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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재덕후 공PD May 22. 2020

어느 의로운 야쿠자 -2부-

혐한 시위대를 몸으로 막아선 전직 야쿠자

평범한 영웅카운터스      


  카운터스, Counters, 말 그대로 반대한다는 뜻입니다. 

  일본 시민은 이 이름을, 혐한 반대 시위 조직인 자신들의 이름으로 삼기로 했죠.      


  일본어로는 ‘대 레이시스트 행동집단(対レイシスト行動集団)’  

  영어로는 ‘Counter-Racist Action Collective’, 약칭 크랙(CRAC)이라 부릅니다.   

카운터스의 집회는 도쿄를 넘어 일본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교토의 카운터스 집회 모습

  그냥 줄여서 ‘카운터스’라고도 합니다. 이 표현이 가장 일반적이죠. 

  인종, 민족 차별주의에 반대하는 시민모임인 

‘카운터스’의 이름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혐한 시위가 조직적으로 세를 불려 나가면서, 

자연스레 카운터스도 

조직화, 세분화의 길을 걷습니다. 


   

  혐한 시위대와 나란히 걸으며 큰소리로 꾸짖는 훈계 조직. 

  시민들에게 혐오 발언과 집회의 금지를 촉구하는 서명을 받는 서명 조직.

  혐오 낙서와 게시물을 철거하는 혐오 낙서 제거 조직.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여성조직.

  변호사로 구성되어 일본 경찰의 차별을 받지 않게 도와주는 변호사 조직.

  우리 풍물패처럼 음악과 공연을 동원한 문화조직. 

  이건 정말 신기하죠. 

  

  우리 시위 문화는 기본적으로 문화제를 동반합니다. 음악과 공연이 없는 대규모 집회는 상상하기 어렵죠. 

  일본은 그렇지 않다기보다, 시위나 집회 자체가 거의 없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시민의 시위와 집회로 민주주의를 성숙시킨 우리 한국의 모습을 이질적으로 생각합니다. 일본의 민주주의가 시민의 힘으로 얻어낸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일본에서 집회에 공연과 음악 그것도 래퍼가 등장하는 모습은 흔하지 않죠. 일본인은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집회문화가 어느 정도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합니다. 작년 홍콩 민주화 시위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광둥어로 불렸던 것을 생각하면, 일본에서도 누군가 영감을 받지 않았을까요? 


 카운터스에는 우리 시위문화에 전혀 없는 특수목적 임무대가 존재합니다. 

이 티셔츠는 정말 탐나네요. 일본 아마존에서 판매할 때 하나 구입하지 않았던 게 후회되네요

놀랍게도, 인터넷에서 혐오 발언에 댓글로 싸우는 

오타쿠 조직도 있습니다. 

좀처럼 실물 세계에 등장하지 않는 것이 오타쿠의 

철칙이지만, 가끔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오타쿠(OTAKU AGAINST RACISM)” 티셔츠를 맞춰 입고 거리에 나설 때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카운터스는 거리로 나선 일본판 ‘깨어있는 시민모임’입니다. 

  평화로운 시민모임이죠. 그래서 혐한 시위대의 물리적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혐한 시위대 폭력에 누워서 맞서는 카운터스 시민들. 일본 경찰이 혐한 시위대와 시민을 분리 보호하고 있습니다.



전직 야쿠자의 등장

       

  이 모습을 지켜보던 전직 야쿠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심하죠. 


 ‘내가 저들을 위해 대신 폭력을 휘둘러 주겠어’      

 

   오토코 구미의 창설자는 다카하시 나오키(高橋直輝)라는 남자입니다. 

  스스로 “나야말로 진정한 우익이야”라고 태연스레 말하는 전직 야쿠자입니다.


  전직 야쿠자는 “우리는 가부키초가 어울리는 남자들이지”라고 말합니다. 제 책 [골목 도쿄]에도 일부 서술했지만, 가부키초는 일본 최대의 환락가이자 요지경 세상입니다. 인간의 욕망이 현행법이 정한 테두리를 지키는 듯 어긋나며 발현되는 곳입니다. 한마디로 무서운 곳이죠.

  도쿄 여행 초심자는 말할 것도 없이 누구라도 가부키초에서는 겸손한 마음을 지녀야 하는 여행지이죠. 

 이런 곳에 어울리는 사람들은 역시 어두운 사람들뿐입니다. 심지어 이곳에 주재하는 경찰들도 하나같이 거칩니다. 

 

   다카하시는 가부키초를 배경으로 살아가던 전직 야쿠자입니다. 좋게 말하면 운송업, 배달업(이라 쓰고 주류 전매 또는 독점이라 해석해야죠), 심지어 보도방도 조직했었다고 합니다. 정말이지 어엿한 야쿠자, 어둠의 세계에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가부키초 인근에  일본 최대의 코리아타운, 신오오쿠보가 있습니다. 

  다카하시는 신오오쿠보에 있는 한국인 할머니가 운영하는 한국식당의 단골이었다 합니다. 신오오쿠보는 혐한 시위대가 신주쿠와 함께 가장 많이 혐한 시위를 벌이는 장소입니다. 

  다카하시가 가게를 찾았던 어느 날, 주인 할머니가 펑펑 울고 계셨죠. 

  알고 보니 그날 오후, 혐산 시위대의 차마 말로 전하지 못할 험한 욕설과 증오에 북받쳐 울고 계셨던 거죠. 

 다카하시는 궁금했습니다. 대체 얼마나 심하길래 시위가 끝난 지 한참 지났는데 할머니는 울고 있는 걸까. 

 그리고 시위를 구경해보기로 맘먹었습니다. 

 

 실제 시위를 보고 다카하시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 전직 야쿠자 출신인 그는 바로 혐한 시위대에 돌격해 외쳤습니다.      


 “이 똥 같은 차별주의자 놈들아”     


  보통 사람이 실제 야쿠자를 보면 기가 팍 죽습니다. 

  평생을 타인을 위협하며 살아온 세월의 무게가 표정에, 그리고 온몸에 묻어있기 때문이죠. 

  일본 영화에 흔히 나오는 야쿠자 연기를 상상하면 곤란합니다. 연기는 연기일 뿐이니까요. 

  레플리카가 아무리 정교해도 실물에서 나오는 박력감은 없습니다. 격투기를 연습한 연기자와 프로페셔널 격투기 선수가 주는 위압감은 비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오른쪽 다카하시, 왼쪽 그의 친구 기모토

  혐한 시위대는 대부분 넷우익이죠. 험한 말을 숨처럼 내뱉는 그들도, 다카하시 같은 전직 야쿠자 출신의 물리적 위협은 진지하게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경찰 뒤에 숨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뿐이었죠.      

 다카하시는 금세 유명인사가 됩니다. 

 폭력에 매력을 느끼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다카하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놈들(혐한 시위대)이 진짜로 무서운 경험을 당하게 되면,
다시는 헤이트 스피치를 하지 못해! 시위에 못 나와!”
  “폭력을 쓰고 쿨하게 체포당해버리면 그만이야!”

 

 다카하시가 어떤 계기로 영성이 맑아지고 선한 깨달음을 얻었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다카하시는 약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집단 린치를 당하는 모습이 싫었고, 그건 남자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그대로 두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의를 착하게만 말할 수 없잖아”
“정의라는 게 별 거 아니다. 인간이라면 당연하게 느끼는 감정이 정의다”



카즈키 그리고 교다이     


  야쿠자는 ‘사카즈키’라는 독특한 맹세 의식을 맺습니다. 사카즈키는 술잔이라는 뜻이죠. 

  한자로 ‘술잔 배()’를 일본어로 사카즈키라 읽습니다

  야쿠자는 의형제를 맺고 두목을 계승하는등의 행사에서, 술을 잔에 나누어 마시는 사카즈키라는 의식을 통해 폼을 잔뜩 잡습니다원래 정당성이 부족한 조직일수록 정교한 의식을 통한 형식미를 강조하는 법이니까요. (여러분 주위에 형식과 절차만 잔뜩 강조하는 이가 있다면, 적극 의심하셔도 좋습니다)

  

  다카하시와 사카즈키의 연을 맺는 교다이(형제)가 있습니다그러니까 다카하시의 야쿠자 동료인 거죠. 

  다카하시의 교다이기모토라는 남자도 형제를 돕기로 결심했습니다  

   기모토 역시 특별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기모토의 전 부인이 재일 한국인입니다. 

  그녀는 차별반대 시위에 나가기로 결심.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렸죠. 남편 기모토는 도무지 걱정되어 조심조심 아내의 뒤를 쫓았습니다. 

  거기서 헤이트 스피치 데모의  행패에 대극노하고 말죠. 

그리고 바로 카운터스 활동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기모토도 다카하시처럼 담백한 남자입니다.

 다카하시가 대놓고 “나는 오늘만 사는 남자야”라며 허세를 부릴 때, 기모토는 오토코 구미 동료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죠.      

    “(혐한 시위를 멈추려면, 혐한 시위대에게) 모두가 조금씩 화내면 될 일이야.
진심으로 화내면!”


  여기서 주의할 점은 ‘진심으로 화낸다’입니다. 

  우리 같은 보통사람이 아니라, 다카하시나 기모토 같은 전직 야쿠자들이 ‘진심으로 화내는 것’이죠. 

  오토코 구미의 상당수가, 전직 야쿠자 다카하시와 기모토처럼 온몸에 화려한 그림이 넘쳐나는 사람들입니다.    실제 과거가 의심스러운 사람이 많았고, 일부는 야쿠자 출신이었죠. 

  이런 사람들이 모여 “진짜로 무서운 걸 보여주고, 다시는 헤이트 스피치에 나오지 못하게 하자”라고 외쳤습니다. 



복잡한 층위      


 극우 중 최악의 극우인 혐한 시위대와 맞서 싸우는 다카하시. 


  그의 정치적 성향은 어떨까요? 진보적이라거나 최소한 리버럴 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다카하시는 야쿠자였습니다. 일본 야쿠자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국수주의 우익세력과 만나게 됩니다. 야쿠자의 기원을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까지의 낭인 무사집단에서 찾든, 태평양전쟁 패전 후의 생계형 조직범죄에서 찾든, 야쿠자라는 폭력집단은 기본적으로 국수주의적입니다.      


  실제 다카하시는 야스쿠니 신사에 자주 참배를 하러 갈 정도의 우익이었죠. 

  일본 국수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 아침 참배를 하고, 오후에는 혐한 시위대에 맞서 물리적 폭력을 사용합니다. 이게 다카하시의 삶이었습니다.      


  정의로운 일,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 모두가 진보와 리버럴의 성향을 지닌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대게 선한 인생을 살아왔고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죠. 하지만 야쿠자 출신의 우익 청년도 정의로운 일을 실천할 수는 있습니다. 

 차별과 혐오에는 반대하지만, 자신의 우익적 배경은 포기하지 않은 채. 정의로운 일을 하는 야쿠자도 있을 수 있겠죠. 

다카하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조선을 침략해 식민지로 만들고도 그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다" 


"위안부와 징용공 문제 역시 정부나 정치가가 해결하고 싶어 하지 않으니 매스컴에서 조선과 한국 사람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것" 


그러면서 덧붙이죠.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일"


  다카하시는 일제의 조선침략은 사과를 해야 한다면서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카하시라는 문제적 인물을 통해, 우리는 물론 일본의 현재 모습 그리고 보통 일본인이 얼마나 복잡한 층위를 지닌 채 살아가는지. 조금은 짐작됩니다. 

  정의란 결코 단 하나의 선명하고 올곧은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요.       

  

  무턱대고 다카하시를 영웅시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활발하게 카운터스 활동을 하는 도중에, 성희롱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습니다. 정황 증거를 보면 실제 성희롱을 한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이건 이것대로 비난받고 처벌받아 마땅하죠. 

  그렇다고 그의 정의로운 행동까지 폄하당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악인의 선행이라도 선행 자체는 선행이니까요. 


               

에필로그     

다카하시는 오토코 구미를 2013년 결성했습니다. 

오토코 구미는 2015년에 일시적 해산 후, 2016년 다시 재결성.

그리고 2017년 5월에 다시 해산했습니다.

2016년 의미있는 법률이 일본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입니다.(이 이야기는 다음회에)  


다카하시는 2018년 사망했습니다.          



P.S 

다카하시가 주인공인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습니다. 

이일하 감독이 18년에 개봉한 영화죠. 

지금은 유튜브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다음회 '일본의 박주민 의원 이야기 -  헤이트 스피치 방지 법률 제정 고군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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