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짜증을 낼 수 있다
트렌드 분석서를 꾸준히 읽는 이유, 별 거 없습니다.
여섯 해쯤 되니, 트렌드 분석서가 다루는 트렌드란 것이 무엇인지 감을 잡았습니다. 그러니 부족한 부분도 보이기 시작했고, 그래서 생기는 불만도 늘어났네요.
그러니 슬슬 짜증이 납니다. 억지스러운 범주화에 부적절한 사례를 구겨 넣은 게 가장 큰 불만입니다.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짜증은 앞부분의 리뷰입니다. “거 봐, 내 말이 맞았지?”라며 젠체하는 꼴이 하도 가관이라서 그렇습니다. 바넘 효과에 기댄 레트로피팅에 짜증이 솟구칩니다.
불가해성 impenetrability은 점술사에게 중요한 요건인 것 같다. 이는 각자가 예언을 자신의 상황에 맞게 해석하게 하고, 일이 예상대로 풀리지 않으면 청원자가 예언을 잘못 해석한 탓으로 몰게 해 준다.
- 로빈 던바, 『신을 찾는 뇌』, 구형찬 옮김, 경기도 파주: 아르테, 2025, 76쪽.
AI
데이터 학습으로 지능적 판단·생성을 수행하는 소프트웨어 시스템
업무·생활 전반에 필수 기술로 자리잡으며 다양한 산업으로 확산
K뷰티
한국산 화장품과 뷰티 제품을 중심으로 형성된 산업·문화
품질·속도·가성비가 강점
자가진단 테스트
성격·기질·성향을 간이 문항으로 분류하는 심리 도구
MBTI, 에겐-테토 등 자기 이해 및 정체성 표현 수단으로 활용
저속노화 식단
노화속도를 늦추고 만성질환 에방을 위한 건강식 패턴
노화 완화뿐 아니라 건강한 습관과 자기 돌봄의 철학으로 확산
가족 갈등 프로그램
부부·육아 등 가족 관계를 관찰 형식으로 다루는 리얼리티 예능
공감 요소와 사회 인식 변화로 수요 지속
야구 구단 콜라보
프로야구 구단과 브랜드의 협업으로 제작된 굿즈
KBO 열풍과 여성·Z세대까지 팬층 확대
러닝
체력·건강·정신적 회복을 추구하는 달리기 활동
셀프케어·힙한 라이프스타일, 펀러닝 중심의 커뮤니티 활성화
가상 아이돌
AI·3D 기술로 구현된 디지털 기반 가수·퍼포머
팬덤과 엔터 산업 전반에 영향력 확대
꾸미기 아이템
개인 소지품·디바이스를 장식해 개성을 표현하는 아이템
‘별다꾸’ 열풍, 오프라인·디지털 꾸미기 시장 증가
계절템
특정 계절과 기후 상황에 맞춰 사용되는 기능성·패션 아이템
기후변화로 양산·레인부츠 등 계절템이 일상 필수템으로 부상
마케팅 차원에서 세분시장 Segmentation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거나, 미래 수요 예측이나 사업 기회 탐색을 위한 경영 전략 수립의 전단계로 존재하는 거죠.
그렇다 보니 크게 세 가지 정도를 분석하게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기술과 상품의 트렌드를 분석합니다. 이 기술은 어떤 상품을 만들어 내서 상용화가 가능한지 분석하거나, 이미 상용화가 이루어졌다면 어떻게 마케팅할지를 고민하고, 상용 서비스가 정착되어 파생 시장이 생성됐다면 어떤 기회가 있을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는 소비자 자체를 분석합니다. 소비자의 인지·감정·정체성·사회적 관계·문화적 맥락이 어떻게 선택과 행동으로 연결되는지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두는 듯합니다. 세 번째로는 마케팅 방법론 그 자체에 대한 분석, 그러니까 유효했던 마케팅 전략이나 향후 필요한 마케팅 전략 같은 것들이 분석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트렌드 코리아 2026』도 마찬가지라서 10개의 주제들을 다시 세 가지로 범주화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렇다고 1대 1로 조응하며 적확하게 분류될 순 없습니다. 이미 이 책에서 각 주제를 다루면서 일종의 현탁액 상태로 만들었기에, 하나의 거름종이로 완벽하게 걸러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리뷰를 편히 쓰기 위해 다소 자의적으로 가져온 장치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올해 이 책에서도 <휴먼인더루프 Human-in-the-loop>, <제로클릭 Results on Demand: Zero-click>, <AX조직 Efficient Organizations through AI Transformation>이란 주제를 다루면서 AI를 이야기합니다. 물론 세 번째 주제의 경우는 AI와는 별 상관없는 조직문화와 인사기획에 대한 담론이긴 합니다.
우선 ‘휴먼 인 더 루프(Human-in-the-loop, HITL)’는 “인간이 자동화 시스템의 운영, 감독,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스템 또는 프로세스를 의미”합니다.
현재 상용화된 AI라면 생성형 AI의 검색 서비스를 들 수 있는데요, 이 서비스의 가장 큰 문제 두 가지가 바로 할루시네이션과 윤리입니다. 거대언어모델을 통해 학습한 생성형 AI의 답변은 대체로 질문자의 의도에 부합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확한 근거’ 대신에 ‘그럴듯한 핑계’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잦습니다. 생성형 AI의 답변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책이나 판례를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이럴 때 전문가의 리뷰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전문가들이 손 놓고 있는 경우가 있어서, 꽤나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거죠. 김용섭의 책에서처럼 ‘휴먼 터치’나 한가롭게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래서 다음과 같은 연구 결과가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54쪽
하버드대학교 파브리치오 델아쿠아 Farizio Dell’Acqua 연구팀은 2023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AI가 가진 ‘불규칙한 기술적 경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고숙련 노동자가 생성형 AI를 그 능력의 경계 내에서 사용하면 생산성이 약 40% 향상되지만, 능력의 경계 밖에서 사용하면 오히려 19% 감소한다는 것이다. 특히 AI는 특정 작업에서는 뛰어나지만 또 다른 작업에서는 크게 뒤처지는 ‘불규칙한 기술적 경계’를 보인다. 사용자나 작업 분야에 따라 AI의 성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제로 클릭’의 개념에서부터 이로부터 도출되는 담론들은 꽤나 엉터리인 편입니다.
제로 클릭 시대에서 트렌드 분석서가 가장 먼저 주목할 부분은 GEO가 되는데요, 이 부분은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6』의 <서치 레볼루션>이 잘 다루고 있습니다.
제로 클릭 시대에도 마케터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선택의 역설’입니다. 쉬나 아이엔가가 ‘잼 실험’을 통해 증명했듯이, 인간은 4~6 사이의 선택지가 놓인 상황을 선호합니다. 물론 우리 인간은 상황을 보다 단순화해서 인식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아예 3지 선다와 같은 더 간명한 선택지도 잘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대체로 제로 클릭 시대에 제공되는 답변이나 커스터마이징 서비스의 대안들이 그런 방식으로 제공됩니다. 이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 단일 대안 회피 single option aversion 성향입니다. 사람은 다양한 선택지 앞에서 불안함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대안이 아예 제시되지 않으면 꽤나 큰 반감을 느끼게 됩니다. 내비게이션의 길안내조차도 ‘실시간 추천’을 가장 앞에 두고, 큰길 우선, 무료 우선, 거리 우선과 같은 선택지를 제공합니다.
‘AX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인사관리’는 쓸데없이 건드리지 말고, 그냥 경영학자에게 맡겼으면 좋겠습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개념을 차용해서 AX라는 얼토당토않은 개념을 말하는 것도 어처구니없지만, 현대 축구에서 그 누구도 다루지 않는 ‘네덜란드 토털 사커’ 타령을 보면서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여기에 20년 전부터 풍문처럼 떠도는 ‘파이π형 인재’를 말합니다. π형 인재 담론은 표면적으로는 '융합'과 '복합 역량'을 강조하는 진보적 언어를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노동 현실과 전문성이란 개념 그리고 시간의 물질적 조건을 무시한 이데올로기적 구성물에 가깝습니다. 전문성이란 능력의 집합이 아니라 시간의 누적입니다. 하나의 직역에서 장기간 몰입해서 체화된 현장적 맥락을 우리는 전문성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두 개의 전문직에서 동시에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동일한 시간에 두 개의 장기 몰입을 요구하는 불가능한 조건을 전제합니다. 개소리란 거죠. 20년 전부터 이런 개소리가 가능해졌던 이유는 기업의 노동생산성 제고를 위한 술책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 이후 남아 있는 노동자에게 1인 다역을 강요해야 했던 현실적 요구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명백히 조직의 구조적 무능을 개인화하는 담론에 불과합니다.
이 책에서도 언급한 스포티파이의 조직 구조가 좋은 반증이 됩니다. T자형 인재를 제대로 활용하면서도 그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조직 구성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파이형 인재를 언급할 자리는 없습니다.
이 책이 올해 다룬 <필코노미 Oh, my feelings! The Feelconomy>와 <프라이스 디코딩 Observant Consumers: Price Decoding>를 읽어 보면 보다 확실해집니다.
<필코노미>는 소비자의 보상 소비 compensatary consumption를 중심으로,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를 이상하게 섞고 있습니다.
<프라이스 디코딩>에서는 선사시대부터 호모 사피엔스가 해왔던 행동인 가격 분석을 다룹니다.
가격이란 사용가치, 교환가치, 노동가치, 희소가치 등 다양한 층위와 맥락의 가치를 표지하기에, 가격을 분석하는 행위는 늘 존재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행동이 대단한 합리성에 기반하는 것도 아닙니다. 행동경제학의 문을 열었던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츠기가 제안한 시스템 1과 시스템 2의 사고 패턴 중에서 거의 시스템 1을 활용합니다. 여러 휴리스틱을 활용해 빠르고 단순하게 판단을 한다는 거죠. 물론 시스템 2가 동원되는 경우도 없진 않은데요, 그런 상품을 우리는 고관여상품이라고 부릅니다.
가장 어이없는 언급은 이런 것입니다.
304쪽
그렇다면 현대의 소비자들은 어떤 브랜드에 가치를 부여할까? 중요한 요소로 헤리티지, 신뢰성, 희소성을 꼽을 수 있다.
이런 건 정량적으로 지각되는 가치 요소가 아니라서, 전문가들도 정량화하기 어렵습니다. 저관여상품을 시스템 1로 구매하는 보통의 소비자들에겐, ‘그냥 어떤 느낌적인 느낌’에 불과할 수 있죠. 그래서 기업들은 그런 근거 박약한 판단 기준을 소비자에게 각인하기 위해 광고나 PR을 이용해 기업 이미지를 만들어 내죠.
312쪽
과거 산업 시대에 기업과 소비자 사이에는 거대한 ‘정보 비대칭성’이 존재했다.
하지만 디지털 경제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 소비자들은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담은 ‘디지털 백과사전’을 가자의 손안에 쥐고, 언제 어디서든 가격표 뒤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칠 수 있게 됐다.
마찬가지입니다. 운동장은 여전히 기울어져 있고, 수백 페이지의 시방서를 개나 소나 들여다본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더더욱 전문화된 시대에 정보 문맹이 된 상태죠.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상황이란 거죠. 소비자를 ‘개나 소’ 정도로 무시했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겠지만, 과대평가해서 자원을 낭비할 이유도 없습니다.
<레디코어 Self-directed Preparation: Ready-core>, <픽셀라이프 Pixelated Life>, <건강지능 HQ Widen your Health Intelligence>, <1.5 가구 Everyone Is an Island: the 1.5 Households>, <근본이즘 Returning to the Fundamentals>와 같이, 언제나처럼 다루었던 분석 대상에 ‘라벨 갈이’하는 것으로 변주합니다. 그래서 늘 그러하듯이, 갈아치운 라벨에는 신경 쓸 이유가 없습니다만, ‘변주’된 부분만큼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겠지요.
<레디코어>는 언제나처럼, ‘열심히 산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의 <모닝 레이브>이나, 『라이프 트렌드』의 <블루칼라 로망> 같은 엉터리들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막스 베버가 정리한 바와 같이,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정착된 이래로 자기 절제와 성실은 미덕으로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마이클 샌델의 지적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을 위한 자기 계발은 적극 권장되는 능력주의 사회의 중심 가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연장선에서 개인의 성공과 실패가 개인의 노력으로 귀속되는 능력주의적 사고가 만연한 요즘에는 ‘끊임없는 자기 계발의 서사’가 ‘윤리적’이라고 평가받게 됩니다. 그러니 언제나처럼 열심히 산다는 자기 증명에 열을 올리게 됩니다. 그러니 매년 변주되면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주제입니다.
<픽셀라이프>는 작명 센스가 문제라고 봅니다.
하나의 개념에 아무거나 죄다 때려 박는, 그 억지스러움도 문제긴 마찬가지입니다. 관계성이 없는 현상들을 억지스럽게 나열하기만 하면, 맥락을 형성할 수 없습니다. 용질을 용매에 녹여낸 용액이 아니라, 그전 혼재한 상태인 ‘흙탕물’일 수밖에 없다는 거죠.
소분모임을 다룸에 있어서는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에 미치지 못하나, 경험경제를 다룸에 있어서는 『라이프 트렌드』보다 나은 듯합니다. 문제는 이것들이 하나로 묶이기엔 너무 거리가 먼 소주제들이란 것이겠지요.
<건강지능>처럼, 건강 팔이는 매년 지치지도 않고 또 옵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무병장수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이니까요. 적당히 포장지 바꿔서 또 팔아먹으면 장땡이다죠.
<1.5 가구>처럼, 세대론과 생애주기를 섞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1인가구는 매년 증가하고 있고, 생애주기별로 변화하는 라이프 사이클도 그에 맞춰서 변화하고 있습니다.
1인 가구의 증가 원인은 ‘가족 가치의 약화’, ‘개인주의 심화’, ‘비혼자 증가’, ‘고용불안 및 경제여건 악화’ 등 크게 4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원인들이 상호 강한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 가치의 약화는 비혼자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비혼자 증가는 다시 가족 가치 약화에 영향을 미칩니다. 또 고용 불안 및 경제여건 악화가 비혼자 증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그렇게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되니 개인주의 또한 심화될 수밖에 없고, 그리하여 이혼으로 인한 1인 가구 증가도 발생하게 됩니다. 이렇게 설명하고 보니 무슨 ‘퍼펙트 스톰’ 같습니다.
올해는 1.5 가구로 변주해 봤는데, 너무 억지스럽더군요. 모든 개소리 bullshit가 그러하듯이, 이 억지스러운 내러티브를 만들어 내느라 이 장에 할당된 페이지를 전부 소진하고 말았습니다. 그냥 막 섞는다고 다 짬뽕이 되는 건 아닙니다. 진짜 맛있는 짬뽕은 다들 제대로 된 레시피가 있음을 주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근본이즘>은 레트로 트렌드의 변주라고 볼 만합니다.
이 장에서도 아무거나 막 때려 넣어서 서로 섞이지 못했지만, 이 난장판에서 뭐라고 하나는 건져야 하겠지요. 최근의 레트로 트렌드는 둘 이상의 시대에 대한 레트로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일본에서 ‘쇼와 레트로’와 ‘헤이세이 레트로’가 병존하면서도, ‘바우하우스 디자인’에서 보이는 모더니즘과 아날로그 감성도 풍부하게 재해석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래도 각 세대를 만들어낸 동시대성 Gleichzeitkeit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별로 다르게 작동할 수밖에 없는 동시대의 비동시성 Ungleichzeitkeit des Gleichzeitigen 때문이겠지요. 매년 사람은 새로 태어나고, 그 사람들은 동시대를 살면서 동일한 경험을 하며 동시대성을 획득하고, 그렇게 생애주기별 발달 단계를 거치면서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자기 세대만의 시간을 살아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