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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 Aug 27. 2023

보아뱀

       

프랑스와 미국 작가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는 어른들이 읽는 동화책이라고 부를 만큼 여러 세대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 많다. 그래서 무려 300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표준어뿐만 아니라 제주도어(두린 왕자, 한라일보, 2006), 경상북도어(애린 왕자, 최현애, 2020), 전라북도어(에린 왕자, 신재홍, 2021)로도 번역되었다는 것이다. 『어린 왕자』라는 공통적인 내용을 가지고 잊혀가는 토속어로 공감과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 『어린 왕자』에 보면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뱀」 이야기가 나온다. 모자처럼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이 그림이 뭐냐고 묻는다.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수 있지만 대부분이 모자라고 대답한다. 어린 왕자는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뱀이라고 이야기하며, ‘코끼리를 한 번에 삼킨 보아뱀은 코끼리를 소화하는 데 온 힘을 다 쓰다 못해, 코끼리를 삼킨 죄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라고 걱정한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우화를 들으면서 생각하니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뱀이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 현대인의 다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소 건강에 무척이나 신경을 쏟는 나조차도 맛있는 음식을 보면 양껏 먹고 나서 숨을 헐떡이며 소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소화시키는 데 온 힘을 쏟지도 못하고 있다.’ 너무 많이 먹은 것에 대한 죄책감이나 양껏 먹은 것에 대한 후회로 인해 걱정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풍족하게 살게 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경제적으로도 넉넉지 않아서 외국에서 많은 식량을 수입할 수 없었던 시기였다. 그 당시에는 많은 음식을 먹을 기회가 흔하지 않아서 잔치가 있거나 하면 보아뱀처럼 많이 욱여넣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음식이 상대적으로 풍족한 지금 시대에도 식탐으로 음식을 채워 넣는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 무척 낯설다. 음식이 남아 버리게 되는 것에 대한 핑계를 대고 있지만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자신을 보면서 내면의 탐욕에 끊임없이 놀라게 된다.      

지금 만일 국제적으로 큰 문제가 생겨서 외국에서 모든 식량을 수입할 수 없게 된다면,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어떤 알지 못하는 이유로 다시 곤궁해지거나 국제 식량 가격이 우리의 소득으로는 살 수 없을 만큼 비싸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식량의 자립화에 힘쓰고 1차 산업에 더욱 신경을 쏟아야 하는 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나부터라도 더 알뜰한 음식 소비에 힘쓰고 자신의 식탐을 관조하여 줄이는 것을 더 다독여야 하겠다.     

그나저나 우리 서부경남의 표준어로 된 『에린 왕자』는 언제 나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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