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문 파티를 꿈꾸며
풀문 파티를 꿈꾸며
베트남 남부 오토바이 여행 1
작년 이맘 때였다.
나는 호찌민으로 가는 저녁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처음 여행을 계획했을 때, 나는 좀 더 자유를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상해에 갔다가 공항 입국장에서
바로 출국장으로 다시 들어갔다.
갑자기,
직장에 내 자리도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난 후였다.
공항에서의 내 행동은 충동적이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집에 안 가는 것이 아니고
못 가는 것이라고.
사실 무작정 집을 떠나 온 것은
직장을 그만두게 된 것처럼 갑작스런 일이었다.
언제부턴가, 옛 직장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개운치 않았다.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는 일들도 신통치 않아지면서
지인들과의 술자리도 심드렁해졌다.
그리고 변변한 준비도 없이
나는 여행을 시작했다.
베트남으로,
베트남 전통 의상을 입은 승무원들이 기내식을 나눠줄 때
옆에 앉은 베트남 여자는 편의점에서 샀을 법한 도시락을 꺼냈다.
그녀는 기내식이 제공되지 않은 할인 티켓을 샀으리라.
아마도 엄마나 아빠에게 드릴 용돈과 아이에게 줄 선물을 장만하느라
스스로에게 인색했을 것이다.
가족들은 저녁을 먹었을 시간.
나는 맵고 아린 겉절이 김치를
갓 지은 밥 위에 얹어 먹을 생각만으로 입맛을 다셨다.
저녁식사를 마친 승객들은 수면모드에 들어갔다.
이성이 잠들고 감성은 깨어나는 시간.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떠난 여행이다.
‘겉으로는 바빴지만 실상은 건조하고 무료한 날들의 반복’ 같은 직장 생활이었다.
어디쯤 왔을까?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온 소금인형처럼’
바쁘고 복잡한 일상을 접고 운명의 시간에 전부를 건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떠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반복되는 일상의 비루함을 견딜 수 없을 때,
우리는 ‘저곳’을 상상하고 여행을 떠난다.
얼마나 됐을까?
직장을 그만두면 복귀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휴가도 마음대로 못 쓰고 살았다.
직장에서 버틴다는 것은 조금씩,
비겁함을 견디는 일.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겉과 속을 열두 번이라도 뒤바꿀 수 있는 사람들’과
적당히 거짓을 교환하는 일.
어쩌면 여행은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떠나는 것일까?
이렇게 버티다가는 돌처럼 굳어버릴 자신을 견딜 수 없을 때
여행은 떠나는 것이다.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다.
패키지는 절대 아니고, 그냥 휴양하는 것도 아닌, 일종의 '포스트모던 투어리즘' 취향?
쉽게 말하면 일종의 '로컬의 재발견'인 셈인데... 대중교통 말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방법을 찾다가 비행기 안에서 읽은 여행책자에서 발견했다.
'이지라이딩 클럽'
회원제로 운영되는 바이크 클럽 같은 것.
호기심이 들었다.
옆 좌석의 그녀는 도시락을 말끔히 비우고 신발을 벗는다.
비좁은 이코노미석 아래에서 원초적인 냄새가 올라왔다.
감상을 깨울 만큼 적나라하다.
실내등이 꺼진 시간.
밤 비행기의 안과 밖은 캄캄하다.
객실 안은 깊은 바닷속처럼 조용해졌다.
김완준의 소설 <더 풀문파티>를 읽었다.
혼자였으나 외롭지 않았다.
따뜻한 밤바다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 것 같았다.
이윽고 나도 신발을 벗는다.
그녀와 나의 냄새는 어둠과 섞여 객실을 떠돌 것이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이 흐르는 것 같다.
아픔을 가진 것들이 비로소 깨어나는 시간.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어쩌면 마음 놓고
울 곳을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 아래, 지상의 불빛들이 열도처럼 늘어서서 빛났다.
풀문파티가 막,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