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먹고 싶어서
아침에 눈을 떴다.
밖은 아직 어두운데
나 홀로 부엌을 서성이며 국을 덥힌다.
물을 끓인다, 야단을 한다.
오직, 약을 먹기 위해서다.
.
팽목항에 다녀온 다음 날
앓았다.
일찍 잠에 들었다가 아파서 밤 12시에 깼다.
두근거리며 코로나 검사하니
'음성'이 나왔는데 다음날 아침에도
여전히 아팠다.
지인에게 들은 데로 '목젖을 쑤셔서'
다시 검사를 하니 '양성'이다.
병원에 가서 '확정' 받았고
긴 여행이 끝났다.
집에 돌아와 대여섯 개의 알약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한참 지나 약 기운이 돌면
머리가 핑 돌며 피그르~ 잠에 빠졌다가
다시 정신이 드는 걸 반복한다.
백열등이 바람에 왔다 가는 것처럼
아까의 생각과 지금의 정보가 겹쳐졌다
이어지고 다시 끊어진다.
모니터를 보다가 의자에 앉은 채로
잠에 빠졌다가 목이 쿡쿡 쑤시면 정신이 든다.
'이러다가 말을 못 하게 될지도 몰라'
끼 때가 되길 기다렸다가
국물에 밥을 말아먹고 약을 먹는다.
어쩔 땐 언제 약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
약을 먹으면 예리한 칼날로
목젖을 찌르는 것 같은 아픔은 없으니까
수시로 약을 먹으려고 한다.
전주집에 있는 아내는 내가 힘없어하니까
약을 가려서 먹으라고 하지만
핑그르르 돌며 쓰러져 자는 게 아픈 것보다 좋아서
나는 그냥 다 먹는다.
어제저녁에 문 앞에 음식이 놓여 있었고
또 오늘 점심에도 고기와 국거리, 주전부리 등을 놓고 간
고마운 이들이 있다.
내게 다녀간 이들에게
먼지 낀 유리창 안에서 손을 흔들며 배웅한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백열등처럼 왔다 갔다 한다.
멀리 사는 k도 확진을 받았다고 하는데
k는 기저질환이 있어서 예방접종을 못했다.
그와 제주 여행을 했던 지난 가을이 생각난다.
가을비가 예쁘게 내리는 사려니 숲길을 같이 걸었다.
며칠 지난 것 같은데 겨우 하루 지났다.
.
k나 세월호 유가족처럼 아픔을 겪었던 이들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으면 한다.
세상이 너무 불공평한 것 같으니까.
그러나,
아픔도 단련되려는지
나는 입을 꼭 다물고
고기를 구워서 꼭꼭 씹어 먹는다.
굿~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