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는 나가서 놀아야 한다.
흔히 ‘소아마비’라고 부르는 급성회백수염은 초기에는 두통이나 감기와 같은 가벼운 증상으로 시작하지만, 점차 근육 마비로 진행되는 심각한 질병이다. 주로 어린이에게 발생하지만 성인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사회적 지위나 지역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발병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발병 원인을 몰라서 산발적으로 대응했었다. 1916년 미국 뉴욕시에서 급성회백수염이 유행했을 때 길고양이 7만 2000 마리를 죽이고, 매일 약 1500만 리터의 물을 사용해 길거리를 청소하는 등 다양한 방역 조치가 취해졌으나 효과가 없었다. 공중보건 당국은 식당과 아이스크림 가게를 피하도록 하고, 식수대를 폐쇄하며 공적 모임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를 연이어 발표했다. 사람들은 서로를 피하고, 많은 사람이 장갑을 착용하며 악수를 거부했다. 급성회백수염에 감염된 아이의 부모들은 아이의 책, 장난감, 침구를 불태우며 아이를 보호하려 했다.
20세기 들어 급성회백수염의 원인이 밝혀졌는데, 그러나 그 원인이 '선진국에서 위생을 개선하면서 의도치 않게 발생한 결과'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급성회백수염의 원인인 폴리오바이러스는 일반적으로 수원지를 오염시키는 배설물을 통해 전파되는데, 과거에는 오염된 물을 가까이하며 주기적으로 낮은 수준의 바이러스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면역체계가 자연스럽게 항체를 생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시 지역의 위생 인프라가 빠르게 개선된 이후로는 유아기 때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게 되어, 아이들은 무방비 상태로 성장하게 되었고, 그 결과, 폴리오바이러스에 매우 취약해진 것이다. 대다수 아이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증상이 없거나 경미한 증상만 나타났으나, 나머지 5%는 감기나 인플루엔자와 비슷한 증상부터 근육통, 피로, 목과 등에서의 뻣뻣함을 보였고, 약 1%의 경우가 마비성 급성회백수염으로 진행되었다. 마비가 일어나는 이유는 바이러스가 척수의 회백질 운동신경세포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매우 위생적이고 개별적인 환경에서 생활한 후에 명문대학에 진학했기 때문에 성장 과정 중에 폴리오바이러스에 노출될 가능성이 아주 적었다. 하지만 성장 후 정치가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그가 좋아하는 보이스카우트 행사장에 참석하여 감동적인 연설과 행진 그리고 많은 사람과 악수 등으로 접촉함으로써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이후 그는 감기나 몸살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심해져서 결국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이후 루스벨트는 미국 국립소아마비재단을 설립해 급성회백수염 발병원인과 치료방법에 대한 연구를 지원했고 그 결과 많은 미국인과 인류가 그와 같은 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위의 이야기는 『의학의 대가들, 앤드류 램, 서종민 옮김, 상상스퀘어』의 198~206쪽에서 발췌 인용한 내용이다. 여기에서 내가 주목한 점은 우리에게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자연 치유력이 우리 생활환경의 개선과 더불어 퇴보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물론 자연 치유력에서는 작은 확률이지만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의료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는 경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어른들이 어린아이에게 매운 고추장도 조금 입에 넣어주고, 옷에 흙을 잔뜩 묻혀 와도 다치지 않으면 그러려니 하면서 제지하지 않았던 것이 어찌 보면 다 이런 자연 치유력의 힘을 믿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다소 부끄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내가 밖에 나갈 때 모자를 쓰고 값비싼 변색 렌즈로 안경을 맞추는 것도 눈의 조리개가 역할을 잘 못해서 인데 그 원인이 어렸을 때 밖으로 잘 안 다녀서 눈의 조리개가 충분하게 운동을 못해서라고 한다. 아이들이 낮이나 밤이나 밖으로 많이 다니는 것도 당연히 도움이 되는 일이다. 이처럼 우리의 습관은 우리의 면역체계뿐만 아니라 관리 체계에도 관련이 있다. ‘세상에 허사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시던 옛날 스승님이 생각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