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한 Jun 06. 2024

백 마리의 쥐(百鼠)

             

요즘 사람은 오히려 예전 사람보다 남에게 신경을 덜 쓰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느 정도의 일탈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고, 다소 모나거나 특이해도 그러려니 하고 수용적이다. 물론 반대급부로 남의 시선을 너무 많이 의식해 외모 지상주의가 판을 친다는 뉴스가 넘쳐나기는 하지만 남을 보는 시각은 차분해지는 면이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아직 ‘나를 보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대해서는 크게 의식하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남을 보는 시선’은 많이 차분해진 면이 있다. 우리가 성숙된 사회로 나아가는 단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집안에서도 그렇다. 예전에는 아내가 옷을 새로 사 입거나, 머리를 새로 단장하거나, 하면 금방 알아보지 못해 곤욕(?)을 겪었던 때가 있었다. 직장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집에는 잠만 자러 오던 때였다. 그러던 것이 차츰 익숙해지고 집에 신경이 쓰니 아내의 변화가 눈에 들어와 아내의 사소한 외모 변화도 알아차리게 되어 서로가 배려하면서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런 신경이 점차 다시 무뎌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아내의 눈도 무뎌지는 것이다. 예전에는 내가 머리를 자르고 오면 아내가 턱 알아보고는 잘 깎았다거나 훨씬 더 젊어 보인다거나 하는 인사말을 건넸는데 요즘은 머리를 깎고 와도 내가 머리가 어떠냐고 얘기할 때까지 아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들이 독립해 집에 둘이서 살다 보니 오히려 남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최근에는 외부로 향하던 마음을 내부로 바꿔 수행에 더 집중하는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28년간 회사 생활로 남은 것이 양복인지라 겨울과 봄가을로는 거의 양복만 입고 다니는 것이 일상인데 대부분이 검은색 계열이다. 그중에 춘추복 정장은 5벌인데 모두 검정계열이긴 해도 사실 모두 다르다. 아주 진한 검정인 것이 있는가 하면 연하게 체크무늬가 들어간 것도 있고 회색이 섞인 것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저 같은 검은색으로 보이는지 늘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으로 본다. 페이북 창시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옷을 고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같은 옷을 사서 돌려가면서 입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아내가 와이셔츠에 맞춰 옷을 맞춰주기도 하지만, 매일 같은 옷을 입으면 바지의 무릎이 나와 오래 입기가 어렵다는 아내의 주장 덕분에 가능하면 매일 다른 옷을 입고 학교엘 간다. 그런데도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온다는 오해를 사고 있는 것이다.           

일본 교토에 전통 비단 공업이 발달한 지역의 이름이 니시진(西陣)이고 그곳의 특산 비단의 이름이 니시진오리(西陣織)다. 그곳의 역사와 이야기를 쓴 책을 보면, 일본 에도시대의 도쿠가와막부는 이전의 막부와는 다르게 검소한 것을 강조하여, 화려한 색과 무늬가 있는 비단의 제조와 비단옷 입는 것을 금했다고 한다. 허용된 것은 찻잎색(茶色), 쥐색(鼠色), 쪽빛(藍色)뿐이다. 그러자 비단 제조업자들이 허용된 색의 범위 안에서 다양한 색상의 차이를 이용하여 염색법을 개발하고 문양을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백 마리의 쥐로 표현되는 다양한 무채색과 48가지의 차(茶)로 표현되는 다양한 차색이다. 이를 기존의 비단 문양에 도입하여 정교하게 다듬어서 ‘다른 사람과는 차별되는’, ‘멋지게 염색된 비단옷’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48차와 백 마리의 쥐(四十八茶 百鼠, 사십팔차 백서)’라는 말이다.          

회색으로 표현되는 쥐색이지만 농담(濃淡)이 조금씩 다른 백 마리의 쥐로 표현되는 무채색은 집안(가문)의 문양이나 글씨 무늬를 표현하기에 매우 훌륭한 방법이 된다. 그 시기에 이러한 차이를 활용하여 비단옷을 제조하다 보니 염색기술과 직조기술이 더욱더 발달했다고 한다. 이러한 염색 기술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색상의 염료의 배합 비율을 조정하거나, 각각의 염색을 추가하거나, 염액의 농도와 매염제의 양에 따라 색상을 생성하는데 이러한 기술을 활용해 기존의 컬러 팔레트에서는 표현할 수 없었던 미묘한 차색과 회색, 그리고 그러데이션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제한을 두는 것이 아니라 아예 금하는 정책을 실시한 탓에 이러한 기술이 발달할 수 있는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이처럼 정책이란 갑자기 금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을 줌으로써 더욱 발달하게 하는 기술적 고려가 필요할 때가 있다.           

일본에 지진이 나서 국토 전부가 가라앉더라도 이 책만 있으면 일본의 정신을 모두 복원할 수 있다고 주장한 선사(禪師)가 있었다고 한다. 그 책이 중국의 임제스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임제록』인데 그 책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의 하나가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이다. 그 뜻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일반적인 말로 하면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곳이 모두 진리가 된다.(또는 이르는 곳마다 주체적이 사람이 되어서 있는 곳을 모두 진리로 만들라)’는 뜻이 된다. 즉, ‘주어진 조건에서 주인이 되어 최선을 다하면 그곳이 바로 진리의 자리라는 것’이다. 이 말은 결국 주역에 나오는 궁즉통(窮則通), 궁한 것이 통하는 것이라는 말과도 연결되는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말이 많이 돌았다. 원래의 말로 돌아가서 이제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단계에서도 벗어날 때가 된 것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내 맘대로 행동한다’는 것이 아니라. 남을 보는 시선에서 타인에 대한 수용성이 증가한 것처럼, 남의 시선에서도 벗어나 나 자신에 대한 자주성과 수용성을 높일 때인 것이다.           

아내나 타인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오늘도 꿋꿋하게 검은 양복을 입고 출근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어느새 아내가 여름 양복을 꺼내 놓은 것이다. 이제 무채색의 시기가 지났다. 감청색이다. 오늘은 감청색 옷을 입고 길을 나선다. 감청색이면 어떤가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작가의 이전글 몽골여행 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