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 리지블루스. 2019. "브로드컬리 2와 3호가 생각나는"
작년 8월부터 12월까지는 동네책방을 이곳저곳 둘러볼 욕심이 있었다.
어디를 찾아가 봐야 좋을지 우선 '문헌조사'로 목록을 만들 생각으로, 책방지기들이 쓴 책이나 책방에 관한 책들을 이것저것 찾아 읽었다. 그때 관악구의 '엠프티폴더스'에서 들고 온 책이다.
8개월만에 책을 펼쳐보게 됐다. "오늘 사면 언젠가 읽는다"는 관악구의 동네책방, '관객의 취향'이 내놓은 캐치프레이즈에 전혀 동감하지 못했었는데, 오늘 산 책을 일주일 이내에 읽지 않으면 그 책은 평생 읽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독서량이 늘다보니, 서점에 관한 책들이 제법 순연되었다. 특히나 이미 사놓은 책들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에 비해 순서가 더 밀리게 된 것이다.
올해 경기서점학교를 수강하고, 서점연계프로그램도 신청을 했다. 집에서 가기 그나마 편한 곳이 수원이다 싶어서 수원 배정을 희망했는데, 마그앤그래에서 진행하게 됐다. '수원의 책방'이란 생각이 퍼뜩 들어서 책을 꺼내 보니, 마그앤그래도 한 챕터를 차지하고 있었다. 공교롭다 싶었다가, 그냥 '인연'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로컬숍 연구잡지 브로드컬리 2호와 3호의 '서울의 3년 이하 서점' 시리즈가 보여주었던 처절한 질문과 담백한 답변이 떠오르는 인터뷰집이었다. 다만 이 독립출판물의 편집디자인이 워낙 거지같아서, 구성적 장점을 완전히 잠식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식(粉飾)이 없다 보니 날 것 그대로 드러나는 동네책방의 불안한 현실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낭만적 시선'으로 바라보기엔 잔혹할 정도로 혹독한 현실을 보여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2018년 인터뷰한 6개의 서점 중에서 다섯 곳은 지금도 운영 중이지만, 책을 낸 리지블루스는 문을 닫았다.
이사도 많다. '천천히스미는'은 율전동에서 매산로3가(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52번길 20)로 옮겨 왔다. 마그앤그래는 인터뷰하던 시점에 아이파크시티9단지에서 근처 권선3지구현대아파트로 이사했다. 88and1은 화성시 비봉면으로 옮기면서 수원을 떠났다.
"전국 모든 서점이 같겠지만, 수익이 잘 안나는 거요." - 서른책방
"손님이 아예 한 본도 안 온 날 '괜찮아'하면서 스스로 위로해도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이 엄청 울적해요. 열심히 일해도 돈이 알될 땓 슬프고요" - 천천히 스미는
"개인을 위한 소비를 포기하게 되어요. 이 돈이면 책방에 의자를 하나 더 사야지, 책을 더 사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요." - 88and1
"생각보다 일이 많아 개인 시간이 없고 책방 수입으로는 경제적인 안정이 안되네요." - 브로콜리숲
책방을 하면서 힘든 점을 묻자, 대답들이 한결같다.
"먹고 살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한결같다. "먹고 살 만하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6곳의 서점들 중에서 가장 눈여겨볼 만한 답변을 해준 곳은 마그앤그래인데, 아무래도 서점인과 출판인의 경험이 녹아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초기부터 '지속가능한' 적자 속에 있었던 것도 마그앤그래가 유일한 듯하다. 그렇다보니 지금은 경기서점학교의 연계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을 정도로 자리를 잡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서점을 통해 이루고 싶은 일이 있냐는 질문에 단호히 "없어요"라고 답하는 냉정함 역시 그런 '짬'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마그앤그래 이소영 대표의 발언 중에서 꽤나 눈에 띄였던 것은 다음과 같다.
"시사 주간지나 월간 패션지가 일반 단행본 시장을 지탱하는 역할이 컸어요. 잡지를 통해서 새로운 필자가 발굴되고, 필자들이 검증을 받아 단행본을 내는 형태였죠. 글쓰는 작가 분만 아니라 사진작가, 일러스트 디자이너, 편집 디자이너 등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 잡지였어요. 지금은 완전히 망했죠."
최근 출판시장은 브런치 작가를 1인출판사가 섭외하는 방식이 유행하는 모양이다. 브런치가 기존 출판사와 연계해서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재주나 부리던 곰이 떼놈으로부터 돈주머니도 챙겨올 심산이 없지 않았을 테다. 하여튼 그렇게 검증의 질이 저하되고, 연쇄적으로 출판의 질이 저하되면서, "개나 소나 책 내는 시대"에 출판물에 대한 평가절하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