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 2018. 민음사. "원래 목적을 잃어버린 글"
"사실 이 책에는 원래 '동네 서점이 살아남으려면'이라는 제목을 붙이려고 했어요. 동네 서점이 점점 문을 닫고 있는데, '현재 상황을 그저 걱정만 할 게 아니라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했죠."- 193쪽
결론적으로 말해서, 호리베 아쓰시는 동네서점 생존 전략 탐구에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언급된 5개의 서점 중에서, 게이분샤 이치조지점과 젠코도, 하기쇼보 정도가 살아 남아 있을 뿐이며, 산가쓰쇼보와 가케쇼보는 폐업했다. 젠코도와 하기쇼보는 고서점(헌책방이 아니다.)이라서, 마치노혼야의 개념에는 들어가기는 어렵다.
산가쓰쇼보는 고령의 혼야(本屋, 이 경우엔 책방지기쯤으로 번역한다.)가 가게를 이어나갈 사람을 찾지 못해 "주휴7일 연중전휴"를 선언한 상태다. 가케쇼보는 생존을 위해 호호호자(ホホホ座)로 이름도 바꾸고, 매장 위치도 바꾸고, 매장의 성격까지 바꿨다. 책도 팔지만 책만 파는 공간은 절대 아니게 된 것이다.
'街'와 '街の本屋'라는 개념부터 이해하지 못하면, 영영 접점을 찾지 못할 책이다.
일본어 마치(街)에 조응하는 한국어의 적절한 단어는 없다. 일본어에서 마치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곤 하는 단어로는 쇼텐가이(商店街)쯤이 있지 않나 생각해 보게 되는데, 그렇게 하면 대체적으로 개념이 잡히게 된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여느 도시에선 전철역 주변에 역전상점가가 발달하곤 한다. 전철역을 중심으로 상권이 펼쳐지고, 그 배후에 주택가가 포진하는 형태를 통해 도시적 주거형태를 갖추게 된 것을 마치(街)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좀더 전근대적인 형태의 경우에는 '町'로 표기하는 듯하다. 그래서 편하게 '마을'이나 '동네'쯤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잦다.
마치노혼야(街の本屋, 지역서점이나 동네서점쯤으로 번역할 수 있을 듯 싶다.)는 그 연장선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영화 <마치노혼야>에 등장하는 '고바야시쇼텐(小林書店)' 역시 효고현 아마카자키시 다치바나쵸의 JR다치바나역 앞 상점가의 일원이다. '공짜로 책을 읽는 노부타와 그걸 쫓아내려고 애먼 총채질을 하는 노인 혼야상'이란 전형적인 풍경으로 묘사되곤 하는 그런 서점 말이다. 이런 형태의 서점들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는 실정인데, 우리나라도 일본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고부가가치의 고서점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거나, '호호호자'와 같은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상점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마치노혼야의 생존 전략을 제대로 집기는 커녕, 전혀 엉뚱한 교토의 명물들만 접점을 잇지 못하며 소개했을 뿐이다. 쇼와레트로(昭和レトロ) 일색의 카페나 비스트로 한둘쯤으로 상점가가 바뀌진 않는다. 그리하여 이 책은 도움 1도 안 되는 교토 유람기라고 평가절하할 수 있겠다.
교토고엔에서 제법 떨어져 배후 인구수용 주택지로 쓰인 사쿄구는 서울로 치자면 은평구나 마포구쯤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마포구보다는 은평구쯤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 그런 동네가 살아나는 건 당최 쉬운 일이 아니다. 가게 한 두곳으로는 절대 변화하기 어렵다. 1년 이내에 다양하고 특색있는 가게들이 러시를 이루며 입점하지 않으면 '제2의 경리단길'이나 '제2의 가로수길'과 같은 네이밍을 할 수 있는 거리로 바뀌지 않는다. 낮은 임대료와 많은 유동인구 그리고 편리한 접근성을 갖추지어야 한다는 존재적 역설도 해결해야만 한다. 그곳에서도 마치노혼야로 살아남는 건 더더욱이나 어렵다. '책도 파는 복합문화공간'과 같은 형태로 소구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답이 없다. 게이분샤 이치조지점(恵文社 一乗寺店)이 90년대 후반에 "각자의 정보망을 가동하고 발품을 파는 방식으로 제멋대로 만들어 온 우리의 개성넘치는 편집작업이 이미 서점의 색깔로 자리 잡"았던 것처럼, 전에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서 소비자의 니즈를 창출해내지 못한다면 그저 '쓸데없는 기발함'에 그치고 말 것이다.
"나는 일상적으로 대형 서점에 들러 목적도 없이 서점 안을 둘러 본다. 교토 시내의 모 대형 서점을 뻘질나게 드나들면서 책을 확인한다. (중략) 대형서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작은 동네 서점도 있을 수 없다. 그러니 대형서점도 고마운 존재다." - 164~165쪽.
게다가 호리베 아쓰시 본인의 발언처럼, 대형서점으로 수렴하는 독서문화도 강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대형서점은 경쟁력이 높다. 그렇다 보니 지역의 중형서점들은 차례차례 부도가 나서 문을 닫고, 대형서점 몇 곳이 매년 도시 하나씩을 집어삼키는 걸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한다. 그런데 또 인구 10만이 되지 않는 군단위의 읍내에는 중형서점도 되지 못하는 서점들이 죄다 사라지고 있다. 작은 동네서점들은 근처의 인구 백만명이 되는 도시를 찾아가지 않으면, "뭐 좋은 거 없나 눈에 불을 켜"고 볼 대형서점을 경험할 수도 없다.
책을 읽는 시간보다 리뷰를 쓰기 위해 자료조사하는 시간이 더 걸리는, 이런 주객전도의 리뷰 쓰기는 즐거운 작업은 아니다. 다만 쓰고 나서 읽어 보면, 꽤나 만족스러운 편이다. 그만큼 많은 생각을 새로이 정리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