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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 Nov 18. 2023

미묘한 차이를 구별하는 말들(2)

       

회사에 다닐 때 분말(powder) 관련 일을 하다가 보니 혼합(mixing)과 배합(blending)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우리 말로는 모두 ‘섞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둘의 뜻은 다르다. 혼합은 서로 다른 것들을 섞을 때 쓰고, 배합은 같은 종류의 것을 섞는데 쓴다. 예를 들어 성분이 다른 합금들을 섞을 때는 혼합이라고 하고 같은 종류의 분말을 입도조정 등을 위해 섞을 때는 배합이라는 말을 쓴다. 물처럼 같은 액체끼리 섞을 때도 배합이라는 말을 쓴다(그래서 술과 술 또는 음료를 섞어 만들 때도 ‘블렌딩’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모두 섞는다고 하면 될 텐데 왜 구분을 할까라고 생각을 했는데 자주 논문이나 관련 서적들을 보다 보니 다양한 설정에 적절한 말을 만들어 쓰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최근에 탄소와 관련한 일어 책을 번역했는데 그곳에서도 이것과 유사한 사례가 여럿 보인다. 그중의 하나가 ‘방향(方向)’과 ‘배향(背向)’이다. 우리말로 자동번역할 때에는 모두 다 ‘방향’으로 번역이 된다. 관련 영어는 "direction(방향)"과 "orientation(배향)"인데 역시 우리 말로는 모두 방향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런데 그 두 개의 말은 비슷한 의미를 가지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Direction(방향)"은 물체가 움직이거나 향하는 쪽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어떤 대상이 어느 쪽으로 이동하거나 향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쪽으로 가세요"라는 문장에서 "북쪽"은 방향(Direction)을 나타낸다. 반면에 "Orientation(배향)"은 대상의 위치나 방향에 대한 상대적인 관계를 나타낸다. 주로 물체나 사람의 위치, 방향, 상태 등을 다른 대상이나 기준과의 관계로 설명할 때 사용된다. 예를 들어, "이 건물은 북쪽을 향해 서 있어"라는 문장에서 "북쪽을 향해 서 있다"는 대상의 방향과 관련된 상대적인 위치를 나타낸다. 이때 이 건물은 북쪽을 향해 배향되어 있다고 표현할 수 있는데 우리말에서는 아직 생소한 느낌이 있다. 아무튼 이것을 요약하자면, "direction"은 대상이 움직이거나 향하는 쪽(방향)을 나타내는 반면에, "orientation"은 대상의 위치나 방향을 다른 대상이나 기준과의 상대적인 관계(배향)로 설명하는 것이다.          

작은 차이를 가지고 뭘 그리 따지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문이 이렇게 하나하나 차곡차곡 정의하고 쌓아가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우리가 관련 말들을 잘 정의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점차 독서가 줄고 전공도 심화되지 못하고 있어 앞으로는 사용하기 쉬운 말들이 살아남는다고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말들만 써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 말들이 외래어든 우리말이든 잘 다듬고 잘 쓸수록 있도록 기록하는 것이 더 폭넓은 사고를 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다행히 이화학사전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전공사전에는 배향이라는 말이 (당연히) 나와 있었다. 그래서 방향과 배향이라는 말 모두를 한 단어로 표기하지 않고 각각 표기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다른 단어들도 전공 사전에 나와 있는 말들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주말 아침, 늦가을 차롬하게 빛나는 아침 햇살이 너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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