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_타로 #일왕이란_무엇일까
2013년, 참의원에 당선된 야마모토 타로.
그는 정치인이 되자마자 큰 스캔들에 휩싸입니다.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일본의 금기를 깹니다.
일본에서 일왕은 매우 독특한 지위를 지닙니다. 단순한 왕이라기보다 상징성을 지닌 존재에 가깝죠.
우리는 얼핏 이해하기 어렵지만, 보통 일본인에게 일왕은 신성불가침의 이미지입니다. 아베 같은 최고 권력자라고 해도 일왕과 독대하는 경우는 드물죠.
초선의 국회의원이라면 일왕과의 알현은 단체 접견이 기본입니다. 보통 강심장이 아닌 이상에야, 일왕과의 접견은 정말 떨리는 경험이라고 합니다. 혹시라도 말이나 행동을 실수하지 않을까, 극도의 긴장을 한다고 합니다.
일왕이 직접 참석하는 연회는 격식이 남다르죠. 더구나 왕실이 주재하는 연회라면 더 까다롭습니다. 아무나 초대받지 못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초대명단은 궁내청이 세심하게 선택합니다. 일본의 궁내청(宮内庁;쿠나이초)는 왕실을 전담하는 행정기관이죠. 내각부의 외국, 그러니까 우리 개념의 외청에 해당하는 정부조직입니다. 직원도 1,000여명에 가까운 큰 조직입니다. 궁내청은 연회 참석자들에게 매우 까다로운 격식을 요구합니다.
'일왕 주위에 일정 거리 이상 접근하지 않는다', '일왕의 주위에서 사진 촬영은 금지', '일왕이 먼저 말을 걸기 전에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등등.
2013년 황궁에서 열린 야외 파티에 야마모토 타로가 초청됩니다.
야마모토는 일왕에게 후쿠시마의 처참함을 담은 편지를 전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전하려 했죠. 당황한 궁내청 직원이 야마모토의 손에서 편지를 황급하게 낚아챘습니다.
궁내청은 그의 진심보다 편지의 내용보다, 초선의원이 일왕에게 저지른 불경만이 걱정이었습니다.
야마모토의 편지 전문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야마모토는 야단법석을 떠는 미디어 앞에 나타나 당당하게 외칩니다.
“천황폐하에게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둘러싼 사람들의 건강상의 피해, 사고 수습과정에 일하는 원전 작업 노동자의 열악한 작업환경. 특히 여전히 후쿠시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건강피해와 무엇보다 아동의 피폭이 얼마나 심각한지! 이것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건 스캔들이 됩니다.
다수의 일본인이 후쿠시마의 처참한 진실보다 ‘룰을 어긴’ 야마모토의 행동에 주목합니다.
신성불가침 존재에게 먼저 물건을 건넸다는 행위 자체에 집중한 거죠.
이 사건으로 원래 유명했던 야마모토에게 '악명'이 추가됩니다.
그리고 '악명'은 두고두고 야마모토의 표를 갉았먹습니다.
야마모토는 후쿠시마 사태의 진실을 모르는 일본인 특히 청년층에게 무언가 경솔한 사람으로 낙인찍힙니다.
단순히 평판만 나빠진 게 아닙니다.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죠. 그의 나라 최고 어른에게 나라의 진실을 담은 서한을 주려 했을 뿐인데, 대체 그게 무슨 큰 죄라고...
이걸 이해하려면 일본의 평화헌법과 일왕이 가지는 상징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일본 평화헌법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일본의 군대 보유를 금지, 전수방위 조건의 자위권을 지닌 자위대만 인정.
둘째, 일왕은 헌법상 국가원수가 아닌, 상징적 의미를 지닌 일본 통합의 상징.
일본 극우는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싶어 하죠.
그들이 바꾸고 싶은 평화헌법의 핵심도 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비교적 이해가 쉽습니다.
일본은 전범 국가이니, 다시는 외국을 침략할 수 있는 군대를 가지는 것을 금지한 거죠. 하지만 일본도 외국으로부터 자국 침략은 스스로 보호해야 하니, 일본의 영토만을 방위할 목적의 무력집단. 군대 대신 자위대가 있는 겁니다. 이걸 전수방위(専守防衛;센슈보-에)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국제법상 자위대는 군대의 지위가 아닙니다. 군인이 아닌 민간인에 해당하는 거죠.
그런데 둘째는 모호합니다.
일왕이 헌법상 일본 국가원수가 아니라고? 일본은 입헌군주제잖아?
그러면 명목상 국가원수는 왕이잖아?
그럼 일본에 왕이 대체 왜 있는 거야?
제가 종종 하는 우스갯소리입니다.
“일뽕과 일덕을 구분하는 가장 좋은 방법. ‘덴노’와 ‘덴노 헤이카’의 차이”
천황(天皇)을 일본어 발음으로 읽으면 ‘덴노’입니다.
‘덴노 헤이카’는 천황폐하(天皇陛下)라는 경칭입니다. 놀랍게도 일본인은 누구를 막론하고 일왕을 부를 때, 꼬박꼬박 ‘덴노 헤이카’라고 말하고 읽고 씁니다. 일반인도 신문이나 방송 같은 미디어 모두가 그렇죠.
한국인인데 농담으로라도 ‘덴노 헤이카’라고 한다면, 일뽕보다는 찐친일파일 확률이 매우 높아집니다.
일덕 중에는 ‘덴노’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일왕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는 게 아닙니다. 중국이 자신들의 황제를 ‘천자(天子)’라고 하거나, 고대 이집트가 자신의 왕을 태양이라는 뜻의 ‘파라오’라고 하는 것처럼, ‘덴노'역시 그저 고유명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거죠.
저는 일덕일 뿐입니다. 일뽕은 아니죠.
일덕이 생각하는 덴노와 덴노 헤이카의 차이는 이렇습니다.
뭔가 설명이 장황해지네요. 잠깐 일본 헌법을 잠깐 보시죠.
소위 말하는 평화헌법입니다.
일본 패망 후, 일본을 통치한 맥아더 군정의 제1 목표는 일본의 천황제 폐지였습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형식적으로 천황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척하며 일본 국민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맥아더 군정은, 그 결과가 주변국 침략과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꿰뚫은 거죠. 일본이 다시 전범 국가가 되지 않기 위해서, 전쟁과 침략의 구실이었던 천황제를 폐지하고 싶었습니다.
맥아더 군정의 천황제 폐지는 일본 국내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힙니다.
게다가 당시 미국에게 일본은 복잡한 지위에 있었습니다. 미국인 수십만을 죽인 전범국인 동시, 소련과 중국 등 공산주의 대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아줄 극동 최후의 보루이기도 했죠.
결국, 맥아더는 일왕을 A급 전범에서 빼기로 합니다. 대신 일왕이 스스로 자신이 일본인이 믿는 것처럼, ‘일왕은 신이 아니라 인간에 불과하다’는 선언을 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일본 왕가는 살아남았죠.
일왕은 우리 상상 이상으로 일본인의 사랑을 받습니다.
현 일왕과 2019년 양위한 선대 일왕은 평화주의자에 소탈한 모습을 자주 보였거든요.
1995년 고베시가 통째로 사라졌던 한신 대지진 때 이재민을 찾아, 슬리퍼도 신지 않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던 모습. 여기에 많은 일본인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2016년 구마코토 지진 이재민 방문 때도 똑같은 모습이었죠.
현 일왕이나 전 일왕이나 야스쿠니 참배를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일본인의 생존과 일왕가의 존속을 위해 적극적이거나, 적어도 소극적 평화주의자의 면모를 자주 보여줬죠.
작년에 퇴위한 아키히토 상황의 평화 발언 몇 개만 추려봅니다.
일왕은 현재의 평화헌법상의 지위. 결단코 일본의 국가원수가 아니나 국민 통합의 상징뿐이라는 평화헌법상 지위가, 일본의 오랜 전통을 되돌아봐도 일왕의 지위가 맞다는 선언입니다. 일본의 '천황'은 오랜 시간 상징적 존재였을 뿐이니까요.
일본 극우는 일왕을 다시 제국주의 시대의 지위로 돌려놓고 싶어 합니다. 명목상 국가원수로요.
그것이 그들이 주장하는 일본의 정상국가화를 완성하는 마지막 열쇠입니다.
자위대를 해외파병도 가능하고 선전포고도 할 수 있는 정식 일본군으로 만드는 명분이 될 테니까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일왕은 오히려 일부 우익의 공격을 받기도 합니다. 닥치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명목상 일본의 국가원수가 되어야 할 사람이, 틈나는 대로 평화 발언을 하니까요.
이 발언도 해석이 간단합니다.
‘현재 일본의 헌법은 평화헌법이다. 이 평화헌법에 기초한 나라가 오늘날 일본이며, 이 헌법에 손댈 생각을 하면 곤란하다’
게다가 일본 우익이 들었을 때 경천동지 할 얘기도 서슴지 않고 했었죠.
일본의 상징이라는 일왕이, 스스로 자신의 조상중 일부가 한반도에서, 그것도 백제에서 도래했다고 일본 미디어 앞에서 정확히 밝힌 겁니다.
당시 아사히 신문과 도쿄 신문, 일본에서도 중립적이고 진보적인 두 미디어도 깜짝 놀라서 기사 타이틀을 이렇게 뽑았습니다.
“천황의 모계혈통이 백제계라는 사실, 고대 한반도와의 관련을 직접 언급한 천황은 처음”
보통 일본인의 감각으로 일왕은 온화하고 평화로운 전후 일본의 상징입니다.
그런 존재에게 야마모토 타로가 거침없이 다가선 거죠. 그에게 날 선 비난이 쏟아집니다.
야마모토 타로를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아니, 이걸 위기라고 생각하기는 했던 걸까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집과 직장과 고향이 모두 사라질 판인데, 그깟 전통과 형식이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는 그답게 위기를 묵묵히 돌파합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