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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 Mar 27. 2023

[수행, 심리] 억울할 때, 무엇이 위로가 될까요?

-억울해서 화가 나요

『보왕삼매론』이라는 짧은 글이 있습니다. 원나라 말기 중국의 묘혐스님의 저서인 『보왕삼매염불직기』 중 제17편 「십대애행」에 나오는 구절을 가려 뽑아 엮은 것으로 알려진 이 글은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처음 접하고서 마음에 와닿아 자주 애송하던 것입니다.

가장 유명한 첫 구절을 인용하자면 이렇습니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병으로부터 많은 고통을 받습니다. 특히 저는 어려서 많이 병약했기 때문에 이 구절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왕삼매론』은 10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병고(病苦)뿐만 아니라 세상살이의 곤란함, 공부할 때의 마음의 장애, 수행할 때의 마(魔), 일을 할 때 쉽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친구를 사귈 때 내게 이롭기를 바라는 마음,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공덕을 베풀 때 과보를 바라는 마음, 사업을 할 때 많은 이익을 바라는 마음, 억울함을 당했을 때 밝히려는 마음 등 10가지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시절의 제게 가장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 마지막 구절인 ‘억울함을 당해서...’입니다. 

인용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도웁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억울함을 당하면 당연히 밝혀서 바로잡아야지 왜 밝히려 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아무튼 제게는 오랫동안 이해가 되지 않은 구절이었습니다. (사실은 많은 스승님들께서 여러 차례 정답을 얘기해 주셨는데 제가 아직 시절인연이 닿지 않아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 것은 그로부터 수십 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고 나서입니다.

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위와 같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례가 경전에도 나오고 있어 먼저 소개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금강경에 인용이 되어서 유명한 부처님의 전생담 ‘인욕선인’의 이야기입니다.

<사례 1>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진리를 깨달아 <교진여>를 제도하시고 <가섭> 형제들과 몇 천 명의 이교도들을 제도하여 바른 진리로 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많은 사람을 제도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때 세상 사람들은 저 <교진여>나 <가섭> 형제들을 부러워하면서 '저 대덕 스님들은 대관절 전생에 무슨 복을 지었기에 진리의 북이 울리자마자 남보다 먼저 진리를 듣게 되었으며, 감로의 법문에 젖게 되었는가?'라고 부러워합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과거에 저들과 함께 큰 서원을 세웠다. 만일 누구든 먼저 진리를 깨닫는 자는 서로 제도해 주기로. 그런데 내가 먼저 진리를 깨달았던 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 <바라나>라는 큰 나라가 있었고 <가리>라고 하는 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때 이 왕국에 <찬제파리>라는 신선이 재자들과 숲 속에 살면서 인욕(忍辱)을 수행하고 있었다. 어느 봄날에 <가리> 국왕은 부인과 궁녀들과 많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봄소풍을 나갔다.

왕은 얼마를 놀다가 피곤하여 잠시 낮잠을 자는 사이에 궁녀들은 숲 속을 다니며 꽃구경을 하다가 찬제파리 선인이 단정히 앉아 명상에 잠겨 있는 것을 보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 예물을 올리고 그 앞에 앉아 선인의 설법을 들었다.

한편 왕은 잠이 깨어 여인들이 보이지 않자 네 대신을 거느리고 찾아 나섰다.

그러다가 그 많은 여인들이 선인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다가가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네 가지 공(空)한 선정을 얻었는가?',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을 얻었는가?', '네 가지 선정을 얻었는가?'

어느 한 가지도 얻지 못했다는 선인의 대답을 듣고는 왕이 크게 화를 내었습니다. '그대는 그러한 경지에 하나도 이른 것이 없다. 그러니 그대는 범부나 다름이 없다. 그러면서 혼자 여인들과 함께 으슥한 숲 속에 앉아 있으니, 어떻게 그대가 이 여인들을 범하지 않았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힐난하면서 거듭 물었습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며 무슨 수행을 했는가?' '인욕을 수행하고 있었소.' 그러자 왕은 칼을 빼들고 말했습니다. '만일 그대가 인욕을 수행하고 있다면 시험해 보리라. 그대가 능히 참는가, 못 참는가를..'

대왕은 곧 칼을 휘둘러 그의 두 손을 자르고 물었습니다.

'이래도 욕됨을 참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아무런 대답이 없고 동요하는 빛도 없자 이번에는 두 다리마저 자르고 나서 물었습니다.

'그래도 인욕 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번에도 동요의 빛이 없자 귀와 코를 베었습니다. 그러나 선인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선인의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그런 고통을 당하면서도 인욕 하는 마음을 변치 않습니까?' '마음이 변치 않느니라.' 이때, 왕은 깜짝 놀라 거듭 물었다. '그대는 욕됨을 참는다고 하지만 누가 그것을 증명하겠는가?'

선인은 대답했습니다. '만일 내가 인욕을 수행하는 것이 진실이라면 그리고 거짓이 아니라면 피는 젖으로 변할 것이고 몸은 전처럼 회복될 것이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붉은 피는 흰 젖으로 변했고 몸은 전처럼 회복되었습니다. 왕은 그의 인욕의 증명을 보고 더욱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왕은 물었습니다. '선인이여! 내가 잘못하여 큰 선인을 비방하고 욕보였소이다. 아! 나는 죄가 많습니다. 바라옵건대 저를 가엾이 여겨 나의 참회를 받아 주소서.'

선인은 대답했다. '대왕은 여자로 말미암아 <애욕의 칼>을 휘둘러 내 몸을 해쳤지만 나의 인욕은 대지와 같소. 나는 뒤에 부처가 되면 <지혜의 칼>로 당신의 삼독번뇌의 몸을 끊어 드리리다.' 그때에 산중에 있던 여러 용과 귀신의 무리들은 <가리>왕이 인욕 하는 <찬제파리>선인을 해치는 것을 보고, 모두 걱정하여 큰 구름과 안개를 일으켜 뇌성벽력을 치면서 왕과 그 권속들을 해하려 하였습니다. 이때, 선인은 말했습니다. '만일 나를 위하려거든 왕을 해치지 말라.' 선인은 그러한 것을 보고 서원을 세웠다. '나는 오직 인욕행을 부단히 수행하여 온갖 인류와 많은 생명들을 위해서 부처를 이룰 것이다. 만일 내가 불도를 이루게 되면 먼저 <진리의 물>로써 너희들의 티끌과 때를 씻어 주고 시기와 질투심과 탐욕의 더러움을 없애주어 영원히 깨끗하게 할 것이다!'

세존께서는 계속해서 스님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의 <찬제파리>는 곧 나요, 그때의 가리왕과 네 대신은 교진여 등 다섯 비구다. 내게 티끌을 끼얹던 천명의 범지는 지금의 가섭 등 천 명 비구이니라. 나는 그때의 인욕을 수행하면서 저들을 먼저 제도하리라고 서원을 세웠다. 그래서 내가 도를 이루자 그들을 제도하여 남보다 먼저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니라.' 그때에 자리에 앉아 듣던 스님들은 세존께서 지으신 서원을 찬탄하며 기뻐하였다. 

위의 내용은 아주 유명한 이야기입니다만 수행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일반인에게는 다가오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사례 2>

두 번째 이야기는 제가 퍽 공감하여 동료의식을 느꼈던 ‘빅터 프랭클’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으로 신경학자이자 심리학자입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아우슈비츠를 비롯하여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다가 살아남아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유명한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서 그는 원망 가득한 내용 대신에 자신이 수용소 생활을 통해서 겪은 이야기를 주로 썼으며, 특히 가혹한 현실 속에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스스로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을 수 없는 그들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마지막 행복이었다.”라고 회고하면서 자신이 살아서 수용소를 나가게 되면 이것, '외부의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결국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온전하게 자신의 선택이고 자신의 자유다'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기로 결심을 합니다. 결국 아내와 부모님들이 모두 죽고 자신만 살아남아 오스트리아 정신요법의 제3학파인 로고테라피학파를 창시합니다.

그런데 빅터 프랭크가 말한 이 구절이야말로 불교의 사상과 아주 크게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몹시 억울할 때 우리의 행동에 대한 힌트가 들어 있습니다. 인욕선인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너무나도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일도 신체가 잘려 나가는 것에 비해 전혀 작다고 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생사가 아주 작은 차이로 갈리는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때조차도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은 내 자유의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 의지가 세상을 바꾸어 새로운 인연을 만들게 된다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처해있는 상황이 다르고 받아들이는 것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이런 이야기를 듣더라도 아직 억울할 것입니다. 아직도 많이 억울하시지요? 그래도 당신을 응원합니다. 무엇보다 당신이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자유의지로 기꺼이 더 나음을 선택하고 그래서 당신의 자유의지로 만들어갈 그 찬란한 세상을 응원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응원합니다.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법륜스님이나 법정스님이 보왕삼매론의 마지막 구절을 설명하신 설법을 찾아 한번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확신을 할 수 없지만 당신이 과거의 감정에서 벗어나 좀 더 멋진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라는 말의 의미를 곧바로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건투를 빕니다. 또 그리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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