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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 Feb 26. 2023

[수행, 심리] 화에 대한 단상



한참 회사 다닐 때는 화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화를 내는 것이 점차로 줄기는 했지만 지금도 가끔은 가슴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는 것을 느낀다. ‘알아차림’을 통해 일어나는 화를 보면서, 화를 내는 것이 내가 아니라 심리적 프로그램에 의해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반응임을 깨닫고 화의 원인을 찾아 평온으로 나아간다. 자연 화를 내는 횟수도, 화에 의해 시달리는 시간도 점차 점차 줄어든다. 화를 내게 만든 상황도 화의 대상인 상대나 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이해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덜 시달리게 된다. 물론 회사 생활을 할 때보다 훨씬 덜 심각한 상황에 노출되는 것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화가 잠을 누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몹시 화가 나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화를 참지 못한 것을 수없이 경험했으면서도 화 속에 빠져 있을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점이다. 잠을 불교에서는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재물에 대한 욕구<財>, 이성에 대한 욕구<色>, 음식에 대한 욕구<食>, 명예에 대한 욕구<名>, 잠에 대한 욕구<睡>)라고 하는 오욕락(五欲樂)의 하나로서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며, 기본적인 만큼 강력한 욕망으로 여기고 있다. 전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증언록을 보면 전쟁 중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도 어김없이 잠은 오고, 포탄이 쏟아지는 가운데를 후퇴하는 중에도 잠이 쏟아져 서로 손을 잡고 달렸다는 증언들이 있을 정도다. 후퇴하는 중에 쓰러지면 그대로 잠이 들어 포탄에 맞아 죽거나 포로가 되기 때문이란다. 그런 잠을, 물론 잠시 뿐이기는 하겠지만, 화가 누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화가 강력하다는 의미가 된다.

화(怒- 화낼 노, 이 글자는 우리의 마음이 주인이 아니라 감정의 노예(奴)가 되어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는 우리가 신경을 전달하는 물질을 통해 나타나는 감정의 하나다. 유교에서는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이라고 해서 일곱 가지 감정의 하나로 표현하고 있다. 맨 처음의 희(喜)는 기쁨으로, 기쁨을 느낄 때 도파민이라고 하는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한다. 반면 화를 낼 때는 노르아드레날린이라고 하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런 호르몬 분비로 화가 나면 몸이 긴장되고 교감신경이 활성화한다고 하니, 아마도 이러한 분비 덕분에 잠시나마 졸음에서 깨어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물론 화가 계속 잠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화로 인해서 질기고 질긴 잠의 유혹에서 잠시 벗어나 깨어있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몸과 마음이 같이 피곤해서 명상수행이 어려울 것 같았던 그날, 화를 일으켰던 사실을 응시하고 화를 내가 내는 것이 아니라 의식 속에 내장된 프로그램에 의해 반응하는 것임을 알아차림 하면서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화는 사라지고 화가 만든 ‘호르몬의 효과’만 남았다. 그 각성과 활성화된 교감신경의 효과를 지렛대 삼아 더 생생한 집중의 상태로 나아간다. 화에 더 빠져 있었더라면 화로 인해 더 많은 아드레날린 호르몬이 분비되고 이로 인해 몸도 마음도 피곤해지고 나아가 심신이 피폐해졌겠지만 알아차림 수행 덕분에 짧은 순간의 호르몬 분비로 상황이 종료되고 그 효과로 잠과 피곤함을 밀쳐내고 작은 평온의 상태로 나아갈 수 있었다. 더욱이 그 덕분에 평온함이 다가오고 상황을 더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볼 수 있게 되고 더 이상의 악연으로 나아가거나 끄달리지 않게 되었다.

선악개오사(善惡皆吾師)라는 말이 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모두 나의 스승이라는 뜻이다. 공자님도 논어 술이(述而) 편에 ‘삼인행(三人行)이면 필유아사언(必有我師焉)’이라 하시면서 ‘세 사람의 행인이 있으면 그 안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고 말씀했지만 모든 대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선(善)도 되고 악(惡)도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든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선도 악도 다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고 하셨나 보다. 그런 면에서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귀중한 가르침이고 스승이다. 오직 내 그릇과 알아차림의 깊이가 얕아 수용하지 못함이다. 

이제 봄이다. 봄이 오면 나른함이 늘어나고, 나른함은 잠을 부른다. 잠이 부족하면 몸도 마음도 처지게 된다. 그런 나른한 계절에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건강함 속에서 정진을 통해 선함으로 나아가고, 모두의 그런 선한 의도를 통해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은 마음을 모은다. 따뜻한 봄날, 모두에게 평온과 행복이 함께 하기를, 건강과 자유로움이 함께 하기를, 지혜와 희망이 함께 하기를!!!

경남 함안에 있는 어느 식당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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