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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 Jan 21. 2024

수용성과 다양성

중국 역사의 가장 유명한 명의인 편작과 관련된 옛날이야기가 있다.     


「중국의 천하 명의 편작(扁鵲)이 채(蔡) 나라 환후(桓候)를 만났다. “왕께서는 피부에 병이 있습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장차 심해질까 두렵습니다.” 왕이 말하기를 “나는 병이 없소” 하면서 의사들은 이득을 좋아해 병이 없는데도 치료를 한 것처럼 꾸며 자신의 공으로 삼으려 한다고 비난했다.     

편작이 열흘 후 또 환후를 만나, “병이 살 속에 있습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장차 심해질까 두렵습니다.” 한다. 왕은 응하지 않고 불쾌해했다. 또 열흘이 지나 편작이 “병이 장과 위에 있습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장차 심해질까 두렵습니다.”라고 한다. 환후는 또 응하지 않았다. 또 열흘이 지나 편작이 환후를 멀리서 바라본 후 달아나기 시작했다.     

환후가 그 까닭을 물으니 “질병이 피부에 있을 때는 치료하면 되고, 살 속에 있을 때는 침을 꽂으면 되고, 장과 위에 있을 때는 약을 달여 복용하면 됩니다. 그러나 병이 골수에 있을 때는 운명을 관찰하는 신이 관여할 문제라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닷새 뒤 환후는 통증이 있어 편작을 찾았으나, 편작은 진(秦) 나라로 달아난 뒤였으며, 결국 환후는 병으로 죽었다.     

이때 편작이 다른 나라로 달아난 것은 자신이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왕이나 왕후의 병을 고치지 못하고 죽게 되면 의원이 책임을 지게 된다. 결국 의원도 벌을 받거나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편작이 도망갔다.」     


옛날 모임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이 고사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물었다.     


가장 많이 제기된 내용은 전문가의 의견을 검증 없이 무시했다는 점이다. 결정권자가 개인적인 선입견에 사로 잡혀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제기한 문제는 문제가 발생한 다음에 자신의 문제를 문제를 제기한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한 점이다. 세 번째는 두 번째와 유사한 점이 있지만 미묘하게 다른 것으로 문제해결에 초점을 두는 게 아니라 책임자에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진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물론 왕권이 절대적인 군주제 하에서는 모든 책임을 왕이 지므로 대신에 무고한 관리가 대신 책임을 지도록 덮어씌울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해결은 문제의 원인을 찾아 재발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고쳐야만 해결될 수 있다. (사실 현재사회에도 보면 문제가 발생하면 시스템을 고치는 대신에 사람에게 문제를 전가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행정을 더 복잡하게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또 다른 문제 제기는 편작에게는 달아날 다른 나라가 있어서 살아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대한 일을 할 때는 사전에 달아날 구멍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편작이 살던 시대가 통일된 한 나라의 시대였다면 달아날 곳이 없어 꼼짝없이 죽음에 처해졌을 것이니 사전에 미리미리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소 씁쓸한 결론이다. 그런데 달아날 다른 나라가 없었다면 편작이 미리 얘기를 하기는 했을까?      

우리는 이러한 교훈을 통해서 전문가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의 중요성을 배운다. 또한 다양한 전문가가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이러한 의견들이 상호 검증을 통해서 적절한 의견으로 수렴되어 채택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음을 배운다. ‘좋은 의견’이란 ‘내 의견에 맞는 의견’이 아니라 ‘시스템을 개선하여 향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의견’이다.     


 

수용성은 나만 옳다고 주장해서는 결코 얻을 수 없다. 내 의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의견이 중요한 지를 살펴볼 수 있는 지혜, 그것도 집단지성이 중요해지고 있다. 몇 명의 천재가 세상을 바꾸는 시대에서 집단지성이 세상을 이끄는 시대가 되었지만 아무리 좋은 집단지성의 결과도 도량이 좁으면 채택할 수 없다. 다양성은 반드시 수용성을 동반한다. 우리에게 다양성과 함께 수용성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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