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승리호'라는 단어가 갑자기 많이 등장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넷플릭스에서 개봉된 영화다. 그것도 바로 어제. 솔직히 말하면, 아주 잠시, 호돌이가 상모를 돌리던 '88 올림픽' 보다도 훠얼씬 더 오래전, 방송했던 같은 제목의 TV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젠 최신 에피소드의 <스타워즈>도 더 이상 상영될 가망이 없고, 마침 SF 영화의 수혈이 필요했던 터라, 첫 미팅을 앞둔 신입생처럼 잔뜩 기대감을 안고, 금요일 밤의 노곤함을 벗 삼아 스마트폰 넷플릭스로 감상했다.
<사냥의 시간>처럼, 극장 개봉 연기와 전 세계 오픈 일자 공개로 관심이 많았던 만큼, 퀄리티가 궁금했다. '시간의 사냥'으로 불렸던 <사냥의 시간>만큼 형편없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장르도 이름하여, '스페이스 오페라' 라니. 내 생애에 국산 우주 SF 영화를 감상하는 행운을 만나게 될 줄이야. 오, 주여~
감상평은 한마디로,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느낌적인 느낌으로는, 따서 반쯤 먹다가 남긴 참치캔 같은 영화인 <알리타>보다는, 얼큰한 찌개를 만들 수 있는 꽁치 통조림 같은 <승리호>가 더 입맛에 맞았다. 전체적으로, 구성이 짜임새 있고, 주연 배우들의 연기, 볼거리, CG도 몇 장면을 제외하면 비교적 무난한 수준이었다.
물론, <어벤저스>를 기대한 것은 아니다. <사냥의 시간>으로 이미 상처를 받은 터라, 기대치를 한껏 낮추고, 스크린이 작은 것을 감안했을 때의 감상이다.
김태호, 장 선장, 타이거 박, 업동이 등 주요 캐릭터가 나름 개성 넘치고, 시나리오 상의 목적의식과 갈등구조가 선명해서, 제작비 240억 원이지만, 코로나로 대부분의 제작이 스톱된 전 세계에 영화로 배급했어도 무리 없었을 듯하다. 물론, 어제 오픈했으니 다양한 반응이 하나 둘 나올 테고, 반응은 조금 기다려 보는 걸로.
무엇보다, <어벤저스>처럼 CG가 열 일 한 영화인데, 이젠 우리 CG 기술도 민망한 수준은 넘어선 것 같다. <미스터 고>에서 기반을 닦고 <신과 함께>와 <백두산>에서 진일보했다고 자랑하던 '덱스터'의 영화들도 할리우드에 비하면 아직은 아쉬움이 남는 수준이었다.
아쉬운 점이 많지만 몇 가지를 들면, 씬마다 균일하게 다듬지 못한 감정처리, 대충 훑고 넘어간 듯한 개인사의 소개, 매끄럽지 못한 씬 연결 등을 언급하고 싶다. 특히 후반부에서 반전으로 넘어가는 부분에선 관객의 기대치를 축적해두는 힘이 부족하여 막상 반전에선 연출자의 의도만큼 감동이 크게 느껴지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그리고, 일반적인 안드로이드의 이미지를 약간 틀어버린 유해진의 과하게 구수한 목소리가 다소 귀에 거슬리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어쭙잖은 목소리보다는 오히려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마지막엔 그 목소리조차 바꾸겠다는 설정이 들어가면서, 유머 코드로 살린 부분은 좋은 아이디어로 보인다.
UTS의 수장 설리반(리처드 아미티지)의 이미지가 거대 악당보다는 미치광이 연구원 느낌으로, 안타고니스트의 이미지가 빈약한 점, 발등으로 하는 듯한 연기도 배역에 비해 부족함이 많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왜 분노를 하면 핏줄이 얼굴까지 덮을 만큼 발작을 하는지, 단지 그의 부모와 가족이 죽은 분노의 기억으로 지구를 멸망시키려고 하는지에 대한 개연성이 잘 전달되지 않다 보니, 마지막까지 몰입하는 힘이 약해진 부분도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는 <카우보이 비밥>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개의 영화가, 들어맞는 이빨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실사 스페이스 오페라적 스타일과 메카닉 등을 <가디언즈 오브 갤럭스>에서 가져왔다면, 주연 배우 4명의 캐릭터는 <카우보이 비밥>에서 차용해왔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2070년을 배경으로 하는 <카우보이 비밥>은, 쓰레기 대신 우주의 범죄자를 잡는 현상금 헌터들의 이야기다. 재즈 연주가 매력적인 엄청난 BGM과 성인 취향의 구성, 낭만적인 대사들로 <에반게리온>, <공각기동대>와 더불어 개인적으로 최애 애니메이션이다.
이 <카우보이 비밥>의 '비밥'호에 탑승하는 주요 인물인 스파이크, 제트, 페이 발렌타인, 에드와 강아지가 <승리호>의 김태호, 타이거 박, 장 선장, 업동이로 대응된다. 물론 우주선에 항상 탑승하는 인물로 보면 '에드'가 '장 선장'과 대응이 되기도 하겠지만, 무게감이나 여성성으로는 '장 선장'에 '페이 발렌타인'이 어울린다.
'스페이스 오페라'라 정확히 어떤 영화들이라고 적확하게 구분이 될지, 그 명칭을 누가 처음 사용했는지 모르겠으나,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 장르의 외피를 쓴 영화들은 대부분 엇비슷한 배경과 구성을 공유한다. 지금 막 떠오르는 <스타워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엘리시움>, <알리타>, <페트레이버> 외에도 수없이 많은 영화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은, 주연으로 등장한 한국 배우들을 알만한 할리우드 배우들로 교체하고, 연기와 구성을 조금만 보완한다면, 넷플릭스에서 장르물로서 어느 정도 먹히지 않겠냐는 판단이 드는 지점이다. 다른 말로, 이젠 '죄인' 장선우 감독을 놓아줄 때가 된 시점임을 의미한다.
한국 영화 활황기에 180억이 넘는 초특급 제작비를 투여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더불어 투자사와 주연배우인 TTL걸 '임은경'까지 코마 상태로 만들어 버렸던 장선우 감독으로 기억되는 과거 SF씬보다, 미래의 한국 SF씬이 기대되는 시작점을 열었다는 것이, 이 영화가 가진 의미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