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다짐 Oct 23. 2017

다시, 연애의 시작

일차원적인 감정만으로 충분하다

나 좋아요?
네, 좋아요.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남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고백한 결과 우리의 단도직입적인 연애가 시작되었다.

나는 누군가 좋아지면 혼자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애가 닳아 무턱대고 표현하는 타입이지만 이 남자를 향한 호감은 쉽사리 드러내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못을 박아두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당분간 홀로서기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내 감정의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5년 넘게 마음을 쏟았던 대상과 헤어지고 나는 거의 기력이 소진된 상태였다. 건강한 연애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 있었으나 그런 연애를 하기에는 정작 내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규칙적인 생활과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했다. 통장잔고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회사가 가장 좋은 대안이 되리라 여겼다. 다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였다. 작년 겨울 ㅇ와 살림을 합친 뒤로 구직 시도는 간간히 해왔다. 그런데 서류조차 통과하지 못한 채 한 달 두 달 시간만 흘러버렸다. 그럼 아르바이트라도 해볼까? 아르바이트라고 쉽진 않겠지만 회사보다야 문턱이 낮겠지. 적은 돈으로, 태평스럽게 몇 개월 더 버틸 생각을 했다.

그즈음 집에서 이삼십분 남짓한 음반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공고를 발견했다. 나는 곧장 들른다는 문자를 보내고 이력서 한 장 없이 무작정 매장을 찾아갔다. 잠시 자리를 비운 매니저를 기다리며 매장 안을 서성거리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누군가 톡, 어깨를 두드렸다.


남자와 처음 눈이 마주친 순간,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어렴풋이 들었다. 반대로 그 예감은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었다.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지만 희미하게 그런 촉이 느껴졌다. 어쩌면 터무니없는 그 예감이 나를 적극적인 사람으로 만들었고 덕분에 자리에서 바로 채용이 결정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당장 남자와 어떻게 해보리란 마음을 먹은 건 아니다. 오히려 선을 반듯이 긋고 주어진 일에 성실히 임하자고 다짐했다. 고작 느낌일 뿐 예감이란 건 빗나가기 마련이니까.

계속 서있어야 하는 것을 빼면 일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갑자기 손님이 몰려올 땐 식은땀이 나고 계산이 틀릴까봐 긴장을 놓진 못했어도 7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은 것만으로 안심이 됐다. 가벼운 대화에 웃고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는 사실을 감사히 받아들이게 된 것도 이 남자가 편했기 때문이리라.  


아마도 안정감이었던 것 같다. 나를 해치지 않으리라는 믿음 같은. 그 마음을 알아차렸을 땐 괜스레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섣부른 감정으로 마음을 표현하기보다 상대를 탐색하는 시간을 거쳐서라도 신중해져야 한다고, 30대는 그럴 나이라고 생각했다. 비슷한 취향을 가졌는지, 내 고양이를 귀여워해 줄지, 가치 있게 여기는 건 무엇인지, 개인적인 시간을 잘 활용하는지, 꿈은 뭔지. 이런 건 남자와 내가 나란히 매장을 지키는 시간들을 빌미로 자연스럽게 알아지는 것들이다. 물론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설정한 이기적인 검증들이 신중한 연애의 바탕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연애와 담쌓는 계기가 될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아무런 고민 없이 시작하는 일은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남자가 던진 돌직구를 정통으로 맞자마자 고민은 흩어지고 제멋대로 본심이 튀어나왔다. 사실 은근슬쩍 몸을 사릴 여유는 있었다. 늦은 밤 물어볼 게 있다는 이 남자의 말이 뭘지 직감했으므로. 밥을 먼저 먹고 자리를 옮기는 동안 핑곗거리를 마련해둘 수도 있었다. 변수는 아직 듣지도 않은 질문이 심장을 연신 두근거리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만일 그가 내게 어깨 한쪽을 내어준다면 나는 기꺼이 거기 기대고 싶었다. 그 마음이 더 컸다.

적어도 이 남자는 내가 자신에게 맞는 여자인지 미리 간 보는 과정을 생략했다. 요즘처럼 썸이 필수인 듯한 남녀관계에서 데이트 한 번 없이 속전속결 연애 단계로 점프한 것이다. 나 역시 신중이니 뭐니 해도 애매하게 한 발만 걸치고 있는 썸 따위 성미에 맞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썸이란 필요에 따라 A를 B로 대체해도 무방하다는 편리성인데, 내 감정의 추이를 지켜보고자 했던 건 단 한 사람에 국한되어 있었지 썸의 영역은 아니었다.


연애는 결국 감정이 시키는 노동이다. 노동에 수반되는 것들은 서로 배려하고 맞춰가면 된다. 나 좋아요? 되묻는 말에 좋아하니까 물어본 거죠,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시작은 우리가 서로를 좋아한다는 일차원적인 감정만으로 충분하다. 아직은 미지근할지라도 좋으면 그만, 이라는 일관된 자세로 직진. 이 연애의 방향성은 차후 문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