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자존심

<정글의 법칙 개척자들>의 빡친 리뷰

by pdjohn

재미도 없는 방송 프로그램 보고 나서, 시청에 투자한 시간도 아까운데 이렇게 포스팅까지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게 미친 짓 같기도 하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붙잡고 잠시 털어대는 뒷담화 대신 이렇게 혼자서 몇 자 적는 게 그나마 경제적일 듯싶다.

하긴 우리 회사 프로그램 리뷰도 제대로 못해주면서, 내게 1원 하나 던져 줄 것 같지 않은 SBS의 프로그램을 보면서 내 귀한 시간을 쓰다니. 단 1분이 모자라서 죽어가는 엄마를 지킬 수 없었던 영화 <In Time>의 상황이었으면, 이건 정신 나간 짓거리에 다름 아니다. A4 1장짜리 글도 10분이면 후딱 쓸 수 있으니 즉흥적으로 빨리 써보자.

여하튼, <정글의 법칙 개척자들>이라는 이상한 프로그램이 어제 끝났다. 코로나로 해외에 못 나가니, 국내에 인적이 드문 곳에 가서 어떻게라도 <정법> 비슷하게 만들어서 편성을 메꾸겠다는 제작PD의 장한 일념이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애사심을 높히 산다. 하지만, 어촌 마을의 낚싯배를 돈 주고 빌려서 선장이 놓은 낚싯줄에 걸린 삼치를 잡아 올려 내가 잡았다는 하는 경우는 여행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통하기 힘든 '시바이'가 아니냐는 말이다. 작가가 제정신인가 싶다.

최지만의 삼치 잡이에 비하면, 같은 시간, 어촌의 양식장에서 돌멍게를 캐는 김병만과 박군은 그마나 양반이다. 물속에 들어가서 어렵게 직접 잡아왔으니 말이다. 물론, 그간 <정법>에서 보여주었던 인도네시아나 태평양 섬이라는 로케 장소가 대부분 관광지 인근 지역이거나 현지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것에 비하면, 국내라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우리가 디스커버리나 NGC의 퀄을 바라고 SBS를 보는 것은 아니니까.

이미 우리는 그간, KBS <도전, 지구탐험대>와 MBC <아마존>와 같은 방송 프로그램 시청을 통해서, 현지인들의 민속춤, 사냥 이벤트와 같은, 적게는 100~200달러, 많게는 1,000달러짜리 공연을 숱하게 보아 오면서, 적당한 속임 그리고 넘어가 주는 관용에 훈련이 되어있다.

다시 <정글의 법칙 개척자들>로 돌아가면, 출연자들이 묵었던 장소인 폐교(?) 또는 폐가가 특히 신경에 거슬린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는 설정을 할 거면 직관적으로 인공 건축물이 없는 곳이 기존의 <정법>의 이미지를 공유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보는 내내 트럭과 경운기가 지나다니는 '신작로'가 나오는 등 고개만 넘으면 펜션들과 횟집들이 즐비할 것만 같은 느낌을 간접적으로 주는 그런 건물에서 자야 했을까 싶다.

굳이, 전기가 있어서 실내에 불이 들어오고, 최지만이 온수 보일러로 데운 듯한 '따수운' 물로 머리 감을 때, 홈쇼핑 방송처럼 4개를 DP 해놓고 광고 같은 풀샷을 보여주던 샴푸 PPL까지 언급하고 싶지 않다. (아, 이 샴푸 장면은 솔직히 부러웠다. 그렇게 시청자 눈 신경 안 쓰고 열심히 광고주 빨아주는 제작PD들과 일할 수 있다면 좋겠다.)

뭐니 뭐니 해도 이 마지막 회차의 압권은, 송셰프라는 사람이 삼치를 요리하면서, 자랑스럽게 꺼낸 '연장'들이다. 바로, '쯔유', '참치액'을 포장도 안 뜯은 대병으로 꺼내놓고 자랑스럽게 매운탕에 넣는 것이다. '이것만 넣으면 국물이 죽인다'는 멘트를 굳이 강조해가며 말이다. 초등학교 3학년만 돼도 알 수 있는 뻔한 PPL이지만, 굳이 '정글'과 '오지'를 표방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쯔유와 참치액을 상표까지 자랑해가며 매운탕에 투하해야 했을까.

<정법>처럼 대놓고 오지를 표방하지 않는 tvN <삼시 세 끼>에서도, 찌개에 라면 스프나 참치캔을 하나 넣으려고 해도, 제작진과 밀당을 하는 시추에이션(or시바이)을 만든다. 물론, 이것도 재미 포인트로 사용한다마는.

송셰프에게 이런 부탁을 하면서 미안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도 가져보고, 또 도대체 얼마를 받았길래 이렇게 무리해가면 PPL을 했을까 궁금함도 생긴다.

물론, 이것도 에필로그에 나오는 '현풍닭칼국수' 장소PPL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셰프라는 사람이, 최지만에게 음식을 먹이고 싶었으면, 자신의 집이나 가게에 가서 요리를 해줄 것이지, 왜 간판이 화면의 1/4 사이즈로 노출되는 처음 보는 식당에 가서, 굳이 칼국수를 먹였을까 하는 아이러니 하다 못해 코믹한 상황이다.

힘쓰는 후배에게 먹이려면 소갈비나 등심 구이를 사줄 것이지. 쪼잔하게,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수에게 칼국수라니. 이렇게 손가락 아프게 적는 것은, 이런 것이 PPL임을 몰라서도, 또 방송사의 광고 매출로 필요해서임을 몰라서도 아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정글'과 '오지' 컨셉의 프로그램에 어울리지 않는 '닭칼국수'를 이렇게라도 집어넣은 제작진의 의지와 노력이 대단하다고,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이점은 정말 부러운 점이다.

하지만, 문제는 '크리에이티브'가 구리다는 것이다. 어차피 노출시킬 거면, 좀 더 덜 어색하게, 좀 더 재미있게 구성에 녹일 수는 없는 것이었을까? 앞서 언급한 tvN의 <삼시 세 끼>처럼 고급스럽고 재미있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리 투박하게 노출을 해야 했을까 하는 아쉬움에 몸서리가 쳐진다.

삼성그룹 부회장 이재용이나 연예인 걱정해주는 것처럼 쓸데없는 일이 없다고 한다. 나도 잘 못하면서, 누구보다도 잘하고 있는 SBS 이야기가 웬 말이냐 싶기도 하다. 노파심이겠으나, 방송국넘들이 돈에 눈이 멀었다는 지탄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광고로 운영하는 방송사의 생리지만, 최소한, 전문가로서 일을 하면서, 시청자 앞에서 없어 보이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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