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남부 오토바이 여행 3

폭포는 완전히 자신을 부순 후에야 길을 찾아간다.

by 마당재

처음 여행을 계획했을 때 나는 좀 더 자유를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상해 푸동공항에서 인천공항 입국장으로 들어온 직후, 다시 출국장으로 나갔다. 밤 비행기가 서 있는 캄캄한 계류장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나는 집에 안 가는 것이 아니고 못 가는 것이라고......


회사를 나온 후에는 직장 사람을 만나는 것도 개운치 않고, 지인들과 술자리도 심드렁해졌다. 새로 알아보는 일들도 신통치 않아서 답답하던 차였다. 그렇게 여행은 시작됐다. 갑자기 직장을 그만둔 것처럼.... 세상일이란게 언제나 예상치 못한 것 투성이다. 그렇게 나는 변변한 준비도 없이 무작정 집을 나왔던 것이다.


비행기 안, 나는 빈손인데 옆에 앉은 베트남 여자는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락을 꺼내 먹는다. 야무지게 검정 비닐봉지에 마무리까지 하고 쿨쿨 잔다. 그녀의 잠든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그녀는 얼마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한국에서 돈 버느라, 제대로 쓰지도 못했을 것이다. 잠시후 기내등이 꺼지고 승객들은 하나 둘 잠이 들었다.


회사를 그만둔 지 보름이 되었다. 세상은 여전하다. 나만 마땅히 찾아갈 곳이 없다. 나는 어쩌면 집에서 떨어진 곳에서 마음 놓고 울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감상에 젖어 있는 나에게 그녀의 발 냄새가. 더 적나라게 다가온다 나도 그녀처럼 신발을 벗었다.


이제 나의 냄새도 그녀 냄새와 섞일 것이다. 비행기 안은 음식 냄새와 발 냄새로 나름의 파티가 열리는 것만 같다 풀문파티, 그녀와 나와 또 다른 승객들은 공해상에서 파티를 열고 있는 것이다.


마침 보름이라서 구름 속에 달이 들어갔다가 나온다. 구름 밑에 도시의 불빛들이 군데군데 열도처럼 늘어서서 빛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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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꾸는 꿈은 슬픈 꿈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났다. 직장 생활이 여행이었는지, 여행이 직장생활인지... 직장에서의 시간은 고민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여행이 끝나니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이다. 문을 나서니 또 다른 문이다.


가령 여행지에서도 직장상사 옆에 서 있는 사람을 보면 나는 화가 났다. 그 모습이 한편으로는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였다. 쓸쓸함은 가장 늦게 오는 감정이다. 슬픔처럼 나는 밤하늘 비행기 안에서 여행자의 감정에 젖는다. 아하, 당신은 살아간다는 걸 느꼈군요.^^



오토바이 여행을 시작하며 처음 찾아간 곳은 폭포였다.

'폭포는 아무 두려움도 없이 떨어진다'는 김수영의 말이 생각난다. 그러나 어찌 두려움이 없었겠는가 그렇지만 폭포는 한 번은 떨어져야 한다면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각오하는 것처럼 물줄기로 쏟아지는 것이다. 그래, 그것이 여기까지 밀려온 이유라면 나도 그저 물줄기처럼 떨어질 뿐이다.


폭포는 유속이 서서히 빨라지는 걸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낙하 직전에 깨닫는 뒤늦은 후회처럼, 저항할 수 없는 운명처럼 폭포는 중력에 이끌려 떨어지고 부서진다. 한 번은 완전히 부서져야 다시 태어나는 불사조처럼,


그리하여 폭포는 완전히 자신을 부순 후에야 제 갈 길을 스스로 찾아간다. 어찌 두려움이 없었으리야 그러나 그것이 길의 끝이라면, 다시 새로운 길은 시작될 터이니, 그렇게 떨어져 부서지며 스스로 길을 길을 만들 터이니.


그러므로 폭포는 떨어지기 전에는 절대 울지 않는다. 떨어질 때 크게 한번 소리쳐 지금까지의 길에 뜻을 버리고 과감히 떨어진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임을 세상에 알리기라도 하듯.


폭포 옆으로 난 좁고 급한 경사를 내려가니 폭포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았다. 비가 와서인지 수량이 꽤 많았다.


끊임없이 떨어지는 흰 물줄기들이 지난며칠간 질리게 먹었던 쌀국수 면발 같기도 하고, 좀 전에 들렸던 비단 공장의 누에고치에서 뽑아내는 흰 실 같기도 했다.


어쩌면 폭포는 누에가 고치 속에서 변태를 준비하듯 물줄기를 끊임없이 뽑아내어 우화를 준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나 더 물줄기를 흘려보내야 폭포는 가벼워질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언제쯤 과거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하늘로 훨훨 날아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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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들이 폭포를 향하여 거대한 나무처럼 머리를 두고 엎드려 있다.

경배하듯이 혹은 애도하듯이.....

나는 폭포 아래서 눈을 감고 성모송을 바쳤다.

문득 윤동주가 '모든 죽어가는 것을 대하여 기도한다'는 말의 뜻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슬프지 않은데 눈을 떠 보니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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