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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 토끼와 부귀영화

by 대한

인도 우화에 《겁쟁이 토끼》라는 것이 있다.

'숲이 무너지면 어떡하지?'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던 작은 토끼가 바나나 나무에서 떨어지는 '쿵' 소리에 놀라 도망을 간다. 이를 본 동물 친구들이 그 뒤를 따라 함께 도망을 간다. 쫓아오는 다른 동물들을 보면서 숲의 종말을 확신한 토끼는 더 죽어라고 도망을 간다. …



우리가 잘 아는 우화이지만 마냥 따라 웃을 수만은 없다. 우리 모습에 그것과 유사한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동물처럼 생존본능이라는 틀에 갇혀 있다. 긴박한 무리의 발자국이 있을 때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자연에서 순간적인 판단 실수는 곧 도태를 의미한다. 때문에, 우리는 그 무리에 낄 것인지 아니면 무리와 반대로 갈 것인지 정해야 하고, 그 방향은 곧 ‘생존과 죽음의 갈림길’이 된다. 이때 가장 안전한 선택의 하나는 무리에 끼는 것이다. 무리에 끼면 적어도 혼자 망하는 일은 없다. 망해도 같이 망하는 길이다. 뛰는 무리가 있으면 같이 뛴다. 그래서 오늘도 토끼가 달리고 노루도 달리고 늑대도 달리고 있다.



조선 시대에 모든 양반들이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 있었다. 과거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다. 온 집안 식구와 식솔들이 오로지 자식, 아니 아들의 과거 준비에 매몰되어 있었고, 그것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본인의 입신양명은 물론 가문의 몰락을 자초하는 일이었기에 불행으로 여겼다. 그와 같은 광분의 행렬은 결국 나라가 망하고 나서야 멈췄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 길로 가고 있다. 바로 일류대학에 가는 일이고 하다못해 ‘인서울’하는 일이고 법대에 가서 고시패스하거나 의대에 가서 의사가 되는 길이다. 우리 나이가 되면 대부분 팔불출의 나이를 넘어 손자 자랑으로 넘어가는 시기인데, 놀랍게도 자식이 서울에서 대기업에 자리를 잡거나 의사, 법관으로 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자랑의 하나다.



어린아이의 경우는 더 큰 일이다. 아무리 조기 교육이 교육적으로는 효과가 없다고 해도 영어 유치원이며, 조기 교육을 위한 학원이며 보내야 하는데 소득이 높을수록 그 경향이 강하다. 모두 자식들이 인서울 하지 못할까 봐 조바심을 내는데 입으로는 지역균형발전이 안된다고 푸념이다. 또 부가가치가 낮은 법대나 의대에 가려고 하는데 나라의 신성장동력이 없다고 난리다.



늘상 하는 말이지만 다양성이 무너지면 발전이 쉽게 한계에 다다른다. 지금까지는 일치단결하는 모습으로 급격하게 발전해 왔지만, 따라가는 사회가 아닌 선도하는 사회라면 한계가 있다. 이제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바탕으로 발전해야 하는 시기다. 온 국민이 좁은 국토 안에서, 자신이나 사회 전체의 발전이 아니라 자신만의, 혹은 자기 집안만의 ‘이익’이라는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K-문화는 다양성의 한 표상이 되고 있다. 서울 출신도 아니고 일류대학을 나온 것도 아닌 방탄소년단이 세상을 누비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이와 같은 다양성의 성공과 존재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 이런 사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선대의 엄청난 역사를 통해서도 통렬하게 배워야 한다. 후기 조선 유학의 폐해와 동족상잔의 이념전쟁과 산업화의 시기에서의 숱한 사례를 통해 배움이 있어야 한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미래가 어두워진다. 과거는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우리 불안의 근원인 ‘바나나’를 발견할 사자가 필요하다. 그 사자는 담대한 마음을 갖는 사자다. 무리의 발자국을 따라가지 않고 차분하게 세상을 되돌아볼 수 있는 담대함을 갖추고 있는 사자다. 그런 담대한 사자만이 우리의 문제를 직시하고 근원적인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줄 사자는 어디에 있는가?



5월에 인도 우화를 보면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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