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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 Jun 03. 2024

몽골여행 후기

- 몽골이 강한 이유

얼마 전 가족여행으로 몽골엘 다녀왔다. 최근에 훈누(흉노), 돌궐을 비롯하여 동북아-중앙아시아 역사에 관심을 두고 읽어온 데다가 대초원에서의 별 보기, 말타기 등을 경험하고자 하는 마나님의 뜻을 받들어 다녀오게 되었다.     

저가 항공을 이용한 5박 6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비교적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낙타 타기, 사막의 모래 썰매 타기, 초원에서 낙조와 일출 보기, 야생화 트레킹, 게르(몽골 전통가옥) 체험에 박물관과 국립공원, 사원방문, 전통공연과 시장 등의 문화탐방, 그리고 허르헉 전통음식과 쇼핑까지 코스가 잘 짜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있었던 곳은 칭기즈칸 박물관이었다.(역사박물관은 아쉽게도 못 보았다) 역시 몽골인들도 그들의 역사를 훈누(흉노)에서부터 찾고 있었다. 물론 선사시대인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지만, 칭기즈칸 박물관에서의 역사는 ‘훈누’(중국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역사에 대해서 낮춰보는 시각에서 명칭을 정하고 있다. 흉노(匈奴)라는 말도 그렇고 몽고(蒙古)라는 말도 그렇다. 그래서 몽골에서는 몽고라는 명칭을 다소 멸시적인 언어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현재의 나라 이름도 ‘몽골’로 표기하고, 흉노에도 비슷한 어감이 있으므로 원래의 발음에 가까운 ‘훈누’로 표기하고 있다. 이것은 정재훈 교수의 책 『흉노 유목제국사』를 읽을 때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었는데 역시 모든 학문은 현장 체험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몽골의 항공사 이름 중에도 훈누 이름을 갖는 항공사, 훈누에어가 있다.)에서 시작하고 있다.      

우리가 고조선-삼국(사국)시대-통일신라-고려-조선-대한민국으로 거론하듯이 몽골도 과거의 5대 국가를 거론하고 있는데 그것이 훈누-투르크-위구르-거란-몽골제국이었다. 그중 가장 영역이 넓었던 칭기즈칸 시대, 즉 몽골제국(중국으로는 원나라)을 중심으로 몽골의 자존심이 가득한 세상을 표현한 곳, 그곳이 칭기즈칸 박물관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곳에는 몽골제국만 있었고 드넓었던 훈누와 투르크, 위구르, 거란을 비롯하여 칸국의 방계는 상대적으로 적게 표현되어 있거나 생략되어 있었다. 아직 많은 사실들이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그렇긴 했지만, 유물 보는 것에는 한계가 없으니 맘껏 볼 수 있어 좋았다.           

몽골을 보면서 몽골이 중국이나 주변 나라에 엄청난 위협이 되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니 고원에서 나오는 체력적인 면도 적지 않은 듯하다. 비교적 몽골의 동부에 속하는 수도, 울란바토르는 고도가 1,350미터이고 국토의 평균고도는 1,580미터라고 한다. 서부 지역과 북부 지역이 고도가 더 높다. 최고봉은 4,374미터의 후이텡 봉이고 최저점은 518미터라고 한다. 내륙국으로 바다는 없다.      

이러한 고도 차이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야생화 트레킹을 하면서 몸을 구부려 야생화 사진을 찍고 일어서다 보니 심장이 떨린다. 잠깐의 몸 구부림과 사진을 찍기 위해 숨을 조금 참는 것이 심장에 다소 무리를 준 것 같다. 만일 내가 고도 5천 미터쯤에서 이러한 행동을 했다면 어떨까 생각해 보면 사소한 행동도 익숙해질 때까지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높은 고도는 체력 유지에 이점이 있다.      

게다가 유목 생활로 인해 어릴 때부터 말을 타는 것에 익숙해서 균형감각이 좋다. 현재도 초원에서 동물들을 몰기 위해 말 대신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이 종종 있다. 비포장의 초원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워낙 말을 타던 습관이 있어서 대체로 무리 없이 잘 탄다고 한다. 체격도 다부지다. 행동은 느리지만 일단 말을 타면 거침이 없다.(예전에도 한번 글을 쓴 적이 있지만 우리가 자동차를 빠르게 모는 것도 이러한 습성이 남아서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육식을 주로 하기 때문에 체력도 좋다. 게다가 중요 무기를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특성에 유목산업의 특성상 자급자족이 어렵고, 기후의 영향이 커서 외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러니 필요가 생기면 빠른 기동력과 무력을 앞세운 이들이 주변에 큰 위협이 되었던 것이다. 흥미 있는 것은 이들은 씨족 단위로 협력하는데 이러한 씨족 사회가 뭉치면 위협이 될 것을 염려하여 소련 시절에 씨족을 나타내는 성(姓)을 모두 없애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몽골 사람은 이름만 있고 성이 없다고 한다. 이들이 뭉쳐서 크게 세력화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억제하기 위한 정책 때문이라고 한다.               

몽골의 국토는 남북한의 7배(남한으로 치면 20배)가 넘지만 인구는 350만 명 정도밖에 안 된다. 그나마 독립 당시인 1924년 말의 50만 명에서 엄청나게 증가한 상태라고 한다. 최근에는 자녀를 4명 낳으면 국가에서 훈장을 주고 5명을 낳으면 더 높은 등급의 훈장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자녀가 3명인 사람을 바보라고 한다고 한다. 1명만 더 낳으면 훈장을 받는데 3명만 낳아서 못 받아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단다. 우리를 안내하던 가이드도 자신이 바보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최근에 이상 기후로 인구의 절반 정도가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몰려 살고 있다. 덕분에 주택난과 교통난이 엄청나다. 그래도 지하자원도 엄청나고 빠르게 경제가 성장하고 있으니 곧 해결되리라 생각되지만 인접국이 러시아와 중국밖에 없고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다 보니 발전에 장애가 되는 부분도 많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려움도 크다.      

아무튼 역사적이든 경제적이든 발전을 거듭하여 우리와 많은 교류가 생기고 더 발전하게 되기를 바란다. 많은 것을 알았지만 아쉬움도 많이 남았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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