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과 정치 성향의 상관관계,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번역서 제목 때문에 이 책에 주목했지만, 막상 책을 읽고 보니 번역서의 제목은 책의 내용과는 ‘상관관계’가 없었습니다. “타고난 성향: 진보와 보수 그리고 정치적 차이의 생물학”이란 원서 제목만 살펴봐도 쉽게 드러납니다.
이 책에서는 ‘타고난 성향’으로 번역하고 있는 predisposition이란 단어는 nature와 마찬가지로 천성으로 번역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둘이 똑같은 의미를 지니는 건 아닙니다. 다른 단어로 존재한다는 것은 언어학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Predisposition은 ‘특정 상태에 빠지기 쉬운 타고난 또는 후천적 경향’을 의미하니다 보니, 우리말로는 ‘素因, 性向, 傾向’과 같은 한자어로 번역하는 게 낫습니다. Nature는 ‘인간 또는 사물의 타고난 성격이나 본질’을 의미하다 보니 ‘本性, 天性, 器質’과 같은 번역이 더 나을 테고요. (이상은 챗GPT나 제미나이 같은 생성형 AI의 조언입니다.)
저자들은 이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습니다.
32쪽
타고난 성향 Predispositions은 운명 destiny이 아니다. 타고 난 성향은 일종의 기본값으로서 상황에 따라 채택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본 책에서는 ‘운명적 fated’이 아닌 ‘타고난 성향 predisposed’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처럼 타고난 성향이 이후의 태도와 행동을 한쪽 성향으로 기울이게끔 하기에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저자들이 이 책을 쓴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정치성향은 양육(nurture)되는 것이 아니라, 본성(nature)에 가깝다는 겁니다. 물론 'nature versus nurture' 논쟁을 다시 가져오는 걸 피하기 위해, predisposition이란 개념을 가져왔음 또한 강조합니다.
14쪽
정치성향을 결정하는 주된 요소가 정보와 논리, 설득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특정한 역학이 좌우한다면 어떨까? 많은 이들이 공공연한 정치 경험을 하기도 전에 보수나 진보, 또는 도널드 트럼프 같은 사람들에게 이끌리는 심리적, 생물학적 성향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이상의 내용이야말로 우리가 주장하는 바이며, 정치적으로 타고난 성향의 존재를 입증할 증거이기도 하다.
다만 이런 주장을 입증하는 건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이들의 주장을 입증하기에는 너무 먼 타인의 연구 자료를 원용하다 보니 2차 자료의 한계에 쉽게 부딪힙니다. 그리하여 ‘상관관계’가 존재할 수 있겠다는 연구의 着意點은 포착할 수 있었으나, ‘인과관계’를 도출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침내 다음과 같은 맥 빠지는 진술도 나오게 됩니다.
291쪽
여기에서는 지금까지의 내용과 다르게 뒷받침할 실증적 증거를 제시할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유전적 인척 관계의 정치적 유사성은 순수한 사회화의 결과”로. “부모가 자녀에게 정치적으로 보수나 진보 진영에 속하도록 교육한 결과일 수도 있다”는 점도 인정하고 맙니다, 그저 “유전적 영향력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그 원인이 유전자인, 가정환경인지, 아니면 이들이 총체적으로 발현된 결과인지는 불확실하다”는 중얼거림을 멈추지 않을 뿐입니다.
종국에는 “때로는 본성과 양육을 분리할 수 없는 개념임이 분명해진다”는 하나마나했던 주장의 이면을 스스로 공개하고 맙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억지라서 그렇습니다.
47쪽
정치 성향이 생리인지적 성향과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넓고도 깊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면 기존의 두 주장을 버려야 한다.
첫째는 모든 정치가 역사적, 문화적으로 독특하다는 주장이다. 정치에 특수성이 있다면 정치 분열과 패턴, 관점 등을 일반화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두 번째는 인간의 신체적 특질은 분명히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근원적으로 동일한 심리적, 정서적, 인지적 구조를 공유한다는 주장이다. 모든 인간의 구조가 같다면, 정치 성향의 차이도 종이 한 장의 두께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정치 성향은 생리인지적 요소와 무관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시작부터 공염불이 아닐까 싶어서, 책장을 덮어버릴까 고민했었습니다. 같은 고민은 책장을 덮을 때까지 10번 넘게 반복하고 말았습니다. 다음과 같은 주장을 마주칠 때마다, 도무지 동의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150쪽
인간은 분명히 선천적 기질을 타고나는 듯해 보이며, 이 우연한 발견을 체계적인 증거로 뒷받침한다. 그리고 기본 가치관과 도덕 기반은 문자 그대로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것으로 여겨지며, 우리의 삶에서 일찌감치 형성, 지속되어 정체성을 나타내는 주된 특징이 된다. 그와 대조적으로 정치 성향은 우리의 발달 과정에서 더 늦게, 더러는 그보다 훨씬 늦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이며, 주요 정체성에서 부차적인 요소로 여겨왔다. 그러나 결과는 원인보다 앞설 수 없으므로, 인과관계의 방향은 개인에서 정치로 흐를 뿐, 그 반대일 수는 없다.
타고난 성향과 정치 성향과의 상관관계를 조명하려는 이들의 노력에 흥미로운 지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다음과 같은 지적은 눈길을 끕니다.
116쪽
정치는 모든 대규모 사회 구조에서 공통으로 발생하는 근본 쟁점을 다루며, 인간관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사람은 행동과 연결되는 독특한 성향을 타고나며, 이 성향은 정치 문제에 선호하는 해결책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정치와 연관된 성향은 상호 연결된 심리적 지향과 취향, 인지 패턴, 생리 반응, 유전적 특징으로 네 가지가 있다.
그렇다 보니 “구제적인 내용은 아직 연구 중이지만, 정치 성향에 따른 뇌의 차이는 존재한다”는 억지스러운 주장을 아예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치 성향’을 다른 말로 치환한다고 해도, “성격, 집중력, 인지 편향 등과의 연관성을 제시하는 기존 연구 결과와 대체로 일치”하기도 합니다. 그렇다 보니 ‘상관관계’는 쉽사리 부정되지 않고 책이 되어 나온 것이겠지요.
12쪽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 지향점이 반대인 사람들과 정치적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의 원래 목적은 아니었으나, 저자들은 서문에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이에 대한 저자들 나름의 설명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책은 개정판이지만, 초판에서는 서문 없이 바로 제1장이 시작됩니다. 역사학자 클린터 로시터가 1960년대 어느 파티장에서 했던 말을 하나의 경구로 정리해서, 민주당원과 공화당원의 특징을 설명합니다. 서로 건널 수 없는 강을 사이에 두고, 완전히 대척점에 선 것 같은 형용사가 양측에 부여됩니다. 그리하여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18쪽
정치란 유혈 스포츠나 다름없다. 격투기 선수의 주먹질만큼이나 관중의 싸움 또한 격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치 논쟁은 이성적, 분석적이기보다 감정적이고 원초적인 경향이 있다.
저자들은 “정치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며. “자신의 견해는 인정받고 싶어 하면서 상대방은 깎아내리려 든다”라고 말합니다. 특히나 ‘동기화된 추론 motivated reasoning’을 통해서, “우리의 추론은 원래부터 각자가 원하도록 타고난 바를 따른다”는 겁니다. 여기에 “개인이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른 감각과 인식, 정보 처리 체계로 구성”되기에, “같은 그림을 다르게 보고, 같은 농담이라도 다르게 듣고, 같은 얼굴도 다르게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 George Lakoff의 주장에 따르면, 보수주의자는 ‘엄격한 아버지 strict father’의 언어를 쓰는 반면, 진보주의자는 ‘자애로운 부모 nurturing parent’의 언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런 언어적 차이가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한 것이죠.
그렇다 보니 정치적 성향을 바꾸는 것은 “거대 유조선을 조작하는 일과 비슷하다”라고 평합니다. 바꿀 수는 있겠지만, 바꾸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거죠.
344쪽
정치적 반대자가 특정한 관점을 지니는 주된 이유는 게으름이나 정보 부족, 고의적인 오판도, 이들이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바로 당신과 근본적으로 다른 생리적, 심리적 특성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이 그들과 성향이 같다면, 정치적 견해 역시 비슷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니 당신은 믿어야 한다. 당신에게는 올바른 생각이더라도, 모두에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당신의 생각에 겸손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같은 현실을 경험하지도 않을뿐더러 이상적인 사회 구조에 대한 인식 또한 저마다 다르다. 따라서 당신이 믿는 이상 사회가 모두에게 최선이 될 수 없다는 점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사람이 세상 속에 경험하고 바라는 방식이 같다면, 당신의 신념이 보편적으로 타당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으므로, 겸손이 이 세계의 바탕에 자리해야 한다.
참 맥 빠지는 결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언가 대단한 것이 숨겨져 있는 것처럼 시작했지만, "미안~ 아직 제대로 된 연구가 없어서 잘 밝혀낼 순 없었어~ 그래도 아름다운 시도였잖아, 한 잔 해~"로 끝난 기분입니다.
여기에 번역은 다소 엉터리가 보이는 편이고, 편집 디자인도 통상의 범위를 벗어나다 보니, 여러모로 책이 조잡스럽습니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원활한 독서에 적잖은 방해가 되곤 합니다. 그렇게 삼중고를 겪은 독서였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이런 삐딱선을 타게 되더군요. 다음 기술을 접하고 난 뒤에, ‘이러다가는 MBTI별 정치 스펙트럼 분석도 가능할 듯’이라고 비야냥 댔습니다. 심지어는 챗GPT에게 MBTI별 정치 성향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질문을 던지기도 했는데요... 맙소사, 답변을 해주더군요.
148쪽
물론 정치 성향과 성격 특징, 그중에서도 개방성과 성실성이 앞서 언급한 모든 일상적 취향과 선호와 연관되기는 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정치 성황과 셩격 특징 사이에도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새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