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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Oct 11. 2021

[북리뷰] 황부농,서귤_『굶어죽지 않으면 다행인』

알마, 2018. "기본이 안 된 문장, 구성 그리하여 책이 되기 힘든"

1. 이 책에서 작가에게 돌려 주고 싶은 말


 사실 책방의 책을 다 같은 온도로 사랑하지 않는다. 지난번 총판에서 구입한 어떤 책은 3분의 1 정도 읽다가 도저히 더는 읽을 수가 없어서 내려놓았다. 추천은 고사하고 김치 없는 김치부침개를 먹는 중이라고 쓰려다 말았다. - 177쪽


 보이는 이미지만큼 내용도 좋아야 하니까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자. 앞위 맥락은 잘 몰라도 어쨌든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할 것이다. 없다고? 그럼 두세 페이지 앞뒤로 더 넘겨보자. 이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없다고? 그럼 그냥 덮어라. 3분을 투자했는데도 펀치라인이 없다면 차라리 힙합을 들어라. - 219쪽


 고문과도 같은 독서였다.

 내가 이 글을 도대체 왜 읽고 앉아 있나 싶은 생각이 너무 자주 들었다. 이런 독서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정도로 맘에 안 들면 작가의 말처럼 “더 읽을 수가 없어서 내려놓거나”, “그냥 덮고 힙합을 듣기” 때문이다.

 악평을 쓰는 일은 그리 유쾌한 경험이 되질 못한다. 해당 텍스트나 콘텐츠를 수용하면서 느꼈던 부의 감정을 그대로 되살려야 하는 글쓰기 과정도 불편하지만, 그 후 비평 대상과 조우하도 하게 되면 그것처럼 불편한 일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일 모르겠더라. 절대 얼굴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하고 악평을 했던 대상을 우연히 만나게도 되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악평을 쓰고자 한다.


2. 기본이 안 된 문장과 구성


 작년 여름, 동료가 자비출판으로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4개월에 걸친 공동 작업을 통해 실용서의 범주에 속하는 원고를 하나 털어낼 수 있었고, 운 좋게도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1쇄로 끝나버린 졸작은 애초의 목적대로밖에 쓸 일이 없게 돼버렸다. 덤으로 ISBN과 CIP를 가진 책의 저자가 되었다는 “경력”은 생겼다.

 자비출판이란 이 볼썽사나운 시스템에 대해 꽤나 시니컬한 입장을 굳게 지켜왔던 나였지만, 막상 내 일이 되고 보니 내로남불의 강을 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개나 소나 출판하고 작가 소리 해대는” 이 시스템에 대해 그렇게 열을 올리며 비판했던 입장에서, “나라고 개나 소나 하는 일을 못하란 법은 없다”로 합리화하는 일은 꽤나 쉬웠다.

 그렇다고 해서 원고를 대충 쓴 건 아니었다. 문장은 문단을 지지하고, 문단은 장을 구축하고, 종국에 그 장들이 모여서 하나의 흐름을 완결하는 책을 완성할 수 있도록 가다듬고 또 가다듬었다. 여기에 출판사 편집자가 가세해서, 맨 앞과 맨 뒤 어느 쪽에 놓을지를 여러 차례 고민했던 장의 위치도 결정됐다. 저작권 확보가 어려운 이미지와 그와 관련된 내용은 과감하게 삭제되었고, 최대한 쉽게 쓴다고 노력한 문장들도 상당한 수술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하나의 책이 되어 나왔을 때, 뛰어나다곤 할 수 없지만 부족하다 싶진 않은 책을 만났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이 책은 혼돈의 도가니였다.

 문장은 따로 놀면서 문단을 쉽게 이루지 못했고, 문단은 하나의 장을 이루는데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아마도 블로그에 썼던 일기를 제대로 된 편집자와 함께 구조화 작업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일 테다. 그렇게 중구난방으로 떠다니는 문장들이 간혹 하나의 주제로 정착되는가 싶은 때는 사고의 깊이가 문제가 됐다. 기자 시절에 자주 듣고, 자주 했던 “일기는 집에 가서 블로그에나 쓰고”란 말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글이었는데, 맙소사! 이건 진짜 그 블로그 일기를 책으로 옮겨온 거란 말이닷! 상당히 당혹스런 상황이다.

 일기라고 모두 무시할 순 없다. 기록문학으로서 몹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으로 국외에선 『안네의 일기』, 국내에서는『난중일기』가 꼽힌다. 일기라는 내밀한 내면의 고백은 종종 개인의 미학적인 문체와 결합되어 꽤나 훌륭한 문학의 성과를 이룬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기가 죄다 높은 평가를 받을 순 없다. 아닌 건 아니라서 말이다.


 미덕이 전혀 없는 글은 아니다.

 책방을 운영하면서 그때 그때 경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벽에 대해서, 무척 감상적으로 잘 포착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저 포착에서 끝났다는 점이다. 일기를 통해 포착해 낸 그 문제점들에 대해서, “책”이라면 보다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저 그때의 “감상”에 파묻히고 말 것이라면, 굳이 책으로 다시 엮을 이유가 없다.

 문장 하나 하나를 들여다 보면 문학적인 글쓰기의 훈련이 꽤나 이루어진 문장이다. 쉽고 간결하면서도 때론 예쁘기까지 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나 거기까지다. 그냥 문장만 예쁘고 말았다. 문장이 문단을 이루는데 응집력을 갖지 못한다. 문장만 둥둥 떠다니는 하나의 장이 너무 많다. 아마도 일을 마치고 집에서 블로그에 적은 일기라서 감정이 과잉되고 사고는 불연속상에 놓여 있었기 때문일 테다.

 그런데 그런 점들이 또 어떤 독자들에게는 편하게 다가왔는가 보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진지하지도, 그렇다고 되먹지 않게 가볍지도 않은, 딱 그만큼의 "덜 진지함"이 편한 독자들도 있을 수 있다. 그들에게는 최고의 독서 경험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책이라 부르기 민망한 함량미달 잘 드러나는 문단들은 이런 것들이 될 테다.


 ‘작은 책방’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평가하자면 거의 무가치한 공간이다. 수익 구조가 지독할 정도로 열악하다. 먹고사는 데 있어서 거의 절망적이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넘게(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겠지만)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책방에는 자본의 가치를 뛰어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사람, 이야기 재미, 응원, 연대, 자유, 성찰, 고민거리 같은 것이다. - 6쪽


 머리말에서 나오는 문단이다. “자본의 가치를 뛰어넘는 것”에 대한 사고의 깊이는 그 다음 문장 하나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이시바시 다케후미는 이 문제에 천착해서 책을 두 권이나 썼다. 니은서점의 노명우 교수나 어서어서의 양상규 대표 역시 하나의 장을 활용해서 이 문제를 들여다 봤다. 책이란 미디어가 갖는 강점인 사고의 체계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선 그런 걸 기대하기 어렵다. 그냥... 일기를 날짜 순서대로 붙였을 터이기 때문이다.

 

이후북스가 어떤 콘셉트의 책방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작은 책방들은 한 가지 콘셉트를 가지고 개성 있게 꾸려나가는 곳이 많아서인 듯하다. 그러나 이후북스는 콘셉트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파는 것이 전부일 뿐. - 21쪽


 이 문단에 이르러서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경영컨설턴트의 길을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은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실패한 자영업자의 입장에서도 이건 뒷덜미가 뻐근해지는 노답의 전형이라서 말이다.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는 이유는 딱 두 가지 경우밖에 없다. 첫째는 생각을 안 하고 사는 무지성이거나, 둘째는 더 깊이 생각하기 귀찮아서 대충 글을 쓴 경우다. 이 지점은 내가 한 번 책을 덮은 지점이기도 하다.


 작가가 되고 싶다. 작가란 무엇인가? 누구를 작가로 부를 수 있는가? 책을 내면 작가라 부를 수 있는가? 그을 쓰면 작가인가? 작가란 책상에 앉아 미간에 주름을 잡고 글을 쓰는 사진 한 방이 있는 이들인가? 라는 고민을 서귤은 했을 것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 글을 쓰고 싶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 무엇보다 책을 내고 싶다. 책을 어떻게 내지? 내 글과 내 글미을 누가 책으로 만들어주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책을 내지? 출판사의 기준에 부합해야 하나? 타인의 기준을 내가 받아들여야 할까? - 207쪽


 <책 낸 자>란 제목이 붙은 장의 첫 두 문단이다. 이 문단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반가운 주제라서 눈이 반짝 빛났지만, 아니나 다를까 글은 이내 지리멸렬해진다.


우선 책을 읽으면 단어를 많이 익힐 수 있고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선 머리를 좀 굴려야 하고 그럼 바보가 되는 걸 더디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카타르시스, 감정의 배설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여행을 할 수도 있고, 시대를 초월한 다양한 경험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고 땡? 인가? 아닐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다음 스텝은, 내가 조금 불편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 216쪽


 <책을 왜 읽나>란 장의 일부분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문제 의식만큼은 반짝반짝하는데, 거기서 끝이다. 더 깊이 있는 성찰이 없다. 그저 나날의 기록이기만 했던 일기를 그저 붙여놓기만 한 글 뭉텅이라서 그렇다. 일기를 내용별로 카테고리화하고, 좀 부족한 이야기는 나중에라도 따로 더 써서 넣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질 않았다.


3. 그 와중에도, 이 책에서도 눈여겨봐야 할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점 운영을 그저 낭만적인 감상으로만 접근하는 이들이 반드시 주의해야 하는 몇 가지 사실들이 경험칙에 의해 풀려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도 장사니까 손해 보지 않으려면 다방면으로 노력은 해야 한다. 당연히 수익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후북스는 내 수입원의 전부다. 다른 일을 하며 취미 삼아 하는 게 아니다. 수입을 크게 기대하진 않지만 먹고살 만큼 벌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이것저것 다방으로 돈 벌 만한 일들을 꾸미지 않으면 안 된다. 순수하게 책이 좋아서 손해 보더라도 하는 게 아니다. - 25쪽


 “사람들은 책방 주인이면 책방에 있는 책을 다 읽었을 거라 생각하나 봐. ‘이 책은 어때요?’ ‘재밌나요?’ 물어보는데, 잘 봐라 여기에 책이 한두 권 있냐? 열댓 권 있냐? 수백 권이 넘어. 그리고 서가에 책 바뀌는 거 봐봐. 같은 책만 파는 것도 아니라고. 그러니까 눈이 있으면 직접 보고 판단해.” - 47쪽


 책방 운영 6개월 차에 깨달은 건 책보다는 먹을 걸 팔아야 많이 남는다는 사실이다. - 65쪽


 얼마 전에 “책방, 돈 벌려고 하는 일 아니잖아”라는 말을 들었다. 오, 세상에나 네상에나! 처음에는 그말을 듣자 당황스럽고 서운했다. 내 노력을 모르는구나 싶어서. 나도 참 불쌍하네, 라는 생각이 뒤따랐다. 돈도 못 벌면서 이 짓거리를 하는 걸로 보이는구나 싶어서.
 그런데 또 맞는 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정말 돈을 많이 벌려고 들었으면 책방이 아니라 다른 일을 했겠지. -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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