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바 마사야 著/ 김상운 譯. 현대사상입문. 경기도:아르테. 2023.
매번 번역서를 읽고 나서는 '번역이 문제'라는 징징거림을 잊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책에선 그런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네요. 우선 소설가이기도 한 지바 마사야의 문장이 간결하고 깔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문장구조와 어휘의 친연성이 높은 일본어라는 점도 한몫했을 테고요. 번역을 한 김상운도 최대한 매끄러울 수 있도록, 원표현을 살렸을 때는 각주를 통해 이유를 밝혀주어서 더욱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운청계상가에는 ‘소요서가’라는 철학 전문 서점이 있는데요, 이곳의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현대사상입문이란 제목에서 “현대사상이 도대체 뭔데?”라는 짜증 섞인 반문이 먼저 튀어나왔습니다. 학창 시절 ‘현대 문예 사조’ 때문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던 탓이겠죠.
이 책은 현대 사상에 입문하는 책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현대사상’이란 1960년대부터 1990년대를 중심으로, 주로 프랑스에서 전개된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을 가리킵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것인데도, 일본에서는 종종 이를 ‘현대사상’이라고 부릅니다. - 11쪽
책의 첫 문장이자 첫 문단의 내용입니다. 표지에서도 드러나듯이, “데리다, 들뢰즈, 푸코에서 메이야수, 하먼, 라뤼엘까지 인생을 바꾸는 철학”이란 문구에서 이 책이 다루는 것이 무언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 “나는 비평이론가가 되긴 글렀구나” 하고 자포자기하게 만들었던 원흉들이 모여 있었기에, 일독의 결심이 설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고단샤 현대신서의 이마무라 히토시가 편집한 『현대사상을 읽는 사전』을 주워 읽고, 실로 경박하지만, 언젠가 여기에 있는 것처럼 멋들어진 개념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동경한 적이 있었습니다. - 240쪽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복학한 뒤 복수전공으로 국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조셉 칠더스와 게리 헨치가 엮어낸 『현대 문학·문화 비평 용어사전』을 꽤나 끼고 살았었습니다. 용어 설명에서부터 허덕거리다 보니, 주석으로 달린 원전을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었습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됐지만 여전히 번역되지 않은 책들이 많았다는 점도 한몫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언젠가 나도 이 개념들을 죄다 이해하고 폼나게 써먹겠다”는 욕심을 가져보긴 했었습니다. 책의 에필로그에서 만난 저 문장에 제법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저 자신의 감각으로는 이 책은 전문가라기보다 10대부터 프랑스 현대사상을 동경해 리좀이니 탈구축이니 말해 보고 싶다!라는 ‘멋 부림’에서 출발한 현대사상 팬들을 위한 총결산으로 썼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청춘의 총괄이자 동경의 종막인 것입니다. - 242쪽
1978년생 저자가 저런 마음으로 책을 썼다면, 1977년생 독자는 이제라도 저놈의 빌어먹을 프랑스 현대 문예사조를 찍먹해 보자는 “청춘의 총괄이자 동경의 종막”으로 책을 집어 들었더랍니다.
2.
이 책은 ‘입문을 위한 입문’, ‘입문서를 위한 입문서’입니다. - 19쪽
“입문서를 위한 입문서”라는 저자의 선언이 자못 반갑습니다. 앞서 첫 문단에서부터 무엇을 다루는 책인지 단언하고,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어느 수준일 것인지 못 박는, 이런 식의 단호함은 입문서를 고르는 이들에게 적잖은 위안과 용기를 줍니다. 포스트 구조주의 이론들을 구조주의적으로 분석해서 제공하는 존재적 모순을 보이는 책이긴 하지만, 입문자에게는 그런 방식의 접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학창 시절 현대비평이론을 공부할 때, 구조주의는 ‘그저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제멋대로 날뛰는 개념들을 하나의 틀 안에 넣어주면, 공부하기가 무척 편하기 때문입니다. 현상적으로는 ‘노트 정리하기가 편해진다’는 것으로 드러나곤 합니다. 마찬가지로 글쓰기 작업은 타인에게 ‘정리된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잘 갖춰진 구조’를 보여주게 됩니다. 물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포스트 구조주의적인 에크리튀르(écriture)로 가게 되면, 아주 그냥 안드로메다행(특히나 롤랑 바르트의 자동사적 글쓰기 개념은 책을 집어던지게 만들곤 했습니다)이 되곤 합니다.
이 난해한 불란서 학자들의 선문답 같은 이론이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으로까지 끌어올려진 데는, 존재의 방식에 대해 꽤나 오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시각을 도출해 주었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시간적으로 유한한 존재인 인간에게, 특히나 지적 능력을 오로지 철학 연구에만 쏟을 수 없는 보통 인간에게는 ‘질서에서 벗어나는 사상’을 ‘무한히 반성’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현전(現前)하는 유한성을 긍정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신체의 근본적인 우연성을 긍정하는 것, 그것은 무한한 반성에서 벗어나 개별적인 문제와 유한하게 씨름하는 것입니다. - 212쪽
‘입문서를 위한 입문서’라서 주요 개념들을 구조화했고, 그 구조화 속에서 데리다, 들뢰즈+가타리, 푸코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노력해 주었습니다만... 이 빌어먹을 포스트 구조주의란 녀석은 짧게 줄인다고 간단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단순화해서 그대로 전달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취사선택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요, “중요한 사항이 누락되었거나 해석에 오륙 있다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도 잊지 않습니다. 적어도 포스트 구조주의에 대해서는 일본 내에 자신만큼 정통한 사람이 없을 거란 자신감이 배어 있지 않다면, 쉽사리 나올 수 없는 발언일 겁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런 자신감에서 써낸 글이니 '품질'도 보증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책의 여섯 번째 챕터인 ‘현대사상을 만드는 법’에서는 포스트구조주의 사상을 구조주의적으로 도식화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① 선행하는 논의는 안정적인 것으로서 구조 S1을 나타내지만, 거기에는 타자성 X가 음으로 양으로 배제되어 있다. 먼저 이를 깨닫는다. (타자성의 원칙)
② 이로부터 S1은 사실상 근본적인 구조가 아니라는 문제 제기로 향한다. S1은 근본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X를 배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S1을 조건 짓는 구조 S2를 생각한다. S2에서 비로소 X가 긍정된다. (초월론성의 원칙)
③ S1에게 X는 종속적, 부수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X가 극단화되어 X야말로 원리가 되는 S2를 생각하고, 그것이 S1을 조건 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S2를 정식화하기 위해 관례를 깨고 새로운 개념을 만들기도 한다. (극단화의 원칙)
④ S2를 전면에 내세우면 상식과 어긋나는 귀결을 낳는다. (반상식의 원칙) - 183쪽
올해 들어서 네이버 밴드에 가입해서 ‘고전’을 읽어 가고 있고, 이런저런 인문서적들을 들춰보고 있기도 합니다. 중간에 책을 덮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좋은 충고가 ‘부록-현대사상 읽기’란 이름의 챕터에서 나오더군요.
불완전한 독서도 독서입니다, 뭐랄까 독서는 모두 불완전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피에르 바야르의 『안 읽어 본 책에 대해 당당하게 말하는 방법』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으니까 꼭 읽어 보기 바랍니다. - 218쪽
일단 책을 집어 들고 읽어 보라는 충고, 그리고 무엇보다 쓸데없이 딴지 걸지 말고 닥치고 읽어 내려가라는 충고에는 뜨끔하기도 했습니다. 작년 이맘때였다면 콧방귀를 뀌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지금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무한 긍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만 책장이 넘어가기 때문이죠.
중간에 딴지를 걸기 시작하면 단적으로 말해서 읽을 수가 없어요. 단순히 데이터를 통째로 다운로드한다는 의식으로 읽고, 탈구축적인 딴지를 거는 일은 그다음 단계에서 하세요. - 223쪽
저자인 지바 마사오는 올해에도 아쿠타가와류노스케상 후보자가 됐습니다. 2021년 상반기에 「오버히트」로 후보에 올랐는데, 2023년 상반기에 다시 「일렉트릭」이란 작품으로 후보가 됐습니다. 참고로 문희준과 1978년생 동갑입니다. 누가 누구인지 혼동하진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