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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 Oct 28. 2023

퇴임 교수님의 일상

오랜만에 지도 교수님이 진주에 오셨다. 학과 정년퇴임교수모임이 있어서다. 그 모임 이튿날 아침에 교수님 내외분을 뵈었다. 교수님은 사모님과 함께 차를 몰고 오셨단다. 내외분 모두 건강해 보이셨다. 근황을 물었다.      

지난봄에는 실버댄스지도사과정을 다니신다고 했다. 사모님은 물론 손위 처형-동서 부부와 같이 다닌다고 했다. 소원했던 처형 부부 사이가 같이 댄스에 다니면서 가까워졌다고 한다. 두 내외가 같이 활발한 활동으로 관계가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건강해지고 성격도 활발해졌다고 한다. 교수출신답게 예습-복습을 철저히 하고, 학습에 다녀와서는 발모양과 몸의 이동상황을 꼼꼼하게 피피티로 만들어 향후 지도를 위한 교안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1급 자격증을 따고도 왈츠 등 다른 파트로 옮겨가면서 배움을 계속한다고 한다. 발표회에서 빨간 모자와 연미복 신사 복장을 하고 찍은 사진 속에서 젊고 세련된 모습으로 서 계셨다.      

최근에 다니던 교회에서 남성 중창단에 나가시면서 알토 파트를 맡으셨는데 노래를 통해서 친목과 화합을 다지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음악을 같이 공부하면서 실력도 늘고 또한 감동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마침 교인이 하는 무료 색소폰 강습회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색소폰을 구입해 배우고 있다고 한다. 교회에서의 연습만으로는 부족해 집 근처에 연습실에 등록해 다니면서 열심히 색소폰을 익히고 있다고 한다. 여가 시간에는 댄스를 교회 성가에 맞춘 율동으로 개발하여 율동(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노인 신도들이 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여가를 활용하고 활동할 수 있어 좋아라 한다고 한다. 주중에는 아파트 헬스장에 들려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는데 마침 아파트 동대표를 뽑길래 출마했더니 당선되어 동대표로 봉사도 한다고 한다.      

사모님은 사모님대로 두 딸의 아이들 보모(?) 일을 하면서 여전도회에서 다양한 소임과 함께 레크리에이션 담당을 맡아 바쁘게 지낸다고 한다. 또 손녀와 함께 골프연습장이 가서 땀을 흘리며 젊게 사신다고 한다. 자녀분들이 걱정하면 우리는 잘 지내고 있으니 너희들이나 걱정이나 하라며, 우리도 바쁘니 자주 올 필요 없다고, 필요할 때 오라고 하신다고 한다.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사시니 자녀들과도 서로 부대낄 일도 줄고, 간섭도 줄어들어 좋고, 또 필요할 때는 같이 지낼 일도 만들고 대화 주제도 다양해져서 좋고, 필요한 것은 서로 협력하면서 사니 오히려 좋단다.      

피아노를 전공한 사모님은 교수님의 중창 파트 연습 때 도움을 주고, 교회 안내지나 레크리에이션 진행에 교수님이 인쇄물과 준비물을 만들어주면서 오히려 서로 재미있게 사신다고 한다. 또 처형내외분과도 자주 왕래를 하면서 같이 댄스를 배우고 연습하다가 보니 더 가까워지고 자주 왕래하여 안부를 확인하니 걱정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자연은 모두 자신의 인연에 맞추어 최선을 다해 산다. 씨앗이 떨어진 곳이 흙이라고는 한 줌 밖에 없는 바위 위라고 해서 불평하지 않는다. 교수님은 사람도 그래야 하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일본이 망해도 이 책 한 권만 있으면 일본의 정신을 되살릴 수 있다고 했던 일본의 선사(禪師)가 있었다. 그 책은 중국스님의 말씀을 기록한 《임제록(臨濟錄)》이라는 책인데, 그 선사가 책에서도 딱 한 구절만 뽑으라면 이 구절만 뽑겠다는 그 구절이 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곳이 모두 진리의 자리다는 뜻으로, 자기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 구절이다. 교수님의 삶은 그 구절이 생각나는 생각나는 삶이다.      

나에게도 곧 닥칠 일이다. 어찌 사는 것이 자신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고 사회도 행복하게 사는 일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할 일이다. 가방 끈이 긴 사람들은 세상에서 받은 것이 많으니 돌려줘야 하는 것도 많다. 물론 세상 사는 이야기에 한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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