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미널 오피스(직장 연재소설)

1화 | 시지프스의 형벌

by Rachell Consulting

회의는 반복되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조직은 고치지 않고, 사람을 정리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한다.

그 안에서 사람은 서서히 소모된다.

나는 이 조직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국내 유통 대기업 J.S 인터의 사옥,


매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 같은 회의실

일 년 넘게 논의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영업 1팀과 상품개발팀의 의견은 늘 같은 지점에서 멈췄다.


매출은 정체돼 있었고, 새로운 상품과 신규 거래선의 확보가 필요하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업 1팀은 기존 거래선을 이유로 움직이지 않았고,

그 안에서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는 점점 불분명해졌다.


오늘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회의는 끝났고,
상품개발팀 서은주 과장은 회의록을 작성하다가 체념한 듯이 노트북을 닫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건 회의가 아니야.
거대한 돌을 밀어 올렸다가 다시 내려오는 일을 매주 반복하는 일이야.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그날따라,

회의에 유독 적극적이던 영업 1팀 남 차장이 보이지 않았다.

늘 협의와 상관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늘리며, 회의실의 공기를 소모시키던 그였다.


얼마 후 서은주는 사무실 책상에 멍하니 앉아있는 그를 발견했다.

머리는 기름졌고, 눈은 충혈돼 있었다.

며칠째 집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처럼

그는 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회의… 왜 안 오셨어요?”


서은주의 물음에 남 차장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상자를 하나 꺼내더니

책상 위 물건들을 던지듯 담기 시작했다.

정리라기보다는

서둘러 끝내고 싶은 사람의 움직임에 가까웠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회사를 나갔다.


그날 오후,

사무실 안에 낮은 소문이 퍼졌다.

그의 사생활이 문제 삼아졌고,

회사는 더 이상 이를 덮어두지 않기로 했다는 말도 들렸다.


징계성 퇴사 확정.


평소 남 차장과 함께 담배를 피우며 끈끈하게 어울리던 사람들은

그날만큼은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만이 사무실 안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서은주는 창가에 서서 밖을 바라봤다.

회사는 사람을 버린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밀어낼 이유를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면, 조짐은 분명히 있었다.

남 차장은 영업을 이유로 외근이 잦았지만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는지

동선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전화를 걸면 회사 밖이라기엔 지나치게 조용한 곳에서였다.

연초에 수립한 영업 목표는 이미 따라잡기 어려운 수준으로 벌어졌지만
그는 늘 시장 탓, 상황 탓을 했다.
담배를 피우며 “요즘 영업이 어렵다”는 말을 반복하곤 했다.

서은주는 문득 깨달았다.
이 조직은 문제가 생겼을 때 고치지 않았다.
대신,
문제가 감당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람 하나를 정리함으로써
모든 것이 해결된 것처럼 행동했다.


회의실에서 굴러 떨어진 돌은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다음 주에도 그 돌을 다시 밀어 올리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 돌을 언제까지 밀어야 하는지는
이제 더 이상 확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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