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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당재 Jul 18. 2020

마스크

전화가 뜸하다. 요즘에는 휴대폰을 충전하면 이틀은 간다. 가장 빈번한 것은 <재난 경고 문자>다.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같은 장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동시에 울린다. 사이렌처럼, 해산하라는 경고 같다. 현관 앞에 있는 마스크를 하나 챙겨서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속에서는 쓰다 만 마스크가 있었다. 요즘엔 마스크가 어디나 있다. 옷에도 가방에도 자동차에도 마스크가 가득하다. 얼마 전까지 줄을 서서 배급을 받듯 마스크 사던 것이 생각났다.


오랜만에 회의를 하러 시민단체 사무실에 갔다. 코로나 19 이후 계속 연기된 회의다. 올봄에 예정된 행사를 미루다 못해 거론도 안 한다. 오늘 의제는 <지속 가능한> 계획 수립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라 해결책이 있을 리 없다. 아무래도 다른 단체의 대응을 살펴보는 정보 교환 수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미룰 수 없는 것이다.   


떡집 방앗간 2층으로 이사한 후, 처음 방문하는 사무실이다. 날이 습하고 더웠다. 사무실 한쪽에는 아직도 풀지 못한 이삿짐이 쌓여 있다. 십수 년째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후배가 나를 반긴다.  아직 사람들은 모이려면 시간이 있다. 언제나 그렇듯 오늘 회의도 늦게 시작할 것이다.


시민운동을 하는 후배는 늦도록 혼자 산다. 지난겨울에 만났을 때 내 가죽 장갑을 만지며 부러워하던 게 생각났다. 이삿짐을 직접 날랐다는 그의 손이 거칠었다. 내가 쓰던 것이라 선뜻 주기 망설였다는 말을 하기엔 시간이 너무 지났다. 몇 번이나 돈을 해달라는 그의 부탁도 모두 거절한 터였다.  


사무실은 예전에 기타 교습소를 하던 자리라 했다. 전 주인의 성품을 보여주듯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벽면에 가득했다.
"인테리어를 직접 했데요."
나는 일 년도 안 되어 직접 꾸민 가게를 넘기고 사라졌다는 기타 교습소 원장을 생각했다. 그가 기타를 치던 손으로 직접 만들었을 장식용 소품을 만져보았다. 사무실 한쪽에는 기타 한 개가 기대고 있었다. 남겨진 기타의 울림통에는 교습소를 접기로 결심한 기타리스트의 고독한 목소릴 품고 있을 것만 같았다. 


회의 시간이 다 되었는데 사람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나는 후배를 보면 묻고 싶은 말이 턱 밑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그저 대학 시절 얘기와 옛사람들의 근황을 믹스 커피를 마시며 나눴다. 언제부턴가 우리가 만나서 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오래된 것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 두 명씩 사람들이 도착 왔다. 


회의에서 예전에 다니던 회사 동료들을 만났다. 코로나 유행 때문에 악수는 안 했다. 사람들이 사무실에 들어올 때까지는 모두 마스크를 했는데 정작 테이블에 앉으면 마스크를 벗었다. 모두들 표정이 어두웠다. 서로 눈치를 본다. 할 얘기가 있었지만 서로 간신히 참고 있는 듯 했다. 회의는 여전했다. 시시껄렁한 얘기와 정보를 나눴다. 내 차례가 되어서 나도 몇 가지 생각을 전달하고 끝냈다. 어차피 결론이 없는 얘기였음으로 어떨 땐 침묵하는 것이 좋다. 

저녁시간이 되자 회의를 끝내고 근처 식당으로 몰려가 밥을 먹었다. 식당은 사람들로 붐볐다. 대부분 마스크를 턱 아래로 걸치고 밥보다 술 마시는데 열중했다. 모두들 어떤 사람에 대한 얘길하느라 열중해 있었다.  가끔 집합 금지 경고 문자가 동시에 울렸지만 몇이 무심하게 휴대폰을 보았을 뿐이다. 밥을 먹으면서 참석자 몇은 외국을 다녀왔고 또 누구는 형편이 더 어려워졌음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아내가 참석을 말렸던 것이 생각났다. 어떨 때는 침묵할 필요가 있다.


오랜만에 술을 많이 마셨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거리에 버려진 마스크들을 보았다. 

여름밤인데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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