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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 Jun 30. 2024

은과 실리콘의 실패

- 은(Silver)과 실리콘(Silicon)에서 배우는 지혜

    

조선시대에 이르러 성리학이 관리 등용에 활용되면서 사농공상(士農工商, 사대부-농업인-공업인-상업인 순으로 직업의 중요도를 분류하던 방식)의 직업관이 고착되어 많은 병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한 병폐가 너무 심해 많은 역사학자에게 연속적으로 지탄받기도 했다. 상업이 줄어들면서 특히 무역이 줄어들면서, 전체적인 국부가 줄어들었고 기술과 장인에 대한 홀대는 기술 발달을 억제하고 더디게 해서 우리나라 전반적인 기술 수준의 저하는 물론 국력의 쇠퇴를 불러와 망국으로 나아가는 단초를 제공하게 되었다.          

역사책에도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의 하나는 ‘은(銀)의 정련’과 관련된 이야기다. 은은 아주 예전에는 순수한 은으로도 산출되었다고 하지만 금에 비해서 순수한 상태로 산출되는 경우가 매우 적기 때문에 대부분은 동(구리)이나 아연 등 다른 금속과 섞여서 산출된다. 따라서 정련이 쉽지 않아 고대에는 금보다도 더 귀한 취급을 받았던 적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함경도 단천(이곳은 아무 곳이나 파도 은이 나왔었다는 곳으로, 현재도 마그네슘의 세계적인 매장지로 알려져 있다)이라는 곳에서 많은 은이 나왔는데 이곳의 은광석에는 융점이 은보다도 낮은 아연(亞鉛)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일단 녹으면 분리가 어려웠다. 그런데 양인(평민)인 김감불과 노비 김검동이 면밀한 관찰과 실험으로 은과 아연을 분리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순수한 은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나중에 ‘연은분리법(鉛銀分離法), 회취법(灰吹法) 또는 단천연은법’ 등으로 부르는 이 정련 방법은 금속의 녹는점 차이를 이용해 먼저 녹은 아연을 재에 흡수시켜 분리하고 순수한 은만 추출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개발로 당시 임금인 연산군 앞에서 시연을 하기도 했으며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러한 개발은 국가의 세수를 늘려 주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후궁인 장숙영 집안과 일부 관리의 독점으로 그들의 수중에 들어가고 백성들은 시달림만 커지다가 그나마도 중종반정 이후에는 ‘연산군 시대의 적폐 청산(그때에도 선대의 사업은 내용 검토 없이 모두 적폐로 몰아붙여 폐기하는 일이 있었나 보다)’에 걸려 애써 키운 기술이 빛을 보지 못하고 중단되고 말았다. 일부 관리들이 쉬쉬하면서 파내서 사리사욕을 채우기는 했지만, 기술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기술이 사장되다가 임진란 이전에 일본으로 유출되어, 은광석을 수출하고 막대한 돈을 들여 은을 수입하던 일본에게 새로운 부(富)를 크게 키우는 역할을 하게 되고, 결국 국난(왜란)을 겪게 되는 한 원인이 된다.               

그런데 기술과 기술인에 대한 홀대가 요즘 들어서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중소기업의 기술은 무시되고 빼앗고 몰래 가져다 쓰면서, 외국 기술은 거금을 들여 사 오고, 특허 소송에 걸릴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래 내용은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로 실제인지는 모르지만 기술과 지식재산권 존중 문화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 산업의 중요 광물인 금속 실리콘은 규소(硅素)라도 부르며, 모래의 주성분으로 지각에도 많이 들어 있는 풍부한 광물이지만 산소 등과의 친화력이 매우 커서 쉽게 분리할 수 없다.(실리콘 산화물은 실리카라고 부르며, 유리와 석영의 원료다) 그래서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분리에 성공했을 정도다. 특히 우리가 잘 아는 반도체용으로 사용되는 실리콘은 순도가 아주 높아 단결정(단결정은 매우 순도가 높아야만 만들 수 있다)으로 만들어 사용하지만 가격이 비싸서 사용에 제한이 많다. 최근에 태양전지용으로 많이 쓰는 다결정 실리콘은 단결정 실리콘보다 순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가격이 훨씬 싸서 이용 폭이 늘어나고 있다. 그 다결정 실리콘을 제조하는 정련법을 국내의 한 엔지니어가 개발했다고 한다. 그전에는 그렇게 싼 가격에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식을 생각하지 못하다가 A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의 대표가 모래로부터 환원 추출하는 방법을 개발해서 특허를 내고 국내 굴지의 B 대기업과 협력해서 합작 회사도 만들어 생산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B 기업에서 합작 회사를 통해 실리카 환원과 관련된 모든 기술을 다 알아내고는 별도로 공장을 만들고 물건을 빼돌려 이 회사를 어렵게 했다고 한다. 이 회사는 소송으로 맞섰지만 발주가 끊기고 시간이 지연되자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데다가 다른 경쟁사들도 뛰어들어 비슷한 기술을 사용해서 만들어 내면서 같은 소재를 생산하기 시작하자 결국 그 회사는 부도가 나고 소송도 흐지부지되었다고 한다.           

A사 사장은 그날 이후 어디론가로 잠적했는데 그로부터 몇 년 후에 중국에서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으로 메탈 실리콘이 개발되어 수입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당시 킬로그램당 수십 달러에 달하던 다결정 실리콘 가격이 계속 떨어져 마지노선인 16달러에 도달하자, 국내 대기업은 사업을 포기하고 중국에서 수입해서 쓰기 시작했고 중견, 중소기업은 투자해 놓고서 회수를 못하니 다 부도가 났다고 한다. 지금은 국내에 한 회사만 남아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려준 사장도 그 당시 많은 투자를 한 회사에 제조설비 부품을 대량으로 납품했다가 대금을 못 받아 같이 어려움에 빠져 고생했다고 씁쓸하게 말한다.           

A사 사장의 잠적 이후의 자세한 상황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지만 대부분 사람은 A사 사장이 억울한 마음을 갖고 사라지고 나서 이러한 일들이 생겨난 데다가, 기술적 기반이 없던 중국에서 순식간에 관련 산업이 성장해서 국내 시장까지를 잠식했기 때문에, 그 사장이 중국으로 가서 실리카 환원에 관련된 제조 기술을 전수해 주고 싼 가격에 국내 시장까지 잠식해서 그 당시 세계적으로 뻗어나갈 꿈에 부풀어 있던 국내 태양광 업체들을 고사시킨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하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영위할 수 있는 사업을 일부 기업이 욕심을 부려서 억지로 중소기업의 기술을 빼앗으려다가 중국에게 시장을 몽땅 넘겨준 것으로 의심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려준 사장도 이러한 내용이 증거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자신도 그 당시 많은 피해를 봤다며 태양전지 광풍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우리 사회에서 남의 노력과 아이디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든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그 합작회사가 잘 되었으면 어땠을까, 그리고 중소기업의 기술이 잘 보호되어서 그 회사가 독점적으로 기술을 사용하고 제품을 공급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랬더라면 지금처럼 중국이 세계 시장을 제패했을 수 있었을까. 아쉬움이 크다. 앞으로도 수많은 기업이 기술을 개발해서 세계 시장을 노릴 것이다. 그때는 다른 기업에 농락당하는 일이 없이 세계 시장을 노려서 도약하고 성공하기를 바란다. 또 기술을 사용하려는 기업은 공짜로 쓰려고 하지 말고 정당하게 비용을 지불하고 쓰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그 A기업이 아니더라도 많은 기업이 한국에서 시제품이 개발되면 중국업체에 도면과 자료를 넘겨 양산하는 것을 크게 죄악시하지 않는다. 이것도 무형의 재산(지적 재산)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생각이다. 비싼 밥 사주는 것은 여러 번 감사를 표할 일이지만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거나 고언을 해주면 그야말로 고개 한 번 끄덕여 주면 그만인 일이 되는 것도 그렇다. 큰 노하우도 콜럼버스 달걀처럼 알고 나면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이 되지만 알기 전에는 그 누구도 하기 어려운 일이 된다. 그래서 노하우는 알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 어렵다. 유출되기가 쉽기 때문이고 인정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노하우를 별 죄의식 없이 무단으로 사용하기 쉽게 된다. 심지어 경쟁 업체에 알려줘도 된다고 생각한다. 도면을 내돌리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여기니 문제가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기술과 기술자를 대우하지 않으면 기술은 발전하지 않는다.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우리의 기술들과 기술자들을 존중하지 않으면 우리 미래 세대는 또 다른 어려움에 빠질지 모른다. 사농공상의 허상이 깨진 것도 나라를 잃고 나서 외국의 기업이 밀려들어 오고 나서이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봐도 그 당시 청나라의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함을 보고 받아들일 것을 주장했으나 유생들이었던 관리자들은 오랑캐로부터 배울 수 없다고 거절했을 정도다. 기술에 대한 존중 문화가 기술 발전에 이바지하는 바가 크다. 세상에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 공짜는 더더욱 없다. 우리 스스로가 변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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