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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짐 Oct 09. 2018

인연

#4

벌써 오래전 일이다. 정확히는 2007년 12월 26일, 단 한 번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다. 그분과 만난 뒤 가슴속에 따뜻하고 벅찬 감정이 사라지지 않아 그와의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억하고 노력하리라 다짐했었다.

그분을 떠올리면 또다시 훈훈해진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남은 어떻게 되었나. 전주에 내려와 홀로 보내는 첫 번째 토요일 오후를 잠자는 데 전부 쏟아버린 내게, 네 탓이 아니라고, 감기약 때문이라고 겨우 우기고 있지만 허탈하고 조급해진 마음은 감출 수가 없다. 그래서 눈뜨자마자 적는다. 약간의 설렘을 가지고 그분과, 그분과 맺은 인연에 대해 조근조근.


그날, 적어도 연말은 가족과 보내기 위해(자발적 의사는 아니었지만) 전주행 버스를 탔다. 평소처럼 안산ㅡ혹은 안양ㅡ에서 출발하여 전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거기까지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문제는 터미널에서 어떻게 집까지 가느냐는 것이었다.

그해 가을에 우리 집은 이사를 했다. 입주가 시작되기도 전, 아빠는 '엄마 아빠 살 집'을 보여주겠다고 차를 몰고 출입금지 지역에 기어코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도 완공되지 않아 오를 수조차 없고 기껏 임대아파트일 뿐인데 손가락으로 고층 어딘가를 가리키며 "저기야." 하며 환하게 웃는 부모님을 바라봤을 땐 기쁘기도 하고 마음 한 구석이 쓰리기도 했었던 것 같다. 그 후로 몇 개월이 지나, 부모님은 당신들이 가리켰던 고층 어딘가로 거처를 옮긴 것이다.

새로 옮긴 집은 터미널에서 무척 멀었다. 자연히 택시를 탈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버스정류장까지 터벅터벅 걸어가 버스를 기다렸다. 노선을 꿰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거나 타자, 그래 봤자 전주 바닥이지, 라는 다소 오만한 생각이었다.


잠시 후 버스 한 대가 왔다. 정차한 버스에 탈까 말까 망설이던 사이에 버스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순간적으로 벌떡 일어나 버스를 잡았다.

빈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정신은 온통 이 버스가 어디로 향하는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각 정류장에 정차할 때마다 여기가 종점은 아니겠지, 탑승한 승객들의 수가 줄어들 때마다 설마 나 혼자 남지는 않겠지, 기사님께 여쭤볼 생각은 하지 않고 목적 없는 여행지의 관광객처럼 우두커니 앉아서 창밖의 풍경을 음미하는 척했다. 그 결과 나는 기사를 제외한 최후의 1인이 되어 종점까지 와버렸다.

기사님이 먼저 "타지 사람인가? 아까 터미널 앞에서 탈까 말까 망설였던 학생이지?" 하기에 이러쿵저러쿵 짧게나마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기사님은 기다리라는 말도 없이 차에서 내리신다.

따라내려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잠깐 기다려. 난 좀 쉬어야 하고, 다른 기사가 데려다 줄 거야."


기사님 말대로 곧 다른 기사가 왔다. 그분은 전주에서 79번 버스를 운전했다. 30대 중반 정도로 인상착의는 이제 가물거리지만 약간 머리가 벗겨진 듯도 하고 안경을 썼던 것 같기도 하다. 이름은 김요섭이라고 했다.

김요섭 씨는 출발 전 자판기에서 커피 세 잔을 뽑아서 나와, 나를 종점까지 운반해온 기사님께 권했다. 이미 밤도 어둑해졌고 외진 곳에 위치한 종점이었는데도 나는 전혀 경계하지 않고 편안한 맘으로 두 분 곁에 서서 그들이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출발하죠."

김요섭 씨를 따라 버스에 올랐다. 나는 일부러 앞자리에 앉았다. 커피 한 잔에 대한 예의로써 가는 동안 아저씨의 말동무가 되기를 자처한 것이다.

그가 슬슬 말을 걸어왔다. 어디에서 왔는지, 왜 길을 잃었는지, 학생인지 아닌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등등.

그는 내가 서울예대에 재학 중이라고 하자 자신도 한때는 배우를 지망했고, 연극판에서도 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얘기가 듣기 싫었다. 한때는 제법 잘 나갔고 한가락했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진심으로 떠벌리는 부류의 사람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아저씨도 그저 그런 사람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이제 그만 대화를 차단하려고 에둘러 말했다.

"아 저는 그쪽이 아니고요. 글 쓰는데."

그랬더니 의외의 답변, 아저씨도 글을 쓰신단다.


공통의 관심사 덕에 순간적으로 친밀해진 그와 나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나마 기억하는 것은 김요섭 씨도 나도, 좋아하는 국내 작가로 '한강'을 꼽았다는 것 정도. 그런데도 내가 그분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헤어지며 나눈 단 한 마디 때문이다.

김요섭 씨는 다음에 뵙자는 내 인사에 웃으며 짧게 답했다.

"지면으로 봬요."

그 인사가 마음에 남아서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분은 잊었을까, 안 잊었을까. 

안 잊었다면 우리, 언제쯤 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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