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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인생의 상관관계

by pdjohn

사진을 찍고 싶을 때가 있다.

카메라와도 같은 스마트폰을 24시간 손에 들고 다니며, 수시로 촬영을 하는데도 아이러니컬하게, '사진'을 찍고 싶을 때가 있다. 맛있는 밥을 앞에 놓으면 으레 포토타임이 있고, 수업시간에도 필기 대신 칠판을 찍는, 마치 촬영이 호흡처럼 되어버린 시대임에도 문득 '사진'을 찍고 싶은 때가 있다. 정말 '사진'을.

기념을 위해서, 즐거운 순간을 위해서,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위해서 남기던 소중한 이미지를 '사진'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사진은 딱 한 장만 보관이 되는 태생적인 희소성을 지녔다. 시간이 지나면 모성을 품은 필름은 간데없고 모서리가 닳고 접힌 사진 한 장만 남는 것이다.

스마트폰과 PC에 수천 장 수만 장 쌓여가는, Ctrl+C, Ctrl+V가 가능한 파일 따위들과는 다른 가치가 있다. 어차피 PC에 세 들어 살다가 언제 떠나버려도 아쉽지 않은 세입자와 같은 것이 사진 파일들이다. 그나마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의 포스팅용으로 간택이 되는 파일들은 행운아들이다. 수천 장 중에서 고작 백여 장이 안 되는 미약한 존재들인 것이다.

그래, 근본 없는 디지털 따위는 이제 그만 언급하고, 본격적으로 사진 이야기를 해보자. 필름 카메라를 보면 누군가의 인생이 연상된다. 필름 카메라는 셔터를 누르고 나서 바로 어떻게 찍혔는지 알 수 없다. 다음날 아니면 3~4일이 지나야 현상과 인화 과정을 거쳐서, 찍을 당시, 며칠 전 과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포커스와 색이 제대로 맞은 사진을 받아볼 수 있다. 종종 이중 노출되거나 렌즈에 손가락이 찍힌 사진도 끼어있다

사람의 인생도 역시 그가 가 죽은 다음에서야 그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살아있을 당시엔 적절한 평가가 어렵다. 우리가 숨 쉬며 겪는 모든 일들이 사전에 어떤 연습도 없이 맞이하는 일들이다 보니, 낯선 현재와 맞닥트리며 태생적으로 실수하고 후회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은 울었지만 내일은 배꼽을 잡고 웃을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선택하는 일들에 대한 평가가 쉽게 용납될 수 없는 이유다.

결국, 내가 찍은 사진이 잘 나오길 기다리며 후회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로 인생과 사진은 공통점이 있다. 어떤 사진을 찍고 싶다는 욕망은 어떤 인생을 살고 싶다는 희망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대단하지 않은 개똥 철학과, 직관을 의지해야 하는 일이므로.

지난 주말엔 서랍 깊숙이 모셔 놓았던 카메라를 꺼내서 케이스와 바디에 묵은 때를 닦아냈다. 이 카메라는 그간 여행 갈 때마다 어깨 혹은 목에 걸고 다니면 콤팩트한 녀석이다. 간직하고 싶은 피사체엔 이 카메라를 사용할 계획이다.

사진을 찍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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