다. 기본적으로 만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책의 내용을 단순하게 편집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번역보다 더 품이 들어가는 일이라고 봐야 할 듯합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노력이 모인 것이 이 시리즈의 만화입니다. 선정된 도서들 자체가 쉽지 않은 책들이라, 만화를 통해서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만, 편집과 해설을 곁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길라잡이가 됩니다.
이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옮긴이의 말>에서 또다시 옮겨와 봤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합니다.
첫째, 갈릴레오 갈릴레이 종교재판 때문에 쫄아서, 자기 검열이 이루어진 책을 냈다.
둘째, 초판본은 프랑스어로 썼고 7년 후에 라틴어판이 나왔다.
셋째, 이 번역서 역시 서론 부분만 다뤘다.
9쪽
데카르트는 1633년에 《세계 혹은 빛에 관한 논고Le modne ou Traité de la lumière》를 집필하였으나, 갈릴레이Galieo Galilei에 대한 재판을 바라보면서 출간을 보류했었다.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함과 동시에 자신이 계발한 ‘방법’을 보여주고, 또 이 방법의 적용 결과를 담담하게 제시한 책이 바로 1637년에 익명으로 출간된 《방법서설》이다. 이 책은 데카르트가 처음으로 네덜란드 레이던에서 출간한 것으로, 일상인들의 독서를 도모하기 위해 당시 일상 언어인 프랑스어로 쓰였고, 데카르트가 직접 감수한 라틴어판이 1644년에 출간되었다. 이 책이 원제목은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들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서설, 그리고 이 방법에 관한 에세이들인 굴절광학, 기상학 및 기하학Discours de la méthode pour bien conduire sa raison et chercher la vérité dans les sciences, plus la Dioptrique, les Météores et la Géométrie, qui sont des Essais de cette Méthodes》이다. 그러므로 《방법서설》은 네 편의 글로 이루어진 책이지만, 본 역서는 《굴절광학》, 《기상학》 및 《기하학》을 제외한 그 서론 부분인 첫 번째 에세이만 번역했다.
16세기에는 종교개혁의 광풍이 일어났고, 이에 따라 ‘가톨릭 르네상스’라고 불릴 정도로 종교 서적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었습니다. 이에 불을 지핀 건 역시나 활판인쇄의 상업화 정착이었고, 필사본의 시대와 달리 쏟아져 나오는 ‘문건들의 홍수’에 대응하기 위해 검열과 독점도 강화되던 시기가 17세기 초반이었습니다. 교황 바울4세Paulus IV가 1559년 교황청 금서목록 초판본을 발행한 이래로 출판물에 대한 검열은 심해졌고, 그렇게 목숨까지 걸어야만 하는 학문의 자유가 이 책이 나온 시기의 현실이었습니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로마의 영향력에 굴복하고 강력한 자기 검열을 실시하며 철저하게 수정된 원고를 출판하게 된 겁니다. 4부에서 6부에 이르는 교회에 대한 아첨과 자기변호는 처절한 수준에 이릅니다. 그런 노력으로 살아생전에는 로마의 탄압을 피할 수 있었지만, 사후에는 『성찰』을 필두로 금서목록에 등재되는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뤼시앵 페브르와 앙리 장 마르탱의 역작, 『책의 탄생』에 따르면, “1640년과 1660년 사이는 도서 거래의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다”라고 합니다. 가톨릭 르네상스 시기에 쏟아져 나왔던 종교 출판물의 공급과 수요가 급감했고, 라틴어 서적의 비율이 줄어드는 만큼 자국어로 쓰인 학술서의 인쇄작업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런 경향에 발맞추어 데카르트 역시 초판본은 프랑스어로 출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만, 여전히 라틴어로 출판된 15세기 서적으로 공부를 하던 17세기 초반의 유럽인들에게는 어색했던 모양입니다. 7년 후에 라틴어 판본이 출간된 이유일 텐데요, 라틴어 판본의 수요가 훨씬 더 많았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서론 부분만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만, 다른 판본들이라고 사정이 다르진 않은 모양입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중요성은 서론 부분에서 드러나기 때문이겠지요.
제가 선택한 번역본은 무척 두껍습니다. 주해가 어마어마해서 그렇습니다. 그 덕에 프랑스어 원서 pdf파일에서 해당 구문을 찾기 쉬웠습니다. 책을 두껍게 만든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한, 함께 수록된 「정신지도규칙」도 읽지 않았습니다. 원했던 텍스트가 아니라서, 과감하게 덮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용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성찰』의 머릿말에서 발견한 이 문단으로 이 책의 위상은 설명될 듯합니다.
1997년에는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관련 저작들과 방법 관련 저작들이 각각 하나로 묶여 두 권의 선집 형태로 출판되었다. 이현복 교수가 옮긴 이 두 권의 번역본은 국내 최초의 라틴어 직역본이자 풍부한 주석이 달린 최초의 학술적 비평본이었다. 이를 계기로 데카르트에 관한 국내 연구가 한층 더 심화되고, 나아가 유럽의 근대 철학 전반에 관한 여구와 관심이 활기를 띠게 되었기 때문에 이 번역본들은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 르네 데카르트, 『성찰』, 양진호 옮김, 책세상, 2011, 12쪽.
방법서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두 가지일 겁니다.
데카르트적 회의론Method of Cartesian Dout이라고 알려진 제2부 <방법의 주요 규칙들Principales règles de la méthode>에서 천명한 네 가지 규칙들과 제3부 <도덕 준칙들Quelques règles de la morale tirée de la méthode>의 네 가지 도덕준칙maxim 말입니다.
이것으로 데카르트는 근대철학과 자연과학의 기초를 다졌다는 평가를 얻게 됩니다.
우선 방법론의 네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하나의 단락으로 모여있습니다.
37쪽
첫째는 내가 명증하게 참이라고 인식하지 않은 어떠한 것도 결코 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다시 말해, 속단과 편견을 세심히 피하는 것, 그리고 내가 의심할 어떠한 동기도 갖지 않을 만큼 명석하고 판명하게 내 정신에 나타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내 판단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었다.
둘째는 내가 조사한 어려움들 각각을, 가능한 만큼 그리고 그 어려움들을 가장 잘 해결하기 위해 요구되는 만큼, 작은 부분들로 나누는 것이었다.
셋째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쉽게 인식되는 대상들에서 시작해 조금씩, 단계적으로, 가장 복합된 대상들의 인식에까지 올라가기 위해 내 사유들을 순서에 따라 인도하는 것, 그리고 심지어 자연적으로 전혀 서로 잇따르지 않는 대상들 사잉에서도 순서를 가정하면서 내 사유들을 인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내가 아무것도 빠뜨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정도로 완전한 열거와 전반적인 점검을 어디서나 하는 것이었다.
Le premier était de ne recevoir jamais aucune chose pour vraie que je ne la connusse évidemment être telle; c'est-à-dire, d'éviter soigneusement la précipitation et la prévention, et de ne comprendre rien de plus en mes jugements que ce qui se présenterait si clairement et si distinctement à mon esprit, que je n'eusse aucune occasion de le mettre en doute.
Le second, de diviser chacune des difficultés que j'examinerais, en autant de parcelles qu'il se pourrait, et qu'il serait requis pour les mieux résoudre.
Le troisième, de conduire par ordre mes pensées, en commençant par les objets les plus simples et les plus aisés à connaître, pour monter peu à peu comme par degrés jusqu'à la connaissance des plus composés, et supposant même de l'ordre entre ceux qui ne se précèdent point naturellement les uns les autres.
Et le dernier, de faire partout des dénombrements si entiers et des revues si générales, que je fusse assuré de ne rien omettre.
도덕 준칙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43쪽
그 첫째는 내 나라의 범과 관습에 복종하고, 유년기부터 신이 나에게 교화의 은총을 베푼 종교를 확고히 견지하며, 다른 모든 것들에서는 내가 함께 살아가야 할 이들 가운데 가장 사려 깊은 이들이 실천에서 보통 받아들이는 가장 온건한 그리고 지나침에서 가장 멀리 있는 의견들을 따르면서 나를 다스리자는 것이었다.
La première était d'obéir aux lois et aux coutumes de mon pays, retenant constamment la religion en laquelle Dieu m'a fait la grâce d'être instruit dès mon enfance, et me gouvernant en toute autre chose suivant les opinions les plus modérées et les plus éloignées de l'excès qui fussent communément reçues en pratique par les mieux sensés de ceux avec lesquels j'aurais à vivre.
45쪽
내 둘째 준칙은 내 행동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확고하고 가장 결단적인 태도를 취하자는 것이었고, 가장 의심스러운 의견이라도 일단 따르기로 결정했을 때는 아주 확실한 경우 못지않게 변함없이 따르자는 것이었다.
Ma seconde maxime était d'être le plus ferme et le plus résolu en mes actions que je pourrais, et de ne suivre pas moins constamment les opinions les plus douteuses lorsque je m'y serais une fois déterminé, que si elles eussent été très assurées
47쪽
내 셋째 준칙은 운보다는 나를 이기려고, 세계의 질서보다는 내 욕망들을 바꾸려고 늘 애쓰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전적으로 우리 능력에 있는 것은 우리 사유들 외에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것에 익숙해지자는 것, 따라서 우리가 우리 외부에 있는 것들에 대해 우리의 최선을 다한 후에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모두, 우리 입장에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고 믿는 것에 익숙해지자는 것이었다.
Ma troisième maxime était de tâcher toujours plutôt à me vaincre que la fortune, et à changer mes désirs que l'ordre du monde, et généralement de m'accoutumer à croire qu'il n'y a rien qui soit entièrement en notre pouvoir que nos pensées, en sorte qu'après que nous avons fait notre mieux touchant les choses qui nous sont extérieures, tout ce qui manque de nous réussir est au regard de nous absolument impossible.
49쪽
끝으로, 이 도덕의 결론으로, 나는 이 삶에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직업들을 검토하고, 그중 가장 좋은 것을 택하려고 애쓰자는 생각이 들었다.
Enfin, pour conclusion de cette morale, je m'avisai de faire une revue sur les diverses occupations qu'ont les hommes en cette vie, pour tâcher à faire choix de la meilleur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존재론dualistic ontology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장이 바로 ‘주 팡스 동 주 쉬’입니다. 라틴어로 표기하면 cogito ergo sum이 되죠. 라틴어는 동사 활용을 통해 1인칭 대명사 없이도 ‘1인칭 단수 능동태 현재형’을 표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코기토와 숨이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할 수 있는 겁니다. 영어 표현 ‘I think therefore I Am’과도 의미상 차이는 없습니다.
55쪽
내가 그렇게 모든 것은 거짓이라고 사유하고자 하는 동안, 그것을 사유하는 나는 필연적으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에 주의했다. 그리고 나는 사유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이 진리는 너무나 확고하고 너무나 확실해서, 회의주자들의 가장 과도한 모든 억측들도 흔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나는 그것을 주저 없이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일원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Mais aussitôt après je pris garde que, pendant que je voulais ainsi penser que tout était faux, il fallait nécessairement que moi qui le pensais fusse quelque chose; et remarquant que cette vérité: Je pense, donc je suis, était si ferme et si assurée, que toutes les plus extravagantes suppositions des sceptiques n'étaient pas capables de l'ébranler, je jugeai que je pouvais la recevoir sans scrupule pour le premier principe de la philosophie que je cherchais.
단순하게 보면, 일원론인 유심론적 존재론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도 있었습니다. 존재를 지각하는 행위, 즉 사유 행위 그 자체만이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외부의 물질세계는 존재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오로지 관념의 생성이 가능한 사유의 주체인 ‘내’가 감각으로 수용하는 외부 세계의 물질을 또 ‘관념적으로 사유’ 하기 때문에 존재를 납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화에서는 영화 <매트릭스>를 가져와서 이 개념을 설명하기도 하는데요, ‘존재하기도 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물질세계’라는 모순적 상황을 ‘됐어~ 뭣이 중헌디~ 생각하는 주체인 내가 있으면 다 된 거 아냐’라며 뜬금없이 초월적인 인식론을 보여줍니다. 쉽사리 동의하긴 어려울 정도로 논리적 비약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각하는 내가 있으니까 존재니 뭐니 떠들 수 있는 거지, 그게 없다면 말짱 헛거’라는 명제는 ‘명석하고 판명’합니다. 이쯤 되면 데카르트의 방법론 4가지를 가져와서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후 기계인형automate으로 예를 들기도 하면서,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적 존재론을 설파하면서 이를 연결하는 것으로 뇌의 송과선(松果腺)을 뜬금없이 가져오기도 합니다. 현대 의학으로 밝혀진 솔방울샘의 기능은 빛 자극을 수용해서, 어두워지면 멜라토닌을 분비해 수면을 유도한다고 합니다. 데카르트 이후의 철학에서 존재론을 다루는 데 있어 좋은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과학적으로는 1도 근거가 없는 개소리bullshit임을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비겁한 변명들도 많고, 말 같잖은 개소리bullshit도 많습니다.
아무래도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한 종교재판의 영향으로 ‘추위를 탄’ 모양입니다. 자승자박의 엉터리 논리가 아닌가 싶은데요, 그래도 참 뻔뻔하게 주장합니다.
뭐, 이 정도로 ‘신을 빨아주었으니’ 교황청의 탄압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58쪽
이것을 무로부터 얻는다는 것, 이것은 명백하게 불가능한 것이고, 또 더 완전한 것이 덜 완전한 것의 귀결이고 의존이라는 것은 어떤 무언가가 무로부터 나온다는 것 못지않게 모순이므로, 그 관념을 나 자신으로부터 얻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남는 것은, 그 관념은 실제로 나보다 더 완전한 어떤 본성, 심지어 모든 완전성들, 즉 이것들에 대해 내가 어떤 관념을 가질 수 있는 모든 완전성들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어떤 본성, 다시 말해,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신이라는 본성을 통해 내 안에 넣어졌다는 것이다.
61쪽
내가 완전한 존재자에 대해 가지고 있던 관념을 조사하려고 되돌아왔을 때, 그 세 각이 두 직각과 같음이 삼각형의 관념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 또는 그 모든 부분들이 중심에서 똑같은 거리에 있음이 원의 관념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혹은 심지어 보다 명증하게 신의 현존이 신의 관념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따라서 이 완전한 존재인 신이 존재하는 것 혹은 현존한다는 것은 적어도, 그 어떤 기하하적 증명이 확실할 수 있는 만큼, 확실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62쪽
내가 방금 하나의 규칙으로 삼은 것, 즉 우리가 아주 명석하고 아주 판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모두 참이라는 이것 자체도 신이 존재한다는 것 혹은 현존한다는 것, 그리고 그가 완전한 존재자라는 것,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신으로부터 나온다는 것 때문에만 확실한 것이다.
70쪽
이 모든 것들로부터 이 세계가 내가 제안한 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끌어내고자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태초부터 신은 이 세계가 이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이 훨씬 더 그럴법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