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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재덕후 공PD Jul 28. 2020

일본이 한국인 WTO 사무총장을 반대하는 이유

일본에는 왜 여성리더가 없을까?

※ 이 이야기는 사실을 기반으로, 어느 일본 덕후의 상상력을 더한 해석일뿐입니다     



#장면 1     


7월 16일. 스위스 제네바의 WTO 본부.

WTO 사무총장 후보자 정견발표.     


한국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유명희 후보의 기자회견.       


일본 기자의 질문

“한일 간의 무역 분쟁 시, 일본을 다른 회원국처럼 중립적 시각에서 지지할 수 있습니까?”     

유명희 본부장


“저는 지금 이 자리에 한국을 대표하지 않고, WTO 사무총장 후보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유명희 본부장의 사족이자 결정타.

“한국과 일본은 WTO, 다자무역체제의 수혜자입니다. 양국이 함께 WTO 신뢰회복에 협력해야죠”


게임 끝.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6월, WTO 차기 사무총장 출마를 밝혔습니다.

 유명희 본부장은 국내는 물론 해외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과 함께, 21세기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여성 리더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죠.      


  생각해보면, 국제무대에서, 일본 출신의 눈에 띄는 여성 리더는 찾기 어렵습니다. 

  일본 국내로 좁혀보더라도 여성 리더를 찾기는 정말 어렵죠. 머릿속에 당장 떠오르는 인물이래 봐야, 순한 맛 아베로 분류되는 코이케 현 도쿄도지사 정도입니다.



#장면 2     


2014년 6월 18일. 도쿄도 본의회.


[모두의 당] 시오무라 아야캬(塩村文夏) 의원 도쿄도 지방정부 질의 중

(시오무라 아야카 : 그라비아 아이돌 출신으로 화제를 모은 도쿄 도의원)

('모두의 당' 공천으로 2013년 도쿄 세타가야구 당선)     


시오무라 “임신이나 출산으로 고생하는 여성에 대한 구체적 지원책은 무엇인가요?”     


느닷없이 날아온 어느 남성 의원의 야유성 발언  

“빨리 결혼하는 편이 좋잖아!”
“아이를 낳지 못하는 거야?”     

후일, 일본의 정보 프로그램에 소개된 도쿄도의회 성희롱, 성차별 사건



도쿄도의회에서 공개적 성희롱, 성차별 발언?


  실제 있던 일입니다.

  아야무라 의원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발언은 성희롱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희롱성차별을 더한 범죄가 틀림없습니다.

  아무리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꼴통 직장이라도,  이런 발언은 큰 문제가 됩니다.


  생각해보세요.

  전 과정이 녹화되고 방청객과 기자들이 있는 공개된 공간.

  일본 최대의 자치단체 도쿄도 본회의 중간에. 그것도 질의자로 나선 여성의원이 이런 말을 들은 겁니다.

  아야무라 의원은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그 자리에서 즉각 항의도 못했습니다.

  질의를 마치고 자리에 앉고서야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을 뿐이었죠.      


  놀라운 건, 당시 도쿄 도의회에서 성희롱 발언에 동조하는 듯, 몇몇 남성의원이 이에 동조하는 목소리와 웃음소리까지 들렸다는 겁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 충격적 사실을 즉각 보도한 매체는 마이니치 신문이 유일했죠. 다른 미디어는 일체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며칠이 더 지났습니다. 아무도 범죄 발언을 한 범인을 찾지 않았습니다.

  결국 네티즌이 들고일어났죠. 정확히는 트위터리언입니다.

  다음날인 19일이 되자, 이 범죄에 대한 리트윗이 2만 회가 넘었습니다.


  도의회 각 정파의 여성의원 전원(겨우 25명입니다)이 도쿄도의회 의장에게 요구서를 제출합니다.

“성희롱 범죄자를 색출 체포해달라” 이런 정당한 주장이 아니었습니다.


  겨우 “의회를 품위를 얕보고 조롱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 달라(議会の品位をおとしめる野次は無いよう注意して欲しい)”는 지극히 온건한 주장이었죠     


  도쿄도의회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역시 상식 밖이었습니다.


  그들이 한 말이라곤 “처벌을 받을 대상의 이름이 파악되지 않는다(被処分者の氏名が把握されていない” 이것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도의회 차원에서 성희롱 성차별주의자가 누구인지 밝힐 생각이 없다는 얘기였죠.      


  당시 도쿄도지사는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였습니다.

  사건이 있던 날은 도쿄 지방정부 질의였으니, 도쿄도지사도 참석하는 게 당연했죠.

  어느 똥 같은 차별주의자 놈의 성희롱 발언을 마스조에 지사도 현장에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현장을 목격한 다수는 마스조에 지사가 그 말을 듣고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이 점을 어느 언론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마스조에 지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모두가 웃었기 때문에 나도 덩달아 웃었다.
답변에 집중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다”

  

  겸연쩍은지 한마디 덧붙였죠.

  “여성의 존엄을 손상시키는 야유는 결코 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마스조에 지사도 범인 색출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여전히 범인 색출은 진전이 없었습니다.


  도의회 질의는 전 과정이 녹화되니, 녹화된 영상을 찾아보면 범인이 누군지 못 찾을 리가 없습니다.

  1,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도코 도청에 직접 전화를 걸어 항의하고, 온라인 서명사이트에서 범죄자를 찾아달라고 서명활동이 일어났습니다. 일본으로서는 드물게도 약 10만여 명이 온라인 서명에 동참했습니다.      


  이제는 다른 미디어도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었죠.

  며칠이 더 지나 22일이 되자, 세계 각국의 주요 외신이 일제히 도쿄 지방의회에서 벌어진 성희롱 성차별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CNN, BBC, 로이터, WSJ, 타임스, 가디언 등등 일본이 그렇게 신경 쓰는 언론들이었죠.      


  그 정도 사단이 벌어지고 나니, 겨우 일본 언론이 본격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도의회에 참석하거나 참관했던 다수의 증언이 속속 알려졌고요.      

  “야유는 자민당 의원석쪽이었다”라는 결정적 증언이 나왔습니다. 그것도 복수의 증언이요.      


  결국, 자민당은 23일 도쿄도의원 총회를 열고, 기자회견에서 성희롱이자 성차별 범죄 발언을 한 인간을 밝혔습니다. 그 인간은 무려 자민당의 정조회장 대행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던, 중진의원 스즈키 아키히로(鈴木章浩)였습니다.      

성희롱, 성차별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스즈키 아키히로 자민당 도쿄도의원.

  잠시 우리나라의 감각으로 해석해보죠.

  만일 서울시 의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상상해보죠.

  그 발언을 한 의원은 당에서 바로 제명되고, 당은 의원직 사퇴를 종용했을 겁니다.     

  경찰 조사도 바로 이루어졌을 겁니다.  

 

  일본은 어땠을까요?      

  스즈키는 기자회견을 열고 아야무라 의원에게 사과했습니다. 그게 끝이었죠.

  자민당을 탈당했을 뿐, 의원직은 사퇴하지 않았죠. 탈당한 바로 그날, 다른 신당을 만들었습니다.

  법적 처벌도 없이, 의원직 상실도 없이 단지 자민당을 탈당했을 뿐이었죠.



일본은 왜 여성 리더가 없을까     

 

  일본에서 여성 리더를 찾기 어렵다기보다, 심각한 여성 인권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이죠.

  우리도 갈 길이 멀지만, 일본에 비교되는 것만으로도 억울할 정도까지 겨우겨우 왔습니다. 물론 더 가야죠. 더 멀리멀리 가야죠.       


  통상산업부 최초의 여성 통상전문가인 유명희 본부장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고마운 분이죠.  

  유명희 본부장의 뛰어난 통상 실무능력과 협상력 그리고 전문 경제 영어 구사력을 두고, 재미교포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만, 서울 출생입니다.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한국에서 마쳤습니다. 심지어 석사까지 한국에서 마치고 그 후에 미국으로 유학해 로스쿨을 다녔죠.      


  우리나라는 산업부와 통상부가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미국의 경우를 보면 상무장관이 따로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식으로는 상무장관에 상당하는 고위직이죠. 우리나라에서도 차관에 해당하는 고위직급이고요.


  유명희 본부장의 남편은 야당 의원입니다. 그것도 지난 국회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소속된 사람이죠. 유명희 본부장도 박근혜 정부 시절에 청와대에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배경을 생각하면 정치적으로는 보수에 가깝겠죠. 하지만 국가안보와 경제를 정치적 신념으로만 나눌 수는 없는 노릇이죠. 뛰어난 인물이니 미국식으로 생각하면 장관에 가까운 요직을 유명희 본부장에게 맡긴 겁니다.      


 이렇게 뛰어난 인물이니, 경제 보복을 감행한 일본으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일본이 이렇게 대놓고 반대하는 걸 보면, 일본이 우리 정부와 인사에 대해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역으로 잘 알 수 있기도 합니다.      


  일본의 반대는 단순히 유명희 개인의 능력에 대한 두려움만은 아니죠.

 길게 설명할 것도 없습니다. 일본 경제관료와 아베류의 정치인 감각으로는 한국은 절대 국제무대에 요직을 맡아서는 안 되는 나라입니다.           

  일본 정부는 WTO의 새 사무총장에 한국인이 선임되는 것을 공식적(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유명희 후보 대신 케냐 출신의 아미나 모하메드 전 WTO 총회 의장이나, 나이지리아의 외무·재무장관을 역임한 은고지 오콘조이웨알라를 지지하고 있죠.      

왼쪽부터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 나이지리아 은고지 오콘조이웨알라(전 세계은행 전무), 케냐 아미나 모하메드(전 세계 무역기구 총회의장)


   아베는 바보지만, 일본 정부 전체가 바보는 아닙니다.

  그들도 세계 최초의 여성 WTO 수장의 의미를 잘 알고 있죠.

  유명희 본부장을 낙마시키기 위해 일본이 꺼내 든 카드는 모두 제3세계의 여성 리더입니다.

  그것도 하나같이 UN과 세계은행 등의 국제기구에서 실무 경험이 풍부한 여성들이죠.

  유명희 본부장의 대항으로 정말 좋은 선택입니다.


  일본도 자체적으로 후보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법 진지하게 나왔습니다. 그것도 일본인 여성으로 국제기구에서 오래 근무한 경력이 있는 여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였죠.


  일본 정부는 열심히 데이터 베이스를 검색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도 잘 알아요.

  일본에 국제적 정무감각을 지닌 리더는 고사하고 여성 리더는 더 찾기 어렵다는 것을요.    

 

  단순히 일본에 여성리더가 적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본을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평등은 본질적으로 인권의 문제죠. 사람은 어떤 이유로든 차별받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소수자라도 자신의 능력에 따라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거죠.


  일본에 여성 리더가 부족한 건, 보통 생각보다 일본의 인권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요?     



 #사족 2


  유명희 본부장이 WTO 사무총장이 된다는 것은, 일본에 두 가지 악재로 작용할 겁니다.


  첫째, 일본 경제보복의 부당함 집중 조명

  그리고 일본의 여성리더가 없다는 사실과 그 배경이 되는 불편한 진실이 유명희 본부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조명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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