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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 Feb 27. 2023

[언어이야기] ‘젊다’는 말의 의미

          

어원과 관련된 책을 보면 삶은 ‘살다’의 명사형으로 나와 있다. ‘살다’는 ‘살’이라는 어근에 동사형 어미인 ‘-다’가 붙어서 된 말인데 ‘살’은 ‘살이 찌다’에서와 같이 우리 몸의 육체를 뜻하기도 하지만 ‘햇살’, ‘물살’에서와 같이 기운이나 힘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파생된 말이 ‘사르다’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살다’를 ‘사르다’로 말한다. 그래서 ‘삶’이라는 말의 본말인 ‘살다’가 ‘불사르다’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고 해의 뜻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국어어원사전,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


이 주장에 의하면 ‘삶’이라는 것은 ‘살고 있는 것’이고 ‘살고 있다는 것’은 ‘생명의 불이 붙어서 사라지고 있는 상태’이며 그것의 명사적 표현이 삶이 되는 것이다. 즉, 우리는 유한적인 생명을 부여받은 상태이며 그러한 상태에 있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삶이 일단 시작되면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단지 조금의 시간을 연장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영원한 삶’이라는 헛된 생각에 목을 맨다. 절대 권력을 가진 황제나 왕에서부터 작은 재물을 가진 부자들과 심지어 저잣거리의 범부까지. 영생을 꿈꾸는 사람들은 불로장생의 꿈을 이뤄준다는 ‘허공 꽃’을 찾아 헤맨다. 영생의 가능성은 묘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에 있는 것일 텐데, 삶에 충실하여 현재에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무한하게 열려있는 가능성일 텐데, 그것을 놔두고 헛된 노력에 세월과 자원을 허비한다. 인류를 뜻하는 ‘사람’이라는 말도 ‘살다’에서 파생된 말이라고 하니 사람이란 의당 삶의 의미를 알고 이에 충실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앞의 사전에 의하면 ‘젊다’는 과거에는 ‘점다’와 ‘젊다’로 쓰다가 점차 ‘젊다’로 통일해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어근 ‘젊’은 졀>뎔>뎓>덧 으로 역시 해(日)의 의미에서 나왔다고 한다. 즉 ‘젊다’는 ‘어린 사람’의 상태를 뜻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원래부터 ‘젊다’와 ‘점다’가 ‘절다’와의 연관성이 있음을 볼 때 앞의 사르다>살다>삶의 형태로 변형된 것처럼 절다>젊다>젊에서와 같이 ‘젊’은 ‘절다’, 즉 다리를 뜻하는 ‘절’(‘절뚝절뚝’에서 ‘절뚝’은 발이 불편해서 기우뚱기우뚱하는 모습을 나타낸다)에서 명사형으로 파생된 말로 ‘아직 다리가 약해서 자립의 형태로 굳건하게 설 수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보면 ‘젊다’는 말은 ‘아직 완전한 다리를 갖지 못한 상태’, ‘생각이 굳어지지 않은 상태’, ‘아직도 발전하는 상태’의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이 가정은 논증된 사실이 아니라 내가 추론하는 내용이다.) 이 가설로 보면 젊다는 것은 아직도 발전하는 상태를 의미하며, 학습으로 성장하는 사람을 뜻한다. 우리가 제사를 지낼 때 벼슬을 하지 않은 남자는 모두 ‘학생(學生)’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유사하다. 반면에 기성(旣成) 세대의 기성이라는 말은 젊은이의 정반대의 뜻이 된다. 기성이란 ‘이미 다 이루어진’ 상태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미 다 이루어져 있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다. 더 이상의 발전이 있다면 기성이 아니다. 따라서 젊은이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말임에 틀림이 없다. ‘젊다’는 건 ‘아직 기성화 되지 않아 발전의 희망이 남아 있는’, ‘아직 고정되지 않은 상태’임을 나타내고, 앞서의 ‘삶’이라는 것도 아직 ‘불이 남아 있는’, ‘불살라지고 있는’ 상태를 뜻하는 말인 것을 보면, ‘젊은 우리의 삶’은 아직 성장하고 있고, 고정된 완전한 틀을 갖추지 않은 상태이며 ‘현재도 불타고 있는’ 뜻이 되어 우리에게 큰 희망을 주는 말이 되는 것이다.           


거꾸로 유추해 보면 지금도 계속 발전하고 있는 사람이 젊은이이고, 현재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기성인이 되는 것이다. 또한 지금 현재에서 노력하는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고 삶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의 로망인 ‘영원한 젊은이’가 맞다. ‘영원한 젊은이’야 말로 한정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본분을 지키며 달성이 가능한 방법으로 멋지게 사는 한 방법이 아닐까.        

   

봄이 오는 길목에서 오늘의 어려운 젊은이를 생각하며 몇 글자 단상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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