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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당재 Jul 20. 2020

베트남 남부 오토바이 여행 2

호찌민은 언제나 비가 내린다

여행의 시작은 변화된 경제 감각에서 시작한다


퇴직자가 월급쟁이 시절과 달라야 하듯, 외국에서 화폐에 대한 개념도 환율에 따라 달라야 한다. 


베트남에서 내가 제일 처음 한 것은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는 것 

6천 동이다. 그래 6천 동이 우리나라 돈으로 500원으로 하자 

공항에서 바꿔 온 베트남 돈을 침대 위에 늘어놓고 한참 생각해도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베트남 화폐를 쥐고 있으니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국어처럼 낯설다. 

집을 떠나면 모든 게 서툴고 어렵다. 

어쩌면 베트남 여행은 새로운 출발이자 

앞으로 바뀐 환경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에 대한 

일종의 훈련인 셈이다.




그 점에서 오늘은 60점 정도를 주고 싶다. 

밤 비행기로 도착하여 공항 픽업을 예약했으나 

픽업 장소를 찾지 못했다. (공황에서 공황장애 날 뻔!)


카톡으로 픽업 장소를 찍은 사진을 보내왔는데 

나는 그게 스팸 문자인 줄 알았다. 

그래서 공항 밖에서 기다리다 아무 차나 타고 숙소를 찾아갈 뻔했다. 


베트남 기사들은 사기꾼이 많다던데 괜한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 공항 안쪽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예약 회사를 알려 주는 사람이 있었다. 

물론 언어가 잘 되었으면 알아듣겠지만 

그렇지 못해서 배낭을 메고 공항 앞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인터넷에서 제공된 정보를 찬찬히 살피지 못한 내 잘못이 크다. 

그러나 첫 만남에서 잘못된 정보를 준 공항의 환전직원의 잘못도 있다. 


어쨌든 간에 간신히 숙소로 찾아왔다 

하룻밤 잠을 잘 집을 찾는 것도 긴장된 일이다. 

그동안 나는 너무 안정적인 삶을 살아온 것일까?


여행에 대한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샤워하고 침대 위에 누워 있으니 아까 네 개 주었던 점수보다 

하나 더 주고 싶다. 어쨌거나 잘 찾아왔다. 

돌고 돌아도 결국 제대로 가면 되는 게 아닌가? 

물론 내일 어디에서 뭘 할지 는 잘 모른다.


침대에 누워 바로 잠에 들었고 긴 꿈을 꾸었다. 

낯선 곳에서 꾸는 꿈은 대부분 슬픈 꿈이다. 


꿈에서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집을 나왔다. 

직장 생활이 여행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지난 시간은 고민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여행이 끝나니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이다. 

문을 나서니 또 다른 문이다. 


가령 공항에서 나는 화가 났다. 

오기로 한 픽업 택시를 못 만난 것 보다, 여행 온 직장인 그룹을 보고서 부터다. 

분명 출장이 아닌 무슨 포상휴가를 받아 온 사람들이었다. 


상사 옆에 짐꾼처럼 서 있는 한 사람의 태도와 표정이 나를 화 나게 했다. 

그 사람의 모습에서 예전의 나를 보았던 것이다. 


어쩌면 느낀다는 것은 

가장 늦게 오는 진솔한 감정이다. 


슬픔처럼 

아하, 당신은 살아간다는 걸 느꼈군요.



숙소에서 눈을 뜨니 7시 반이다 한국 시간으로는 일상이 시작할 시간이다
어제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공항 라운지에서 커피를 많이 마신 탓도 있겠으나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서다
일어나자마자 구찌 터널과 메콩강 투어를 예약하러 집을 나섰다. 


투어 사무실은 여행자 거리에 있었다. 

숙소 앞으로 난 좁은 골목을 지나자 로컬 여행사들이 밀집해 있다. 여행 첫날 여행자 거리에 자리 잡는 것은 이런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 군데 들려 가격을 알아보고 조금 큰 사무실로 가서 예약을 했다. 

예약이 끝나고 구글 지도를 검색하자 

오늘 계획이 뭐냐고 직원이 물었다.


'아직.... 아무런 계획은 없어...'  

..........

'우선, 아침밥을 먹을 거야' 


그가 웃으면서 근처 식당을 소개해 주었다. 

쌀국수 식당이었다 값은 76,000 동.(우리 돈 3700원) 

밥을 먹고 서비스로 나온 커피를 마셨는데 아내가 좋아할 맛이었다.


늦은 아침을 먹고 할 일 없이 근처를 돌아다녔다. 

길가의 차량 행렬을 보니까 새삼 여행지라는 것을 느꼈다.

 

길을 걷다가 미용실이 보여서 머리를 잘랐다. 

미용사는 언어에 서툰 외국인에 대한 경험이 있는 듯했다. 

내 흰 머리를 보고 염색을 할 거냐고 물었다. 

물론 OK 했다. 


미용실 의자에 앉아 미용사와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서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문득 중국 여행 마지막 날, 누나가 내 얼굴을 보고 심란한 표정을 짓던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묻자 

내 얼굴이 그런 표정을 짓게 한다고 했다. 

누나와 헤어지면서 생각했다. 

베트남에 가면 제일 먼저  머리를 깔끔하게 다듬어야겠다고. 



상대에게 우울하게 보이는 건 좋지 않다. 만나는 사람마다 가뜩이나 내 상태에 대해 걱정할 텐데.... 

미용실에서 나갈 때는 내 인상도 바꿔지겠지.. 생각하는데 사각 사각하는 가위질 소리에 잠이 들었다. 

어젯밤에 잠을 설친 탓이다.


머리를 깎고 나니 염색을 했다. 

베트남 미용실은 미용 보조와 미용사가 한 팀을 이뤄서 

머리를 깎고 염색을 하는 시스템이다. 


미용사는 미용 보조에게 설명하고 외운 것을 다시 말하게 하여 확인하는 듯했다. 

아마도 다음 방문에서는 

저 미용보조가 내 머리를 깎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미용실에서 인상적인 것은 머리를 감겨주는 자세로 세수까지 시켜주는 것이다. 

수건만 얼굴에 덮으면 영락없이 물고문 받는 자세다. 


어쨌거나 서비스는 끝나고 비용을 지불하는 데 40만 동(우리 돈 19천 원)이나 했다. 

분명 헤어 컷이 10만 동이라 해서 들어왔는데 

염색 비용이 30만 동이라는 건가? 

의사소통이 안 되니 따질 수 없어서 그냥 주고 나왔다. 

팁을 주려 했으나 패스하는 것으로 소심한 복수를 했다. 




이렇게 첫날 일정이 끝났다. 

언어에 능숙하지 않아도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여행사에서 투어 일정을 예약했으며, 머리를 깎았다. 

어쨌든 부딪히면 되는 일이다. 

숙소에 돌아가서 작은 방으로 바꾸고 2일을 더 예약했다(하루에 20달러) 

훌륭하진 않지만 여행자 골목에 있어서 조용하고 싼 편이다.

 

골목에 있는 세탁소에 중국에서부터 가방 속에 가져온 빨래를 맡겼다. 

2킬로에 6만 동, 우리 돈 3천 원이다. 

그리고 다시 침대에 누워서 읽다 만 책을 읽기 시작했다.

화폐 단위가 좀 익숙해진 듯해서 좀 안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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