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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 Nov 11. 2023

천왕상이 없는 사찰과 내가 본 가장 창의적인 천왕상

      

전라남도의 두륜산 대흥사(頭輪山 大興寺)는 전남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손꼽히는 명당에 자리 잡은 명찰의 하나로 수많은 수행자들이 거쳐간 도량(사찰)이다. 규모도 엄청나서 드넓은 대지에 수많은 전각이 있다.      

대흥사 입구에 있는 부도전을 지나다 보면 대흥사가 얼마나 많은 수행자들이 거쳐 갔는지 어림짐작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엄청난 역할을 하셨던 서산대사께서도 유언으로 이곳에 의발과 발우를 전했으며, 대사의 탑비가 부도전에 있다. 이곳에선 서산대사의 법맥을 이른 풍담의심스님으로부터 초의(의순)선사까지 13분의 대종사와 만화스님으로부터 범해스님까지 13분의 대강사가 배출된 곳으로 그러한 유적과 근대의 전강선사의 자취까지 남아 있는 대 수행도량의 면모를 나타내고 있다.(마침 대흥사에서는 전강선사의 제자인 송담스님의 서화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면 해탈문이 나타난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수미산 정상에 제석천왕이 다스리는 도리천이 있고, 그곳에 불이문(不二門) 즉 속계를 벗어나 법계에 들어가는 해탈문이 서 있다고 한다. 2002년에 건립된 대흥사 해탈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내부에는 사자를 탄 문수동자와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가 있다. 대흥사 누리집에 의하면, 현판 ‘두륜산대흥사(頭輪山大興寺)’와 ‘해탈문(解脫門)’의 글씨는 해사(海士) 김성근(金聲根, 1835~1919)이 쓴 것이고, 문의 외부 협칸 3면에 그린 ‘부모은중(父母恩重)’ㆍ‘염화신중(拈花神衆)’ㆍ‘점성가제도(占星家濟度)’ 등은 도륜(道倫) 박태석(朴泰錫)이 장엄한 것으로 해탈문 건립 당시 단청과 함께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런 대흥사에 특이하게 사천왕상이 없다. 사천왕상이 없는 이유에 대해서 누리집 등에는 북으로는 영암 월출산, 남으로는 송지 달마산, 동으로는 장흥 천관산, 서로는 화산 선은산가 대흥사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풍수적으로 완벽한 형국을 취하고 있어 사천왕상을 세울 필요가 없어 세워져 있지 않다고 기록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풍수적으로 완벽한 구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따로 보호할 필요가 없어 안 세웠다는 것이다.      

서산대사의 유훈에 의하면 대흥사는 삼재불입지처 만세불훼지지(三災不入之處 萬歲不毁之地)이며 이는 ‘전쟁 등의 3가지 재난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며, 만년동안 훼손되지 않을 땅’이라는 뜻으로 실제로 대흥사는 수많은 전란동안에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이 글은 일주문 기둥에 주렴으로 걸려 있다. 일주문에는 아직 옛 이름인 대둔사로 되어 있다)          

반면에 두륜산의 남쪽에 있는 명산 달마산에는 또 다른 명찰 미황사가 있다. 미황사는 대흥사보다는 작은 규모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아름다운 절이다. 미황사도 달마산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오늘은 사천왕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미황사의 사천왕상은 최근까지 내가 본 사천왕상 중에 가장 창의적인 사천왕상이다. 우리나라 다른 사찰의 사천왕상은 전통의 맥을 잇는다는 중요한 사명을 이어서 인지 모르지만 하나같이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전통과 의미를 살리면서 새로운 모습이나 혹은 형태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미황사의 사천왕상은 전통에서 요구하는 특징(색이나 기물)을 수용하면서도 새로운 모습으로 나아가려는 시도를 했다.      

사천왕상은 4개의 방위(또는 하늘)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동방의 지국천왕(持國天王), 서방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남방의 증장천왕(增長天王), 북방의 다문천왕(多聞天王) 사방의 천왕을 의미한다. 각각의 천왕은 기물을 들고 있는데 북방의 다문천왕이 보탑을 들고 있는 것은 공통이지만 다른 천왕의 경우 기물이 일치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물이 다르게 들려 있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는 보탑과 창, 칼, 그리고 비파가 들려 있는데 미황사의 경우는 창과 함께 붓 등을 들고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다른 곳의 사천왕상은 대체로 거대한 몸집과 부릅뜬 눈을 하고 있으며 입을 악다물거나 이빨을 드러내며 표호 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거대한 몸집과 함께 갑옷을 입고 있어 위압감을 주는 형태이며, 사람들이 잘 보지는 않지만 발 밑에는 민중들에게 괴로움을 주는 탐관오리 등이나 악귀를 밟고 있는 형태로 조성된 곳이 많다.      

그런데 미황사의 경우는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근엄하기는 하지만 단정하고, 위엄은 있지만 두려움을 주지 않는 단아한 모습의 사천왕상을 볼 수 있다. 또한 비파대신에 붓을 들고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사천왕상은 모두 무기를 들고 있다. 그중에는 비파도 있는데 비파는 여러 가지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전장의 트럼펫이나 북처럼 사기를 북돋우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심리전과 같은 의미도 있고 무협소설에서처럼 강력한 파장은 그 자체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아무튼 미황사의 사천왕상은 아름다운 절 미황사라는 명성에 걸맞게 조성되었다. 달마고도나 달마산 등산이나 아니면 성지순례로 미황사에 들릴 기회가 있다면 아름다움 사천왕상을 한번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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