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의 밤

넷플릭스가 제공한 누아르

by pdjohn

영화가 귀한 시절엔 뭐라도 고마운 법인지, 누아르의 외피를 쓴 영화가 고맙다. <극한직업>을 의식했는지 코믹도 아니고 시종 깐족대는 캐릭터들이 누아르의 톤을 깨뜨리며 눈에 거슬렸지만, 전여빈과 엄태구의 드라이한 눈빛과 목소리가 빚어내는 반칸 플랫된 화음이 자작하게 젖어들게 만든다.

차승원의 대사, 윤문식의 캐스팅 자체가 아쉬웠다. 그리고 엄태구의 과한 맷집과 전여빈의 과하다 못해 초능력에 가까운 사격 능력도 아쉬웠다.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개연성의 부족이 누와르를 코믹 현판으로 만들어 버렸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커녕 로케이션이라고 해봐야 사우나, 공항, 제주도의 창고, 횟집, 식당, 펜션 정도로 단촐했지만, 전여빈과 엄태구 사이에서 형성되는 좁디좁은 관계성에서 나름 감칠맛 나는 공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낙원의 밤>은 <신세계>, <마녀> 같은 박훈정 감독의 몇몇 전작들이 투영되는 시나리오와 제주도 그리고 두 주연 배우만 기억에 남는 다소 아쉬운 영화다. 박훈정 감독에겐 딱 이 정도가 '창의력'을 구사할 수 있는 유효한 스케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주는 영화지만, 마지막까지 열 일하는 전여빈의 공허한 눈빛이, 총알처럼 계속 머릿속을 맴돌며 여운을 준다.

오래전에 가보았던, 제주도 작은 횟집의 물회 맛이 떠오른다. 칼칼하면서도 달콤했던 시절의 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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