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피해야 할 문화
많은 경영 전문가의 주장에 따르면 ‘회사에서 비용을 줄이면 이익은 늘어나나 부가가치는 늘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비용을 줄이는 것은 외견상의 일이고 실제로 파이를 늘리지 않으면 부가가치가 늘어나지는 않다는 말이다. 또 이 경우에 비용 감소로 생긴 이익이 구성원 전체에게 돌아가기보다는 회사 생존과 같은 어느 하나의 목적으로 치우치게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결국 이익의 절댓값을 늘리고 실제적인 부가가치를 늘리기 위해 중요한 것은 비용 절감과 상관없이 파이를 늘리는 것이고 이러한 파이가 늘어난 때야만 이익이 전체 구성원에게 돌아간다는 뜻이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봐도 통일신라시대처럼 해상교류의 주도권을 쥐고 국제무역을 주로 할 때는 부(파이)의 확장으로 전체 국민이 잘살게 되어 먹고사는 문제가 적었지만, 고려 후기와 조선시대로 내려오면서 국제 교역은 물론, 상공업이 줄고 농업을 주로 하는 시대가 되니 관리형 문화로 바뀌면서 내부의 자원을 가지고 비용을 줄여 이익을 만드는 사회가 되면서, 기득권만의 이익을 확보하는 문화가 만연하게 되었다. 앞의 예처럼 전체 이익은 증가하지 않는데 치우친 이익 배분으로 극심한 소득 불평등에 이르게 되는 상황이다. 물론 이에는 국제 교역의 감소에 따라 상업뿐만 아니라 연관 분야인 수공업과 광업 등 기술 분야의 발전도 함께 줄어들면서 사회 전체의 파이가 줄어든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옛날에는 지주 밑에 ‘마름’이라는 직책이 있었다. 마름의 역할은 원래 지주를 대신해서 소작인을 관리하는 것이었지만, 점차로 소작인을 쥐어짜서 양반의 몫을 늘려주고 자신이 받게 될 임금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당연히 지주 입장에서는 온갖 잡다하고 번거로운 일을 마름이 다 해주고 귀찮은 일들도 모두 알아서 해주는 데다가 자신의 이익을 챙겨주니 여간 편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시스템 하에서는 이런 ‘마름 방식’으로 이익의 전체 크기는 늘어나지 않고 희생을 강요하여 부의 편중만 크게 할 뿐이다. 즉, 전체적인 부가가치가 하나도 늘어나지 않는 것이다.
조선은 성리학이 관리 등용의 근간이 되면서 상공업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저하로 점차 이러한 상공업에 대한 발전이 축소되었으며, 농업에서도 전체적인 관리 전부를 마름에 일임하는 ‘마름 문화’를 도입하여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는 농업도 발전이 더딘 사회가 되었다. 오죽하면 진상품의 폐해가 가장 컸던 제주에서는 말이며 귤이 남아나지 않았을까.(귤이 복원된 것은 해방 후로 우장춘 박사의 공이 컸다고 한다) 다행히 정부에서 하나 남은 주업인 ‘농업’의 중요성을 인식한 까닭에 농업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모든 사회 구성원이 농업 이외의 상공업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이 향상된 것은 일본으로부터 상공업 관련 문화가 들어온 다음의 일이었다.
이들 마름의 소위 ‘관리 문화’는 성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전체적인 파이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 시기는 많은 관리력이 필요할 때이며, 점차로 성장이 멈춰 그 폐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유효함을 유지한다. 따라서 급속한 성장 시기에 ‘관리자’는 관리력을 높여 회사의 안정을 꾀하는 데 큰 역할을 하지만 점차로 조선시대의 마름처럼 하청업체와 협력업체를 쥐어짜서 보신하는 자신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그 결과로 자신의 자리를 보존한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이익을 넘어선 어떠한 비전이나 안목도 필요하지 않는다. ‘단기적인 성과’ 그것이 그들의 지상목표다.
결국 세상에는 두 가지 문화가 남는다. ‘더 많은 부’를 확장하여 더 많은 이익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문화와 ‘있는 부’를 잘 관리하여 내 이익을 늘리는 문화가 그것이다. 더 많은 파이를 만드는 것이나 파이를 늘리는 것은 결국 각자에게 돌아갈 몫을 키운다는 의미가 있지만, 분배될 파이의 면적을 조절하는 것은 전체적인 몫은 같은 데 각자에게 배분되는 이익이 변화되는 것이다.
관리형의 문화는 일면 낭비를 줄이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점이 있지만 부가가치의 측면에서는 일방향적인 면이 강하므로, 문제가 되는 것은 부가가치에 대한 관점이다.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제고하지 못한다면 결국 기존의 부가가치를 독점하는 쪽으로 바뀐다. 힘 있는 자는 자신의 몫을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러한 철면피 같은 일을 공개적으로 하기를 꺼린다. 그래서 마름의 역할이 생긴다. 이것이 마름의 역사다.
이것에서 벗어나는 일은 우리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도록 격려하는 일이다.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많은 학습과 참여를 필요로 하며, 다양한 소통과 협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이런 소통과 협력은 마름의 역할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마름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위협적인 일이다. 때문에 그들은 이런 변화에 저항을 한다.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또 다른 방법은 다양한 입장에서 일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한 시각이 우리를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또 다른 벽을 넘어야 하는 것이 많지만 우선적으로 다양한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구성원을 이루어야 하고 그들 간의 소통도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어느 것도 현재 사회구조로는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하기가 어렵다.
남의 기술을 따라갈 때의 전략과 자신이 기술을 선도해야 할 때의 전략은 다르다. 우리가 세계적인 첨단 기술을 만들고 선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략과 함께 새로운 전략이 스며들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양성의 구성과 함께 수용성과 포용성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남과 얘기할 때 목에 핏대만 세우고, 나만 옳다는 생각만으로는 그러한 문화를 키울 수 없다.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고 생각하고, 내가 믿는 대로 하지 않으면 저주를 퍼붓고, 더군다나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힘으로 눌러 그 목적을 달성하려는 생각으로는 더더군다나 이룰 수 없다. 우리는 마름 문화의 폐해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더 이상 따라가는 국가에 머물러 있기만 하지 않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