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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 Aug 26. 2023

경남의 3대 신비

      

오래전부터 진주를 방문하는 사람, 아니 정확하게 우리 학교를 방문하는 외지 사람들을 만나면 하는 여러 얘기 중에 경남의 3대 신비에 관해서 얘기하곤 했다. 물론 이것은 세간에 회자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지어낸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주관적인 이야기다. 근거도 없다. 그러니 혹시 포함되지 않은 지역에 사는 분들은 혈압을 올릴 필요도 없다.   


           

예전에 합천 대가야박물관에 갔다가 그곳에서 전시물 설명을 해주시는 문화해설사에게 합천의 명소 세 군데만 꼽는다면 어디를 꼽을 것인가? 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분은 주저 없이 세 군데를 추천했는데 그 첫째는 합천 해인사였다. 국보이자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과 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전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두 번째로는 가야 시대의 발굴문화재를 보관하고 있는 합천 대가야박물관이다. 경주 이외의 지역에서 유일하게 출토된 ‘로만 글라스’와 화려한 ‘용봉무늬 둥근고리자루큰칼(용봉문 환두대도)’가 출토되어 유명해진 옥전리 고분군을 배경으로 세워져 있다. 세 번째는 남명 조식 선생의 생가지와 그 근처에 있는 뇌룡정이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뇌룡정은 조선 연산군 7년(1501)에 남명 조식이 지은 정자로, 1900년대 초 허위 등이 고쳐지었다고 한다. 남명 선생은 48세 때 합천군에 뇌룡정과 계복당을 짓고 학문을 연구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뇌룡정이란 장자에 나오는 ‘시거이용현, 연묵이뢰성:시동처럼 가만히 있다가 때가 되면 용처럼 나타나고, 깊은 연못과 같이 묵묵히 있다가 때가 되면 우뢰처럼 소리친다.’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한다.” 뇌룡정 근처에 합천군에서 최근에 세운 용암서원과 남명교육관이 있다. 남명 선생의 생가지가 있는 합천에서도 남명 선생의 위치를 알 수 있는 곳이다. 그 때문에 문화해설사께서도 그곳을 추천한 것 같았다.     


     

그런데 경남으로 넓혀보면 어떨까? 사실 경남에는 가봐야 할 곳에 너무 많다. 경승지도 있고 자연이 아름다운 곳, 유적지, 문화재 등등 분류하기에 따라 수백 곳이 나올 것이다. 그중에 신비한 곳을 골라서 추천한다면 어느 곳이 될까?     


첫 번째로 이야기하는 경남의 3대 신비는 밀양의 ‘땀 흘리는 비석’으로 유명한 사명대사 표충비다. 위치는 밀양시 무안면 동부동안길 4이다. 밀양 무안초등학교 옆이다.      

두산백과에 의하면 “일명 사명대사비라 부르는 이 비는 1972년 2월 1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높이 약 4m, 너비 약 1m, 두께 54.5cm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끌어 왜병을 크게 무찌르고 일본에 전쟁포로로 끌려간 조선인 3,000명을 환국시킨 유정(惟政:泗溟大師)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옛 표충사(表忠寺) 터, 즉 표충사(表忠祠)의 동쪽인 이곳에 1742년(영조 18) 대사의 5대 법손(法孫) 남붕(南鵬)이 경산에서 갖고 온 돌로 건립하였다.

비신(碑身)과 화강암의 비개(碑蓋)를 갖추었고, 경주석재인 빗돌은 까만 대리석이며 좌대석(座臺石)과 이수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뒷면에는 휴정(休靜의 행장(行狀)이 새겨져 있고 측면에는 밀양 표충사에 대한 내력, 그리고 기허(驥虛) 대사의 비명이 명시되어 있다. 비문의 내용은 영중추부사 이의현이, 글씨는 홍문관 부제학 김진상이 쓰고 판중추부사 유척기가 전서하였다.”라고 한다.          

이 비가 유명한 것은 나라에 큰 사건이 있을 때를 전후하여 비석의 표면에서 땀방울이 맺혀 흐르기 때문이다. 그 양도 어마어마해서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땀을 흘린 사례를 보면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을 시작으로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1945년 8·15 해방, 1950년 6·25 전쟁, 1985년 남북고향 방문 등에 땀을 흘린 기록이 있고, 최근에는 2008년 FTA 소고기 협상, 2009년 김수환 추기경 선종, 2010년 천안함 침몰, 2017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땀을 흘렸다고 한다.(연합뉴스)” 특히 3.1운동 때는 5말(100리터)이 넘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2018년 1월에 밀양 병원 화재 때도 눈물을 흘렸으며 코로나가 유행하기 직전과 유행이 전성기에 이른 2019년 11월과 2020년 1월에 여러 번 땀을 흘리기도 했다. 이 땀의 양은 표충비를 관리하는 홍제사 스님이 순찰을 돌다가 땀 흘리는 것을 발견하면 수건으로 닦아내고 짜서 양을 잰다고 한다. 땀은 마치 구슬처럼 흐르는데 이것을 두고 밀양 시민들은 나라와 겨레를 존중하고 근심하는 사명대사의 영검이라 하여 신성시한다. 다만 땀은 글자의 획 안이나 머릿돌, 조대에서는 물기가 전혀 비치지 않고 글씨와 글씨의 사이인 자간에서만 맺혀서 흘러내린다.          


두 번째 신비도 역시 밀양에 있는데 ‘밀양 얼음골’이라고 한다. 국내에 얼음골이라고 부르는 곳은 여러 곳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하고 강력(?)한 곳이다. 밀양 얼음골은 남부 지방에 많은 너덜지대(돌이 많이 흩어져 있는 비탈지대)에 형성되어 있는데 겨울의 찬 기운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있다가 여름에 무더위가 지속되면 땅속의 찬 기운이 상승기류에 의한 기압 차이로 빠져나와 지표면에 얼음이 얼게 만드는 현상이라고 한다. 따라서 장마가 지속되거나 기온이 높지 않은 여름에는 얼음이 잘 얼지 않고 차가운 냉기만 뿜어내고 있다가 아주 무더운 여름이 되면 본격적으로 찬 기운이 나와 얼음이 언다. 밀양 얼음골은 영남알프스 산맥의 주봉 천황산(1,189m)의 북쪽 해발 600미터 지점에 있으며 얼음골 계곡물은 계곡 아래 끝에서 인근 호박소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쳐지는데 두 물의 온도 차가 확연하다. 가끔 물속에 손이나 발 오래 담그기 내기를 하는데 거의 모든 사람이 2분도 버티지 못하고 실패하고 만다. 밀양 얼음골은 표충비와 만어산 만어사 경석(소리 나는 돌)과 함께 밀양시가 선정한 밀양 3대 신비의 하나이기도 하다.         

 

세 번째 신비가 바로 진주의 ‘우는 돌(명석, 鳴石)’이다. 밀양 표충비와 같이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우는 돌이라고 해서 명석(울돌)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진주시에는 이 이름을 딴 면(面)인 명석면이 있다. 작은 동네나 마을 이야기가 아니라 면 단위 규모의 공신력 있는 이야기라는 의미다. 명석면은 홈페이지에서 「보국충석의 고장」 임을 자부심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그 유래를 밝히고 있다. 

‘명석의 유래가 된 명석은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 산278’에 위치하고 있으며 보호 비각인 명석각 속에 있다. 경상남도민속자료 제12호(1988년 12월 23일)로 지정되었으며, 두 개의 자웅석(雌雄石)으로 되어 있는데 남근 형상의 웅석은 높이 97㎝, 둘레 214㎝, 족두리 모양의 자석은 높이 77㎝, 둘레 147㎝의 크기이다. 재질은 화강암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돌을 운돌 혹은 울돌이라고 하는데 진주읍지에 의하면 자웅석은 고려 23대 고종 18년 오랑캐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진주성을 석조로 축조한다는 소리를 듣고, 집현산의 암석이 석성 축조공사로 힘든 백성들의 고충을 덜어주고자 가던 중 광제사 승려로부터 축성이 끝났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전신에 눈물을 흘리며 크게 울어 그 자리에 섰다고 한다. 그리고는 진주성의 축조물이 되어 나라를 지키는데 일조하지는 못했지만 나라의 큰일이 있을 때마다 이를 알려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한 쌍의 자웅석을 운돌이라 이름하여 그들의 보국충정을 기리고 있으며 면민들에게 나라와 고장사랑의 혼을 심어주고 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3월 3일 날이 되면 동제를 지내는데 명석각보존위원회 주관으로 명석면의 동전마을과 면민이 참여해서 지낸다고 한다. 한 가지 흥미 있는 사실은 밀양 표충비의 관리를 홍제사(弘濟寺)라는 사찰에서 하는데 진주 명석의 전설은 광제사(廣濟寺) 스님이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서민들이 고단한 삶과 어려움에서 구제하려는 큰 뜻과 연계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광제사는 현재 폐사되고 광제서원이 들어서 있다.          



경남의 3대 신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만 세 번째 이야기에 대해서는 경남도민은 물론 진주 시민도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다. 진주 시민의 경우 명석면은 알고 있지만 명석의 뜻이 ’운돌‘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하는 분들도 많았다. 우리에게도 홍보가 필요하다.    

       

같은 사실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때는 각색이 되고 윤색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자꾸 하다가 보면 생명이 되어 활발발하게 살아나서 또다시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지만 아는 이야기도 하지 않으면 퇴색되어 먼지가 쌓이고 잊혀져 간다. 서툰 이야기도 자주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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