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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모히칸, 김장, 전통

by pdjohn

어른들이 만들어주신 김치를 통에 담아 가져왔다. 연세를 고려해 볼 때, 백종원도 울고 갈 경력 60년의 장인급 손맛으로 직접 만들어주시는 김치를 얻어오는 행운은, 아마도 올해까지가 아닐까 하는 우울한 예상을 한다.

몇 해 전, 이직하는 선배의 뒷모습을 보며, "이제 누가 우릴 끌어주죠?"라던 근심 어린 목소리로 내게 묻던 후배 PD에게 해주었던 말이 오버랩됐다.

"이젠 우리가 그 자리에서 그 역할을 할 때야. 더 이상 선배의 그늘을 찾을 때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김장의 영역에선, 이제 그 자리를 대신할 선수를 찾기 어렵지 않을까. 아들이고 딸들이고 며느리고, 다들 왜 이리 일은 바쁘고, 몸은 약하고, 그놈의 손기술은 빈약한 건지. 후후.

더군다나 대가 없이도 내 일인 양, 옆 집 김장 스케줄에 맞추어, 비닐장잡 하나 들고 와서 묵묵히 배추에 속을 버무려줄 '옆집 돌이 엄마' 찬스를 2020년 대도시의 아파트 단지에서 얻어낸다는 것은, 50살 먹은 부장님이 스타크래프트를 다시 시작하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지 않은가.

이 거룩하고 숭고한 작업을, 어른들이 힘에 부쳐하시면, 아마도,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쿠팡 앱을 열고 종갓집이나 비비고 아니면 홍진경을 검색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 대에서 전통이 끊겼다고 보는 것이 문화인류학적인 표현으로 적합한 것일까.

불현듯, 그리고 자연스럽게, 영화 <라스트 모히칸>의 엔딩 부분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얼굴을 바로 보며 담담하게 전하던 백발의 모히칸족 추장의 말이 떠오른다.

"이제, 모히칸족의 대는 끊겼다."


공짜로 가져오는 김장김치에 비하며 언발에 오줌 누기겠지만 그냥 받아오기 죄송스러운 마음에, 영화 내내 멋지게 휘날리는 곱슬거리는 긴 머리는 아니지만, 다니엘 데이 루이스처럼 눈썹을 휘날리며, 콩밭을 맸다. 그 넓은 콩밭을 낫 하나로 초토화시키고 나는 장렬히 전사했다. 콩밭을 구슬프게 맸었다는 트로트의 주인공인 그 옛날 아낙네들이 존경스럽다.


에어프라이어에 겉바속촉으로 구운 삼겹살과 겉절이(<무한도전> 끝난 지가 2년이 넘어가는데, 정준하가 떠오르다니) 조합이 신박했다. 혈관 속을 마구 질주하는 돼지고기 육즙이, 늦은 토요일 밤 주저주저하는 내게 달리기를 하고 오라고 울부짖는다. 궈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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