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사람이 된다
내가 되게 요새 빠진 노래거든 이 노래, 들려줄게, 라고 하나는 말한다. Stephan Moccio의 Le Jardin de Monsieur Monet이 흐르기 시작하고 나는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응, 하고 답한다.
작년 여름 하나와 나는 각자의 애인과 푸켓에서 여름을 연장하는 중이었다. 매일 바다를 보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수영을 했다. 하나는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어주고 내 머리를 땋아주고 잠영을 가르쳐줬다. 내가 하나한테 해준 일은 바리바리 싸들고 온 책 중 한 권을 넘겨준 것이려나.
어느 저녁, 우리는 둘이서 수영장에 내려갔다. 글머리에 언급한 대화를 나누며 하나는 영상 녹화 버튼을 누른다. 하나는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존해 책을 읽고 나는 하나한테 전수 받은 잠영 연습을 한다. 영상에는 그 밤의 아름다운 선율과 찰랑대는 물소리, 참방거리는 물장구 소리, 바람 소리, 우리들의 웃음소리가 고스란히 실려 있다.
영상은 8분 29초를 끝으로 정확히 멈춘다. 하지만 온 여름이 통째로 재잘거리는 듯한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언제까지고 여름이 지속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름이 시작된 후로 매일 오전 그 소리를 듣고 있다.
과연 그걸 들으며 무얼 하느냐. 거북목 스트레칭을 한다. 오이뮤 하계향을 피우고 방바닥에 대자로 드러눕는다. 전용 베개에 단단히 목을 받치면 온몸의 긴장이 풀린다. 이른 시간 기상으로 오후면 피로해지는 눈도 일찌감치 쉬어준다. 그날의 소리가 세포 하나 하나 스민다. 마치 수영장 밑바닥에서 하나와 내가 노는 모습을 올려다보는 느낌이 든다. 혹은 공중에 둥둥 떠서 내려다보는 느낌도 든다. 마음의 긴장까지 풀린다. 8분 29초 동안 나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사람이 된다. 재생목록은 카페소음으로 바뀌지만 평화는 잔향처럼 남고 10분 알람이 울리는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난다.
오늘은 어무이가 번갈아가며 캐비닛을 열어 잡동사니를 꺼내는 통에 두 번이나 중간에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보다 좋은 10분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