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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Jun 03. 2022

《2022 서울국제도서전》을 다녀오다.

국제도서전이라 쓰고, '내수용 직거래 장터'라고 읽다.

1. 줄서서 기다리는 맛집이 싫다.


 나는 줄서서 기다리는 맛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 많은 게 질색이라서 그렇다. 20대중반 종각에서 갑작스레 몰려든 인파로 압사사고가 일어날 뻔한 뒤로 그렇다. 서울지하철 2호선의 출퇴근시간 지옥철도 너무 싫어서, 한 시간쯤 일찍 나서는 편이다.

 

 사람 많아서 질색인 것은 전시(EXhibition)도 마찬가지다. 내가 전시를 보러 온 건지, 인파를 구경하러 온 건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2년간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좋았던 건,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콩나무시루가 될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티케팅은 더 격렬한 전쟁이 되었고, 그 피튀기는 전투에서 늘 패배하는 쪽이었다는 건 함정이다. 좋은 작품을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인기가 있는 전시들은 어김없이 인파로 북적인다. 답이 없다.

MMCA 서울관에서 연장전시중이었던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이 현장발매로 바뀐 터라 얼씨구나 찾아갔다가, 그냥 다른 전시만 보고 왔다. 또다시 콩나무시루 전시가 시작됐기에 포기했다.

입장시간 11시에 맞춰 현장을 찾았을 때엔 이미 숨이 막힐 정도로 대기줄이 길었다. 발길을 돌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작년 이 행사를 갑작스런 배탈로 포기했던 씁쓸한 기억도 떠올랐고, 무엇보다 이 행사가 너무나 궁금했기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1년에 한 번뿐인 행사잖은가!

어디 가서 뭘 하든 죄다 줄이다. 코엑스뿐만 아니라 세텍, 킨텍스, aT센터 그 어디에서도 이런 인파르 본 적이 없다.



2. '국제'는 사라지고, '직거래'만 남았다.


 나는 푸랑크푸르트나 런던 또는 볼로냐의 북페어를 보러 갈 정도로 열정적인 독서가는 아니다.

 일개 독서가가 굳이 그런 곳까지 찾아간다면 '또라이'소리 듣을 게 뻔하겠으나, 그런 소리가 두려워서라기 보다는 출판업계 종사자조차도 쉽게 갈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찾지 않는 것일 뿐이다. 무엇보다 책구경이나 설렁설렁하겠다고 외국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삶이 여유롭지도 못하다. 그런 사치, 부려보고도 싶긴 하다.  그렇다 보니 우리 앞마당으로 온 국제도서전을 또 놓치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이건 fair라기보단 Market에 더 가까웠다. 심지어 내수용으로 말이다.

 몇 개국의 문화원에서 마지못해 출품한 것과 같은 성의없는 부스들을 지나치다 보니, 내가 여길 왜 왔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질 지경이었다. B2B를 위해 출판사들은 자신작을 챙겨오고, 복작거리지는 않지만 바이어와의 열띤 소통속에서 무언가 열기를 느낄 수 있는 보통의 페어를 기대했던 나의 기대가 산산조각이 났다. 한국 출판물의 엄선된 레퍼런스가 제공되는 것이 아니니 외국 바이어들은 굳이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아올 이유가 없고, 국내출판업 종사자들도 레퍼런스로 삼을 수 있는 고품질의 외국도서 전시를 볼 수 없으니 이곳을 찾을 이유가 없다. 그냥 일반 독자들이 밀려드는 도떼기시장이 될 수밖에 없을 테다.


 물론 B2C에 가까운 페어들도 많다. 웨딩페어나 베이비페어와 같은 것들이 그런데, 웨딩페어처럼 객단가 자체가 워낙 높은 경우는 실수요자 중심으로 차분하게 진행된다. 베이비페어도 웨딩페어만큼은 아니지만 객단가가 높은 편이서 마찬가지의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런데 북페어는... 엄마가 애들 손 붙잡고 마실나오듯도 나온다. 실제로 부스도 출판사와 독자가 서점이란 중간상을 건너뛰고 만나는 '직거래 장터'의 모습을 띄었다. 특히나 민음사, 문학동네 등 출판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공룡들의 부스는 거대했고, 사람들은 두말할 필요없이 북적였다. 근처에 다가가기도 싫을 정도로 말이다.



3. 그렇다고 성과가 없진 않았다.


 먼 걸음이 헛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1년을 준비한 잔칫상인데, 차린 게 없을 리도 없다.


가. 반걸음

 규보(蹞步)라는 한자가 눈에 밟히는 기획이다. 벌집모양 판지데스크 위에 수줍게 올려진 책들은 각 주제마다 다양한 시각들을 보여줄 수 있는 책들로 선정되어 있다. 아무 생각없이 책들을 둘러 보면서 진행하다가, 중간쯤에서 책의 사진을 찍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은 꼭 읽어봐야지~"라며 사진까지 찍어가면서 점찍어놓은 책은 모두 19권이었다.

부스디자인이며 타이포 아이덴티티며 무엇 하나 눈길을 사로잡진 못했다. 하지만 막상 살펴보니 꽤 좋은 기획이었다.
작년 11월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만나, 이 책만큼은 언젠가 한 번 읽어봐야지 했던 책을 이곳에서 또 만났다.
골판지로 만들어진 벌집모양의 받침대가 '종이'라는 소재적 특성으로 기획과 아주 잘 맞아 떨어졌다.


나.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2020, 2021, 2022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란 이름부터가 참 건방지다.

 책이란 미디어는 문자를 종이에 정착시켜서, 그 내용을 전달하는 것으로 정체를 확립해왔다. 그렇다 보니 아름다운 책은 책 자체의 물성보다는 그 책이 담지하고 있는 내용적 미에서 아름다움을 규정받곤 한다. 하도  뜬금없이 '아름다운 책'을 거론하는 경박스러움과 '가장'을 자신하는 시건방짐때문에 이 기획이 무척 궁금해졌다. 뚜껑 열어보기 전까진 알 수 없는 일이 많다. 이것도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보기 전까지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일이다. 자칫하면 '신포도일 것이라 짐짓 무심한 척하는 여우' 꼴만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막상 살펴보니 알 수 있었다. '가독성을 놓치지 않은 독창적인 편집디자인의 미를 추구한 책' 중에서 당해년도에 가장 빼어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10권 선정한 듯하다.  

'가독성을 놓치지 않지만 독창적이고 진취적인 편집디자인을 보여준 책'을 매년 10권씩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
너무 독창적이여서 가독성마저 저해한 편집디자인도 제법 많았으나, 그런 책들은 죄다 걸러낸 듯하다.
『셰익스피어 전집』은 엄청 두꺼운 책이라, 다들 이렇게 바닥에 앉아서 살펴봐야만 했다.


다.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Platform_P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는 마포구에서 설립한 공공기관으로, 용산선에서 당인리선이 분기되는 지점쯤에 서 있다. 그러니까 홍대입구역 근처라는 이야기다.

 작년 한 해 동안 이곳에서 진행하는 여러 강의프로그램을 참 흥미롭게 봐왔다. 『2021 독립 출판 아카이브』를 발간하고 무료배포한다고 할 때 찾아가 봤을 때 꽤나 매력적인 공간으로 보이기도 했다. 공유오피스도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하고 있어서 눈길이 갔었다. 다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시설이 폐쇄적으로 운영되었더랬다. 이제 거리두기도 완화되었고, 다시 일반에 문을 활짝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척 반가운 소식이었따.

꽤나 큰 공간의 부스를 가장 가장자리에 놓아서 무척 여유로운 공간으로 접할 수 있었다.
어디 가서 뭘 주든 잘 안 받아오는 스타일이라서, 여기저기서 건네는 기념품 따위는 하나도 받아들지 않았더랬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먼저 물어보고 요청해서, 책자 두 권을 받아왔다.


라. 독립출판/아트북 섹션

 일이 밀려서 주말에도 작업을 하느라 <리틀 프레스 페어>를 놓치고야 말았다. 그 아쉬움이 정말 컸는데, 조금은 덜어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매번 '도대체 왜'와 '그래서 무엇을'이라는 질문으로 독립출판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직까진 긍정적인 답을 찾을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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