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책을 쓰고, 왜 번역을 하나에 대한 하나의 답을 얻었다.
신상품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는 기존 상품보다 강력한 시장 경쟁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기존 상품이 제공할 수 없는 기능을 제공함으로써 소비자의 수요를 창출할 필요가 있는 거죠. 마찬가지로, 이미 여러 권의 번역본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번역본을 내놓기 위해서는 남다른 경쟁력이 필요합니다. <들어가는 말>에서 역자는 이 책의 번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13쪽
새로운 번역서를 내놓은 가장 큰 이유는 기존 번역서들을 읽다 보면 논증 구조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기존 번역서에서는 ‘왜냐하면 ~ 때문이다’와 같은 원인문이 상당히 자주, 아니 거의 한 문단에 한 번 이상씩 등장한다.
원문을 대조해 보면 이러한 경우들은 대개 라틴어 nam, enim 등을 원인문으로 번역한 예이다. 한편 데카르트는 원인문을 끌어올 때 확실히 cum, quia, quod 등의 접속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앞의 것들까지 원인문으로 강하게 번역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그래서 앞의 것들의 경우는 개개 ‘다시 말해’, ‘(자세히) 말하자면’이나 ‘예컨대’로 옮겼고, 문맥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경우에는 아예 생략하기도 했다.
역자는 이 번역 작업에서 “최명관의 1983년 본과 이현복의 1997년 본을 참고했고, 다음으로는 데카르트가 직접 감수·교정한 프랑스어본을 참고했으며, 그 외에 독일어본과 영어본도 참고했다”라고 말합니다. 20세기 후반에 출간된 많은 번역서들이 라틴어나 고대희랍어를 영어로 번역하고, 그 영역본을 일본어로 번역한 책을 대본으로 한국어 번역서를 출간했었습니다. 그래서 역자는 라틴어본을 직역하면서도 그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한 갖은 노력을 다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나 봅니다.
역자는 <일러주기 1번>에서 엘제비어르 Elzevier의 1642년 라틴어 판본을 번역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이 출판사가 ‘엘제비어르’라는 겁니다.
17세기 유럽 사회 서적출판과 판매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엘제비어르家는 현재 세계적인 학술 출판사 ‘엘스비어’로 남아 있습니다. 뤼시앵 페브르와 앙리 장 마르탱의 저서, 『책의 탄생』에서는 그 당시 “라이든 대학의 교수들도 엘제비어 가문의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출판 능력에 경의를 표했다”라고 합니다. 16세기말 레이던 Leiden대학이 성장하면서 이곳에 자리를 잡은 엘제비어르가는 대학교재 전문 서적상에서 당대 최고의 출판사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암스테르담에 새로 작업소를 낸 엘제비어는 이곳 인쇄작업소에서 프랑스와 영국의 유명 작가들이 쓴 작품을 무단으로 복제한 뒤 인쇄소의 주소를 허위로 기재해 조직적인 영업망을 통해 유럽 전역으로 유통시키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다만 시대적 환경을 고려하면, 이런 약탈행위가 저자의 목숨을 붙여놓는 데엔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저자의 관점에서 저작권은 양날의 검과 마찬가지였다. 저자의 경제적 지위를 높여준다고 약속하면서도 불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저자를 텍스트와 묶어두었다. 국가와 왕실이 저작권에 개입하는 가장 큰 법적인 동기는 신성모독, 선동, 명예훼손과 관련된 법의 집행을 위해서였다. 특정 텍스트의 원작자로 추정되는 개인을 파악함으로써 금지된 사상에 대한 형벌을 내릴 수 있었다.
- 시몬 머리, 「저자성」, 『옥스퍼드 출판의 미래』, 정지현 옮김, 교유서가, 2024, 94쪽.
역자는 해제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젊은 시절의 저는 번역서들에 붙어 있는 해제는 잘 읽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그다지 도움이 되지도 않는 내용의 해제를 통해 책의 페이지수만 늘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90년대에 본격적으로 해제가 달린 책들을 읽기 시작한 탓이 큰 것 같습니다. 열악한 출판 환경에서 초판본 번역이 이루어지던 때라서 그랬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이전에는 일본어 번역본을 중역하는 방식으로 나온 조악한 책들의 횡포도 한몫했을 테고요.
그래도 나이를 먹은 탓일까요, 요즘은 해제를 좀 읽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조금 더 잘 이해하자며 만화책을 찾아 읽을 정도이니, 해제가 달려 있다면 읽어보는 게 제게도 득이 되지 않겠습니까? 역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번역 과정에서 이 책의 해제가 이러한 안내서가 되었으면 하는 욕심도 생겼다”라고 말합니다. 번역만큼 공을 들였으니, “데카르트를, 혹은 데카르트의 《성찰》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곧장 본문으로 들어가는 것도 좋겠지만, 이에 앞서 해제를 따라 그의 시대와 사상 전반에 한번 익숙해져 보기를 권하고 싶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역자의 진심 어린 충고에 귀 기울여 볼 만합니다.
1637년 프랑스어로 《방법서설》을 출간했던 데카르트는 1641년 라틴어 저작 《성찰 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을 출간했습니다. “《방법서설》 제4부에서 문제 제기 정도로 그쳤던 내용들을 바로 이 책으로 확장시켰다”는 겁니다.
이 책의 시작은 <헌사 Epistola>로 시작합니다. 파리대학 신학부 교직원에게 보내는 절절한 학문적 지지 요청은 궁색함을 지나 절절할 정도입니다.
20쪽
그러나 내 논증이 아무리 명백하고 확실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철학에 속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지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큰 성과를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Atque ideo qualescunque meae rationes esse possint, quia tamen ad Philosophiam spectant, non spero me illarum ope magnum operae pretium esse facturum,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얻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헌사 첫 시작부터가 불온하기 그지없기 때문입니다.
17쪽
‘신이 실존한다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성서 Sacra Scripura》가 이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거꾸로 뒤집어서 ‘《성서》는 참되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신으로부터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는 말들은 전적으로 옮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옳은 말들이라 하더라도, 이런 것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내놓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것을 순환논증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다른 신학자들 모두는 신의 실존이 자연적 근거에 따라 증명된다고 단언합니다.
Et quamvis omnino verum sit, Dei existentiam credendam esse, quoniam in sacris scripturis docetur, et vice versa credendas sacras scripturas, quoniam haben|tur a Deo: quia nempe, cum fides sit donum Dei, ille idem qui dat gratiam ad reliqua credenda, potest etiam dare, ut ipsum existere credamus; non tamen hoc infidelibus proponi potest, quia circulum esse judicarent. Et quidem animadverti, non modo vos omnes, aliosque Theologos affirmare Dei existentiam naturali ratione posse probari
이런 살 떨리는 주장을 대놓고 편들어달라고 말하면, 그 누구도 쉽게 말을 보태기 어려울 겁니다. 오히려 매도하는 게 보신에 도움이 되겠지요. “370년 전 이 책은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책이었을 것”이란 역자의 말이 단박에 이해됩니다. “내용이 어렵다기보다는 불경스러워서 읽는 사람들이 때로는 기가 차고 때로는 읽는 것만으로도 벌을 받지 않을까 두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평가에 격하게 긍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서무오성과 교황무류성이 지배하는 사회였고, 1600년에는 조르다노 브루노 Giordano Bruno가 종교재판을 통해 화형을 당할 정도로 로마 가톨릭의 반동성이 격회된 시기이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역자는 이 책이 지식인들로부터 별다른 호응을 받지는 못한 듯하다고 평가합니다. “이 책을 계기로 데카르트의 철학은 본격적으로 ‘새로운 철학’이라는 칭호를 얻었지만, 그 새로움이 필화를 초래해 네덜란드에서 데카르트의 입지는 좁아지기 시작했다”라고 정리합니다. 우선 위트레흐트대학에서 퇴출당합니다. 이곳의 학장인 헤이스베르트 푸트 Gijsbert Voet는 데카르트의 철학이 아리스토텔레스에 반하는 철학이라며 자기 대학에서 이 ‘새로운 철학’에 관한 강의를 금지시켰습니다. 1647년에는 제자 레기우스가 변심해 그의 사상을 비판하는 소책자를 출판했고, 1648년에는 레이던 대학까지 그에 관한 강의를 금지했습니다.
데카르트가 이렇게 궁벽진 처지에 놓이게 된 건 시대적 상황으로 설명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역자의 해제가 큰 도움이 됩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시작된 인문주의는 16세기와 17세기의 비약적인 과학 발전을 가져왔고 이는 <과학혁명>이라고도 불리며 유럽사회는 중세를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동전의 반대편에서는 전쟁이 계속됐습니다. 위그노전쟁이라 불리는 프랑스 종교 내전이 발생하고, 앙리 4세가 가까스로 정리하지만 이내 암살당하면서 30년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이로써 유럽은 혼돈에 빠졌습니다. 역자는 “종교적 관용과 철학적 회의주의의 현실적 불가능성을 전 유럽에 알리는, 일종의 시대적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하면서,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대륙의 철학사는 이것이 옮고 저것도 옳다는 식의 양시론이나 타인의 가치관에 관해 신중하게 접근하는 회의주의를 배척하고 양자택일과 확실성, 수학과 같은 정답, 단도직입적 확신, 다소 배타적인 독단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급격히 전환된다”라고 설명합니다. 이로써 데카르트가 파리를 떠나 네덜란드를 전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명석 판명하게 clara et distincta’ 설명됩니다.
방법서설을 읽으면서 데카르트 이원론에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https://brunch.co.kr/@pdahnchul/194
그래서 이 책을 펼쳐든 것인데요, 『성찰』을 읽어도, 유심론적 세계관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환장할 노릇입니다. 영화 <메트릭스>에서처럼, 빨간약을 먹고 현실을 인식하고 싶은데요, 데카르트는 모피어스가 아니었습니다.
독자를 위한 서언 Praefatio ad lectorem에서 데카르트는 “나보다 더 완전한 사물의 관념이 내 안에 있다는 전제로부터 이 사물이 실제로도 실존한다는 결론이 어떻게 도출되는지는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라고 했지만, 마지막 문장에 이르러서도 전혀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생각하는 사물이다 Ego sum res cogitans”는 선언 이후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유심론에 갇혀버렸습니다. 여기에 ‘신의 실존’이라는 증명할 수 없는 사실에 집착하면서 논의는 산으로 갑니다. 『철학의 역사』(소소의 책, 2019)를 통해, “선한 신이라는 존재의 확실성이 없었다면 데카르트는 자신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것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었을 것”이라 여러 철학자들이 비판했다는, 나이젤 워버턴의 전언은 높은 설득력을 얻게 됩니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은 무심한 확신을 내놓았을 때는, 제게 빨간약을 건네줄 모피어스를 간절히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32쪽
신은 사기꾼이 아니라는 것으로부터 내가 이런 경우에 결코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처리에 쫓기는 우리로서는 이런 것들을 주의 깊게 검토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인생은 각각의 경우에 오류에 예속되어 있음을 나는 고백할 수밖에 없으며, 또 우리 본성의 연약함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Ex eo enim quod Deus non sit fallax, sequitur omnino in talibus me non falli. Sed quia rerum agendarum necessitas non semper tam accurati examinis moram concedit, fatendum est humanam vitam circa res particulares saepe erroribus esse obnoxiam, et naturae nostrae infirmitas est agnoscen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