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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 Oct 09. 2023

경남에도 석굴암이 있다고?

    

차문화의 도시 진주, 그 중심에 있는 사천시 곤명면 다솔사. 진주의 차인이 많이 머물렀던 차의 원류를 간직한 1,500년 역사의 사찰. 그곳에 보안암(普眼庵)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그 암자(보안암은 행정구역상으로 곤명면 이웃인 곤양면에 속한다)에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굴암이 있다.     

경남에 동굴 법당은 많이 있다. 나도 여러 번 포스팅을 했지만 세계최대의 동굴법당이라고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었다고 알려진 의령 일붕사를 비롯하여, 예술적인 조각들이 돋보이는 함양의 서암정사, 자수정 광산의 지세를 이용한 양산의 송운사, 물량공세가 대단한 큰 규모의 밀양 여여정사와 조금 작은 규모이지만 밀양의 천경사가 있다. 그렇지만 석굴암은 이곳 사천시 곤양면에 있는 다솔사 부속암자인 보안암에만 있다.      

다솔사는 사천 봉명산(일명 방장산, 와룡산, 407.1m)에 있는 천년 고찰이다. 역사가 1500년을 넘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사천시 봉명산시립공원으로 걷다 보면 보안암에 이른다. 돌로 쌓은 축대가 아름다운, 아니 축대에 켜켜이 내려앉은 이끼와 세월의 무게가 아름다운 사찰이다. 원각경 보안보살장이 생각나게 하는 사찰, 저 아래에 곤양면이 아득하게 내려다 보이는 곳, 그곳에 석굴암이 있다. 지금은 무너질까 봐 석굴 안에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문이 여러 개 붙어 있지만 경주의 석굴암처럼 돌로 겹겹이 쌓아서 석굴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조성해 놓았다. 16 나한도 같이 조성되어 있다.(한 구가 사라져 동굴 속에는 15 나한만 있다) 언제 뜻있는 이들이 나와서 석굴암에 대해 정밀측정을 하고 정교하게 들어내고 다시 잘 쌓아 올려서 안전한 석굴암으로 되살아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곳을 조금 지나 물명산(450m) 쪽으로 조금만 가면 시루떡바위가 있다. 시루떡 바위는 2개가 있다. 내가 보기에는 살찐 이의 뱃살에 있는 주름처럼 생겼다. 하나는 여자의 뱃살과 같은 부드러운 주름, 또 하나는 남자의 뱃살과 같은 투박한 주름, 아무튼 시루떡 바위를 지나 조금 더 가면 갓바위가 나온다. 갓을 쓴 두상의 바위다. 갓을 쓴 선비 형상인지라. 높은 벼슬과 학문을 뜻해서 학문을 하거나 벼슬에 뜻있는 분들이 많이 올라와서 입신양명과 백세지세의 공부를 다짐하는 곳이라고 한다. 갓바위를 가는 중간에 눈썹바위가 있다.      

보안암 오가는 길은 ‘명상의 숲길’이라고 명명된 걷기 좋은 길이다. 길도 잘 되어 있어 둘레길로 다니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나들이하기 좋은 날을 골라 한 번 다녀와도 좋은 곳이다. 출발을 다솔사에서 하지 말고 입구 주차장에서 하면 다솔사 입구 측백나무, 삼나무 숲을 걸어 올라가 길 권한다. 숲 중간에 어금혈봉표(이곳에 묏자리를 쓰지 말라는 임금의 지시)라는 글자를 새긴 바위가 있다.

다솔사는 한용운, 최범술, 김동리의 체취가 묻어 있는 곳이다. 또한 앞서 얘기한 근대 차문화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차문화전시관과 차에 대해 배우고, 차밭에도 들려 세속의 묵은 때도 희석할 일이다.               

아래는 위키백과의 다솔사 관련 내용이다.     

다솔사(多率寺)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의 봉명산에 있는 사찰이다. 다솔사가 자리 잡은 봉명산은 와룡산으로도 불리며, 불교식 이름인 방장산이라는 별칭도 있다. 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의 말사이다.     

신라 지증왕 4년인 503년에 승려 연기(緣起)가 창립했다는 전설이 있다. 당시의 이름은 영악사(靈岳寺)였다. 다솔사(陀率寺)로 이름이 바뀐 것은 선덕여왕 5년인 636년이다. 이때 자장율사가 건물을 새로 지었다.     

신라 문무왕 16년인 676년에는 의상이 영봉사(靈鳳寺)로 개칭하였고, 신라 말기에 도선이 증축하면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방장산의 형국이 대장군처럼 "많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있다"(多率)는 의미에서 다솔이라 했다는 이야기 전한다. 고려 말에 나옹이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 중 대양루는 조선 숙종 때 중건하면서 지어진 것이고, 나머지 건물은 19세기 이후에 세워졌다.     

일제강점기에 항일 승려로 이름이 있던 한용운과 최범술이 기거해 유명해졌고, 김동리는 다솔사 야학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소설 〈등신불〉을 썼다.     

경상남도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문화재를 4점 보유하고 있다. 18세기 양식의 누각인 대양루와 응진전, 극락전, 그리고 다솔사 산하의 보안암 석굴이다. 일주문이나 천왕문이 없고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찰 뒤편에는 차밭이 조성되어 있다.          

경상남도 사천에 있는 보안암은 1947년 5월에 세워졌으나 실제 석굴은 고려 후기에 승려들의 수도장으로 이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자연석을 계단식으로 쌓아 올린 분묘형(墳墓形)의 석굴로 외부형태는 앞면 9m·옆면 7m가량의 사각형에 가까운 모습이다. 정면에는 돌기둥을 세워서 입구를 만들고 있으며, 윗면은 완만하게 경사를 이룬 둥근 모양이다.     

석굴 안에는 높이 1.8m가량의 석조여래좌상 1구와 자연석을 소박하게 다듬은 16 나한상이 있다. 천장은 긴 돌 2개를 동서로 걸치고 다시 그 위에 또 하나의 긴 돌을 걸치고 있는 모양이다.     

인공으로 만든 이 석굴은 규모나 평면 형태, 모시고 있는 불상 등에서 비록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석굴암 석굴(국보 제24호)과 군위삼존석굴(국보 제109호)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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