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날이 많아지면서 자주 빌라 옥상에 올라간다. 난간 아래에는 이사 간 앞 집 여자가 두고 간 된장 항아리가 있다. 항아리는 걸음마를 할 만한 아이 크기인데 먹다 남은 된장이 반 남아 있었다. 뚜껑은 깨져서 구더기가 슬었고 참나무 잎 몇 장이 덮여 있었다.
뚜껑 없는 항아리와 나는 옥상에 혼자여서 자주 항아리 옆에 앉았다 오곤 한다. 항아리 옆에 앉아 있으면 햇볕과 바람과 된장 냄새와 바람에 댓잎사귀가 부비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나는 눈을 감고 희미해지는 장 냄새를 맡는 것과 바람이 대숲 지나가는 소리를 좋아한다.
가끔은 산책 삼아 산에 간다. 오늘은 포수들이 멧돼지를 잡는다 하여 돌아왔다. 오랜만에 올라간 옥상에는 초록색 방수 페인트가 벗겨진 군데군데 풀이 자라고 있었다. 나는 시멘트 바닥 속으로 뿌리를 뻗는 풀씨와 앞 산을 횡대로 헤집고 다닐 포수들과 대나무 숲을 헤멜 멧돼지 가족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 힘든 시기를 모두 잘 넘겼으면 하고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