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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당재 Mar 23. 2022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딸에게

삼월에 대학에 입학한 딸을 

기숙사에 데려다주었다

먼 길이어서, 아내와 아이는 잠이 들고

나는 라디오를 켰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스피커는 칙~칙 거렸고

가끔씩 주파수를 바꿔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올 때 

터널이 연속되면 조바심이 났다

휴게소에 들르자  딸이 말했다.

‘집에 가방을 두고 왔어요. “

딸은 화장품 가방과 얼마 전 남자 친구에게 선물 받은 

제 몸 만한 곰인형은 챙기면서

학용품이 든 가방은 두고 온 것이다.


대학 기숙사 앞마당은 붐볐다.

자식들의 짐을 운반하는 이는 신입생 학부형이고

손수레로 택배 상자를 나르는 이들은 재학생일 것이다

학부형들의 얼굴에서 보이는 

‘이제 한 고비 넘겼다’는 안도감과 대견함 같은 것이 

내게도 보일 것이다.


짐을 내려주고 나니 3시가 다 되어

늦은 점심을 먹으러 대학가에 나갔다.

대학생들이 제법 찾을 법한 식당을 찾아서

김치찌개와 불고기 백반을 시켰는데

맛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남겼다. (내 사전에 드문 일!)

나도 뭐든지 맛있게 먹던 시절이 있었다.


밥을 먹고 나니 딸은 다시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내일 오후 1시 수업이어서 

집에서 자고,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오면 된다고 했다.

겉으로는 놓고 온 가방을 가져 올 셈이라고 하지만

얼마 전에 사귄 남자 친구를 보고 싶은 것이다.

어제까지 매일 만난 녀석을 

하루도 안 되어 다시 만나러 

그 먼 길을 왕복하겠다는 딸의 말을 들으니 

어이가 없고 한편으로 괘씸했으나, 

내색하지 않고 아내에게 결정을 물었다.


딸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열정을 다한다.

내가 강의를 땡 치고 술 마시고, 데모하러 나간 것처럼

딸도 강의를 땡땡 치고 연예할 공산이 크다

그래도 딸은 행복이 목표가 아니라,

자신이 지금 원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추구하는 데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감정이라는 걸 아는 듯하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려면 받침이 있어야 한다.

딸을 키우며 여러 개의 터널을 통과했다. 

어떤 것은 언제 끝날지 모를 정도로 지루하고 길었다.

그래도 함께 있어서 지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가 딸에게 든든한 받침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내와 함께 꽃처럼 키웠다. 

이제 너를 세상에 보낸다.

정의롭고 마음 따뜻한 민주시민이 되어

여럿이 함께 아름다운 꽃을 피우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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