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의 분류 기호는?

읽은 책의 합당한 분류기호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

by 안철

얼마전에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책을 도대체 어디로 분류해야 할까, 고민하게 됐습니다.

책을 쓴 슈테판 클라인은 물리학 박사이면서 잡지의 전문기고가이면서 9권의 책을 출판한 열정적인 저술가이익도 합니다. 그런데 책의 내용은 사회학과 심리학의 주변에서 맴돕니다.

한국십진분류법 제5판에 근거해서 정리한다면, 180이나 330의 언저리가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게 맞나 싶을 때는 확인해 보면 그만입니다.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국립중앙도서관입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ISBN 등 서지정보등록을 관리하면서 '납본시스템'을 운영합니다. 출판을 하려는 책은 국립중앙도서관에 2권을 납본하는데, 한 권은 보존용으로 다른 한 권은 열람용으로 제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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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본이 완료되었으니,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이 책을 어떻게 분류했을지를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그런데... 검색이 되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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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클라인으로 검색해봐도 이 책이 나오질 않습니다. 이런 일은 좀체 벌어지지 않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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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참 난감합니다. 도대체 이 책을 분류하려면 누구의 경험을 빌려야할까요?

국립중앙도서관이 아니라면, 그 댜음으로 공신력 있는 도서관이 어디일까 고민했습니다. 국회도서관이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찾아봤다가, 골이 띵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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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1이라니요?

국회도서관의 청구기호가 곧바로 한국십진분류인 것은 아닙니다만, 분류번호 158.1은 KDC를 따릅니다. 그러니 이 책의 분류는 '158 서남아시아 제국철학, 사상'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것으로 할당된 겁니다. 차라리 '185 생리심리학'이라도 됐으면 말이라도 안 하겠지요.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한달 전에 검색했을 땐 없었던 동네 도서관의 분류기호는 더 가관입니다.

'511 기초의학'이 차라리 심리학에 더 가깝긴 합니다만, 이 정신나간 분류에는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아무래도 '뇌'란 책 제목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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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면 될 일이다 싶었습니다.

도대체 이 책의 제대로 된 분류기호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망연자실해 있다가 다시 또 든 생각이,

우리나라에서 국립중앙도서관이 하는 일을, 독일이라고 안 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독일국립도서관 Deutsche Nationalbibliothek 홈페이지로 가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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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데 제가 독일어를 모르는군요. 고등학교 때는 제2외국어로 조금 배웠던 게 3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기억날 리가 없습니다. 차라리 배워본 적 없는 불어가 조금 더 익숙한 편이니까요.

그렇다고 크게 문제될 건 없습니다.

요즘 웹디자인은 '유니버설 디자인(장애의 유무, 성별, 나이, 국적, 정치적, 종교적 다름을 어떠한 차이 없이 모두가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고려한 디자인)'에 기반하기 때문에 아이콘만 잘 따라가도 이용에 큰 불편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크롬이란 브라우저가 있고, 수틀리면 한글로 번역하면 그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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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우측 상단에 돋보기 모양의 아이콘을 활용하면 검색이 가능한데요, Suche라는 독일어 명사에는 좀 친숙한 편입니다. 라틴어를 어원으로 하지 않은 독일어 단어 중에서 제가 그 뜻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일단 검색창을 열어서, 대충 알고 있는 저자 이름과 책의 독일어 원서명인 'Aufbruch'를 넣어봤습니다.

바로 책 표지 이미지가 뜨면 좋겠지만, 일이 매번 쉽게 풀리진 않습니다. 'Zur Katalog-Suche'가 이제서야 눈에 띕니다. 'to the catalogue search'란 뜻입니다. 장서목록에서 검색해보기 위해 이동합니다.


이제서야 서지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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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이십진분류 23판 기준으로 303.4는 사회과학 중에서 '사회적 과정 303'에 해당합니다.

검색그룹 Sachgruppe으로는 300 사회과학 Sozialwissenschaften, 사회학 Soziologie, 인류학 Anthropologie과 150 심리학 Psychologie이라고 부연하고 있습니다.

이제 좀 속시원해집니다.



그런데 독일 내에선 어떻게 분류를 하는지도 궁금하더군요.

한국에서도 별도의 분류기호를 가지고 있는데 독일인들 없을까 싶었습니다.

독일국립도서관DNB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과 라이프치히에 있습니다. 뭔가 좀 익숙하다 싶은 분들도 계실 겁니다. 독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서전이 프랑크푸르트와 라이프치히에서 열리기 때문일 겁니다. 라이프치히도서전Leipziger Buchmesse은 독일북아트재단Stiftung Buchkunst과 함께 'Best book design from all over the world'를 시상하고 있는데요, 올해 우리나라에서도 한 건 했습니다.


각설하고, 독일은 몹시 독특한 자국의 도서분류체제를 갖추고 있습니다. 바로 레겐스부르크 분류법 Regensburger Verbundklassifikation 입니다. 그런데 DNB에서는 이 체계를 따르지 않고 자체적인 청구기호 Signatur를 DNB 분류법 DNB-Klassifikation에 따라 사용합니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는 2026 AA 11242, 라이프치히는 2025 AA 25196입니다. 앞의 4자리 숫자는 입수연도, 뒤의 5자리 숫자는 해당 도서관의 청구기호인 것으로 보입니다.

가운데 AA가 레겐스부르크 분류법에 따른 카테고리라면 총류 Allgemeines 중에서도, 서지학의 서지학 Bibliografien der Bibliografien, 일반서지학 Universalbibliografien, 장서목록 Bibliothekskataloge, 국가서지학 Nationalbibliografien이 그 분류기호인데요. 이러면 또 오리무중이 됩니다. 머리가 아픕니다. 그런데 DNB 분류법에 따르면 AA는 완전히 다른 의미의 분류기호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딱 여기까지만 고민하는 게 맞을 듯합니다.



이렇게 책의 분류를 찾아 떠난 대모험이 막을 내렸습니다.

저는 이 책을 사회학으로 분류하기로 했습니다.

겨우 이거 정하려고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가 하는 자괴감이 들고 괴롭기도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얻었으니 된 것이겠지요.

ueberuns_buehne.jpg 라이프치히의 독일국립도서관 파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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