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최고의 건축가는 건축주

집은 삶을 담는 그릇

by Rachell Consulting

“최고의 건축가는 건축주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집은 삶을 담는 그릇이기에, 그곳에 사는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이 그대로 녹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건축주보다 자신의 삶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겠지요.


저는 개인 주택에 대한 오랜 로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2020년 6월, 눈여겨보던 타운하우스 부지가 매물로 나오자 망설일 틈도 없이 덜컥 계약을 해버렸습니다.


건축을 위한 여유 자금은 없었던 상황이라, 살던 아파트를 전세로 돌리고 토지 담보대출까지 받아서야 토지를 매입할 수 있었습니다. 새 집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임시 거처가 필요했는데, 결국 저렴한 오피스텔을 단기 임대했고, 큰 짐들은 컨테이너 보관 서비스에 맡겼습니다. 남편, 어린 딸, 강아지 라떼와 함께 작은 오피스텔에 옹기종기 살면서, 비용은 아꼈지만 생활은 결코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게 주어진 건축 미션은 명확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집을 짓자.”


시간과의 싸움, 그리고 첫


저희 집 대지면적은 55평입니다. 부지의 최대 건폐율¹과 용적률²을 감안했을 때 총 75평 규모, 3층 주택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주변 자문을 구하니, 3층 주택을 짓는 데 공사 기간만 최소 4개월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겨울철 콘크리트 양생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늦가을 전에는 착공하는 게 좋다는 조언이 돌아왔습니다. 결국 10월을 착공 디데이로 잡았습니다. 구조만 세워지면, 한겨울에도 내부 인테리어 공사는 가능하리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예산은 더 치열했습니다. 전세 자금과 대출을 모두 합쳐 쓸 수 있는 건축비는 최대 4억 5천만 원. 하지만 당시 철근 콘크리트 평당 건축비는 800만 원대가 일반적이었고, 75평 × 800만 원이면 약 6억 원. 제 손에 쥔 예산보다 1억 5천만 원이 모자랐습니다.


결국 네 군데 건축업체와 미팅을 하며, 제 예산 안에서 공사를 해줄 회사를 선택했습니다. 대신 비용 절감을 위해서 두 가지 사항을 협의했습니다.


1. 계획 설계는 건축주가 직접 한다.

2. 마감재는 빠르게 확정해 공사 기간을 최소화한다.


건축 설계는 크게 ‘계획 설계’와 ‘실시설계’로 나뉘는데, 저는 비용 절감을 위해 그중 계획 설계를 밑기로 한 것입니다. 문제는 건축공학을 전공했지만 대학 졸업 이후 설계라는 걸 해본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는 점이었죠. 막막했지만, 차근차근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꿈꾸던 삶을 도면 위에 그리다


계획 설계를 시작하면서 먼저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집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싶은 걸까?”


저는 집순이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밖에서 약속을 잡기보다 지인을 집으로 불러 음식을 나누는 걸 좋아하지요. 그래서 1층은 단순히 ‘공용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을 맞이하고 웃음소리가 퍼지는 공간이어야 했습니다. 주방과 다이닝, 손님이 편히 머물 수 있는 작은 화장실까지 꼭 필요했습니다.

아파트에선 지하주차장이 있었지만, 주택에서는 노상주차가 많습니다. 계절 따라 차 안이 너무 춥거나 더운 것을 떠올리니, 내 차를 지켜줄 차고는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당은 제게 꿈꾸던 공간이었습니다. 상추와 바질을 심고, 라떼가 뛰놀고, 봄가을엔 바비큐 파티를 여는 곳. 캠핑장이 따로 필요 없겠다 싶어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2층은 가족만의 안식처로 계획했습니다. 아늑한 침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거실. 그리고 베란다는 꼭 있어야 했습니다. 반려식물들을 놓고 빨래를 말리거나, 폴딩도어를 닫아 어수선한 모습은 가려두는… 작지만 꼭 필요한 여유 공간이었죠. 침실은 작아도 괜찮았지만, 드레스룸과 욕실은 넓게 하고 싶었습니다. 옷은 늘 수납이 부족했고, 욕실은 단순히 씻는 곳이 아니라 하루의 피로를 풀어내는 힐링의 장소였으니까요.


3층은 어린 딸을 위한 아지트였습니다. 공부방이자 침실, 그리고 작은 미니 주방까지. 물이나 음료 정도는 가까이 둘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은 다락방을 떠올렸습니다. 계단 대신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는 공간. 아이만의 비밀 기지가 되어 줄 그 다락은 설계 과정에서 가장 설레던 상상이었습니다.


집을 짓는 일,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개인주택을 짓는 과정은 단순히 집을 세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나와 가족에 대해 가장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생활은 무엇인지, 가족이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은 어디인지, 무엇을 포기하고 어디에 힘을 줄 것인지.

그 고민의 답들이 하나둘 모여 집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최고의 건축가는 건축주다.”

그 말이 조금은 실감 나던 순간이었습니다.


예산 절약 및 공사 속도 내기|현실적인 팁 3가지

의사결정 창구를 단일화: 건축주 본인의 결재 라인을 짧게.

마감재 조기 확정: 샘플·색상·디테일을 미리 픽스 → 발주 지연 방지.

힘줄 곳/뺄 곳 구분: 주방 설비·수납·욕실처럼 매일 쓰는 핵심은 과감히 투자, 노출 빈도 낮은 부분은 절제.


주거 공간 계획하기

가족의 니즈가 평면을 규정합니다. (예: 넓은 드레스룸, 베란다 폴딩도어, 차고)

건축주는 사용자경험(UX) 디자이너에 가깝습니다.

예산과 공기는 선택과 집중으로 조율할 수 있습니다.

살고 싶은 삶이 선명할수록 설계가 빨라지고 공사가 명확해집니다.


¹ 건폐율: 대지 면적에서 건물이 차지하는 비율

² 용적률: 대지 면적 대비 건물의 총 연면적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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