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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 Feb 17. 2024

춘절 유감 – 중국의 소탐대실

    

새해가 지나고 얼마 안 되어서 지인에게서 아직 진정한 새해가 아닌데 서구의 영향을 받아 사람들이 새해라고 한다는 푸념의 말을 들었다. 어찌 보면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음력으로는 아직 새해가 오지 않은 까닭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음력의 기원은 언제인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음력은 태음태양력인 시헌력(時憲曆)이 근간이다. 다만 시헌력을 적용하고 있는 동양의 각국도 나라마다 기준이 되는 경도(經度)가 다르기 때문에 실제 날짜는 1~2일 정도 차이가 생길 수 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중국은 청나라 시대 때 천문학에 밝은 아담 샬을 중용하여, 숭정력을 '시헌력(時憲曆)'이라는 이름으로 1644년 10월에 반포하였다. 아담 샬이 만든 시헌력의 계산식을 중국인 학자와 예수회 학자들이 케플러의 법칙을 받아들여 일부 수정하는 등 변동이 있긴 했지만 시헌력은 청나라가 멸망하는 날까지 사용되었다. 쑨원이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를 무너트리고 중화민국을 세운 뒤, 1912년 1월 1일부터 그레고리력(태양력, 즉 양력)을 도입하고 시헌력을 폐지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청나라 흠천감(欽天監)의 관원에게 뇌물을 주어가며 시헌력의 내용을 배우고 익힌 뒤 효종 4년(1653)에 한양의 위치에 맞춘 시헌력을 시행하였다. 이후에 이것의 오차를 수정하여 본국력을 만들어 썼다.     

원래 중국 문화권에서 제후국은 황제가 발표하는 역서를 받아가서 사용하기만 하면 되었으므로, 조선인이 시헌력의 계산법을 배우고 조선의 위치에 맞추어 자국 달력을 만드는 것도 원칙적으로는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죄였다. 그래서 몰래 배워 왔다. 그러나 일부 차이가 있는 것이 밝혀져 숙종 31년(1705) 동지사 편에 관상감 제조 허원(許遠)을 북경으로 파견하여 다시금 시헌력의 계산법을 온전히 배워오도록 하여 수정시행하였다. 효종 4년(1653)에 처음 시헌력이 시행된 이후에도 한동안은 시헌력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주를 보거나 제사를 지낼 때에는 대통력을 사용하였으며, 시헌력이 완전히 정착한 이후에도 관상감에서는 매년 대통력을 기준으로 만든 역서를 한 부 제작하여 임금에게 올리기를 고종황제 시절까지 계속하였다. 대한제국이 수립되고 나서도 시헌력을 '명시력(明時曆)'으로 이름만 바꾼 채 그대로 사용하였지만 시헌력 도입 이전에 전통역법이라고 떠들던 대통력은 없어졌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음력이 사실은 17세기 이후의 청나라의 역법이고 그나마 서양의 역법을 받아들여 수정한 것이고,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서양의 태양력인 그레고리력보다도 더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일본은 과거에 음력을 사용했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 태음태양력을 공식적으로 폐지하고 사용하지 않으며, 음력으로 지내던 명절을 그 날짜 그대로 양력으로 치환해서 적용했다. 다만 지금도 오키나와에서는 관습적으로 음력으로 명절을 쇠는 곳이 많아 일부 달력에서 음력을 표시한다고 한다. 그 밖에 북한이나 대만, 몽골이나 베트남, 싱가포르 등도 시헌력에 기반한 달력을 사용하므로 한국과 비슷한 날에 쇤다고 한다.      

굳이 달력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중국은 누가 뭐라고 해도 아시아 문화의 맹주다. 아니 세계 문화의 맹주였다. 2~300년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린다면 세계에서 개발된 대부분의 발명은 중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류를 찾아보면 중국이 아닌 것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희귀하고, 그마저도 중국이라는 용광로를 거쳐 더 발전된 모습으로 나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중국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각 지역에서 발생한 것도 있고 각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특색 있게 변하고 또 발전한 것들도 많다. 그래서 재창조되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원류나 혹은 족보를 따지면 역시 중국의 틀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그렇게 수천 년을 이어 왔다면 모든 것을 순수하게 중국의 것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특히 설명절은 오랫동안 동양에서 공유되어 오면서 각 나라의 풍습이 보태져 고유하게 발달해 왔다. 설의 기준이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긴 해도 각 나라의 문화 영향권 하에 있던 것이다. 중국입장에서는 음력설이 아니라 중국설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래대로 시헌력 또는 음력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중국설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생각이다. 지금 중국은 세계를 대상으로 음력설(Lunar New Year)이라는 말 대신에 중국설(Chinese New Year)라고 대대적인 광고를 하고 있다. 소탐대실의 전형이다. 서양의 양력설에 대항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동양의 음력설을 내세우는 것이 맞고, 서양에서 양력을 그레고리력이라고 하듯이 동양에서는 음력이나 시헌력이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다. 양력도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력이나 이탈리아력이라고 하지 않는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양력(Solar New Year)이다. 서양 문화 전체에서 이루어지는 축일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태음태양력이 중국의 시헌력에서 출발한 것이 맞기 때문에 그냥 음력으로 해도 중국에서 반포한 사실이 없어지지도 않고 부정되지도 않는다. 당연히 중국으로서는 득이 되는 모양새다. 그런데 굳이 중국설이라고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1등은 가만히 있어도 된다. 내가 1등 했다고 까발리고 다니면 밉상을 받기 마련이다.      

과거의 중국은 자존감이 높은 나라였다. 그런데 지금은 대국도, 대국의 자존심도 다 팽개치고 있다. 리더십의 부재가 드러난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덕은 이웃이 있어 외롭지 않다고 했다. 덕이 없으면 모두가 떠나갈 뿐이다. 태국에 갔다가 요란하게 선정되고 있는 중국설 캠페인 모습을 보고 씁쓸한 마음에 몇 자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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