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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짐 Oct 24. 2017

뭐라고 부를까요?

사귀자는 합의만 됐을 뿐 여전히 존대하는 사이

연인들의 호칭은 어떤 식으로 정리되는 걸까. 나는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이름을 부르던 관계에서 연인으로 발전되는 수순이라 굳이 호칭을 변경할 필요가 없었다. 이번은 다르다. 매니저와 아르바이트생으로 만나 호감을 주고받은 것으로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연인이 되어버렸다. 사귀자는 합의만 됐을 뿐 여전히 우리는 존대하는 사이. 더군다나 나는 연애와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기로 했다. 남자 친구는 원래대로 내 이름을 부르겠지만 나는 호칭을 바꿔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의무는 없다. 다만 갑작스럽게 시작된 만큼 빨리 거리를 좁히고 싶었다.


뭐라고 불러줄까요?


단번에 '오빠'라는 답이 날아왔다. 

오빠라니. 이미 매니저님이라는 호칭에 익숙해져서 이름조차 도통 입에 붙지 않는데 오빠라는 낯 간지러운 말이 술술 나올 리 없다. 그럼 자기라고 부르든가. 그럴까. 차라리 그게 낫다. 

오빠와 자기, 나로서는 후자가 보통명사에 가깝다. 친구도 자기, 동생도 자기, 툭하면 자기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이 남자도 자기. 쉽지 뭐. 그런데 막상 부르자니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연인을 칭하는 호칭 자체가 오빠든 자기든 고유명사의 성질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뭐라고 부르건 일단 말부터 놓자, 다짜고짜 선전포고를 했다.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남자 친구가 먼저 말을 놓았다. 

이제 내 차례. 밥 먹었어...요? 

아아 안 돼. 말을 놓는 것도 너무 어렵다. 어쩌라는 건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남자 친구도 영 헷갈리는 눈치다.


고양이 이름을 지을 때 비슷한 난관에 봉착했었다. 손바닥만 한 새끼 고양이를 데려와놓고 이름을 짓지 못해 고민이었다. 물망에 오른 이름은 수십 개나 됐지만 부르는 이름마다 석연찮았다. 어색하게 쭈뼛거리다 보니 고양이와 내외하는 기분마저 들 지경이었다. 그러다 착 붙게 된 이름이 어이다. 수십 개의 이름을 부르는 동안 한결같이 곁들이던 추임새가 어이였던 것이다. 어이, 어이! 하다가 어이야, 하고 다정히 불러보았다. 

이거다. 남들 보기엔 무성의해 보이는 내 고양이의 이름은 내가 어이야, 하고 동그랗게 발음할 때 전혀 다른 결을 갖는다.


그래서 나는 존댓말과 반말을 교묘히 섞어가며 얼렁뚱땅 '저기'라는 편법을 쓰기로 했다. '저기요'와 '자기야'의 초성이 같은 것은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세종대왕의 배려였는지도. 남자 친구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나를 두고 '천천히'란 처방을 내렸다. 우리에게 시간이 필요한 첫 번째 이유가 생긴 셈이다.

어느 날 문득, 내 고양이 어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이 사람을 부르고 있을 것 같다. 저기든 자기든 전혀 다른 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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