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방과 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다짐 Oct 09. 2018

소리

#5

늦잠 잔 엄마를 대신해서 아침밥을 차렸다. 아빠는 머리카락을 말리는 중이었고, 엄마는 화장 중이었다. 어쩌면 엄마는 늦잠 잤다는 핑계로 나를 깨우려는 꾀를 부렸는지도 모르겠다. 꾀든 꾀가 아니든 엄마의 부탁은 조류인간, 이른바 새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나를 일으킨 셈이다. 아직은 잠에 취해 침대에 누워있으면서도 어머니 아버지 밥 거르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일어났다. 그냥 일어난 것도 아니고 망설임 없이 벌떡. (일어난 후에 의미부여를 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무의식 중에 효녀다운 생각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나는 두 분보다 먼저 식사를 마치고 앞치마를 둘러멨다. 하루에 한두 번씩은 꼭 앞치마를 멜 일이 생겨난다. 아직은 설거지나 청소 같은, 치우는 일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지만 앞치마를 메면 뭔가 새댁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겨 나는 것이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아니 나쁘지 않은 기분 정도가 아니라 쓰레기를 버리러 밖으로 나갈 때도 굳이 앞치마를 메고 나갈 만큼 선호하고 있다. '새댁이라는 소문이 났으면' 하고 상상할 정도니 '나, 결혼이 하고 싶은 걸까?' 별 생각이 다 든다.


어쨌든 달그락달그락 설거지를 하고 있으려니까 불쑥 엄마가 말한다.

"여보, 당신이랑 나랑 둘이 있다가 총명이가 오니까 부스럭부스럭 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좋지 않아?"

"그러엄 좋지."

"내가 무슨 생쥐냐."

라고 농담 섞인 반격을 한 박총명이었으나 실은 나도 사람보다 소리가 훨씬 더 그리웠다. 도마질을 하는 소리라든지, 샤워기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라든지, 방문을 여닫는 소리라든지,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라든지, 주전자가 끓는 소리라든지, 웃음소리라든지, 이불이 사각거리는 소리라든지, 왔다 갔다 하는 발소리라든지. 나에 의한 소리가 아닌 타인에 의한, 일상의 소리 말이다.


문득 생각한다. 더불어 산다는 건 소리의 공유가 아닐까, 하고. 두 분 출근시키고 조용해진 집에 덩그러니 놓여있자니 아빠의 드라이기 소리가 새삼 그리워진다. 존재의 증명은 육체가 아닌 소리인 것이다, 라고 내 멋대로 정의 내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