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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당재 Aug 17. 2020

베트남 남부 오토바이 여행 3

폭포는 완전히 자신을 부순 후에야 길을 찾아간다.

처음 여행을 계획했을 때 나는 좀 더 자유를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상해 푸동공항에서 인천공항 입국장으로 들어온 직후, 다시 출국장으로 나갔다. 밤 비행기가 서 있는 캄캄한 계류장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나는 집에 안 가는 것이 아니고 못 가는 것이라고......


회사를 나온 후에는 직장 사람을 만나는 것도 개운치 않고, 지인들과 술자리도 심드렁해졌다. 새로 알아보는 일들도 신통치 않아서 답답하던 차였다. 그렇게 여행은 시작됐다. 갑자기 직장을 그만둔 것처럼.... 세상일이란게 언제나 예상치 못한 것 투성이다. 그렇게 나는 변변한 준비도 없이 무작정 집을 나왔던 것이다.


비행기 안, 나는 빈손인데 옆에 앉은 베트남 여자는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락을 꺼내 먹는다. 야무지게 검정 비닐봉지에 마무리까지 하고 쿨쿨 잔다. 그녀의 잠든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그녀는 얼마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한국에서 돈 버느라, 제대로 쓰지도 못했을 것이다. 잠시후 기내등이 꺼지고 승객들은 하나 둘 잠이 들었다.    


회사를 그만둔 지 보름이 되었다. 세상은 여전하다. 나만 마땅히 찾아갈 곳이 없다. 나는 어쩌면 집에서 떨어진 곳에서 마음 놓고 울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감상에 젖어 있는 나에게 그녀의 발 냄새가. 더 적나라게 다가온다 나도 그녀처럼 신발을 벗었다.


 이제 나의 냄새도 그녀 냄새와 섞일 것이다.  비행기 안은 음식 냄새와 발 냄새로 나름의 파티가 열리는 것만 같다 풀문파티, 그녀와 나와 또 다른 승객들은 공해상에서 파티를 열고 있는 것이다.


마침 보름이라서 구름 속에 달이 들어갔다가 나온다. 구름 밑에 도시의 불빛들이 군데군데 열도처럼 늘어서서 빛을 내고 있다

낯선 곳에서 꾸는 꿈은 슬픈 꿈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났다. 직장 생활이 여행이었는지, 여행이 직장생활인지... 직장에서의 시간은 고민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여행이 끝나니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이다. 문을 나서니 또 다른 문이다.  


가령 여행지에서도 직장상사 옆에  서 있는 사람을 보면 나는 화가 났다. 그 모습이 한편으로는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였다. 쓸쓸함은 가장 늦게 오는 감정이다. 슬픔처럼 나는 밤하늘 비행기 안에서 여행자의 감정에 젖는다. 아하, 당신은 살아간다는 걸 느꼈군요.^^



오토바이 여행을 시작하며 처음 찾아간 곳은 폭포였다.

'폭포는 아무 두려움도 없이 떨어진다'는 김수영의 말이 생각난다. 그러나 어찌 두려움이 없었겠는가 그렇지만 폭포는 한 번은 떨어져야 한다면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각오하는 것처럼 물줄기로 쏟아지는 것이다. 그래, 그것이 여기까지 밀려온 이유라면 나도 그저 물줄기처럼 떨어질 뿐이다.


폭포는 유속이 서서히 빨라지는 걸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낙하 직전에 깨닫는 뒤늦은 후회처럼, 저항할 수 없는 운명처럼 폭포는 중력에 이끌려 떨어지고 부서진다. 한 번은 완전히 부서져야 다시 태어나는 불사조처럼,


그리하여 폭포는 완전히 자신을 부순 후에야 제 갈 길을 스스로 찾아간다. 어찌 두려움이 없었으리야 그러나 그것이 길의 끝이라면, 다시 새로운 길은 시작될 터이니, 그렇게  떨어져 부서지며 스스로 길을 길을 만들 터이니.


그러므로 폭포는 떨어지기 전에는 절대 울지 않는다. 떨어질 때 크게 한번 소리쳐 지금까지의 길에 뜻을 버리고 과감히 떨어진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임을 세상에 알리기라도 하듯.


폭포 옆으로 난 좁고 급한 경사를 내려가니 폭포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았다. 비가 와서인지 수량이 꽤 많았다. 


끊임없이 떨어지는 흰 물줄기들이 지난며칠간 질리게 먹었던 쌀국수 면발 같기도 하고, 좀 전에 들렸던 비단 공장의 누에고치에서 뽑아내는 흰 실 같기도 했다. 


어쩌면 폭포는 누에가 고치 속에서 변태를 준비하듯 물줄기를 끊임없이 뽑아내어 우화를 준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나 더 물줄기를 흘려보내야 폭포는 가벼워질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언제쯤 과거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하늘로 훨훨 날아갈 수 있을 것인가?
.
바위들이 폭포를 향하여 거대한 나무처럼 머리를 두고 엎드려 있다. 

경배하듯이 혹은 애도하듯이..... 

나는 폭포 아래서 눈을 감고 성모송을 바쳤다. 

문득 윤동주가 '모든 죽어가는 것을 대하여 기도한다'는 말의 뜻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슬프지 않은데 눈을 떠 보니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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