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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당재 Oct 01. 2022

응급실에서

  

올해에만 3번째다. 거동이 불편해진 아버진 자주 넘어지셨고 그때마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왔다. 누군가는 곁을 지켜야 했기에 간병은 직장이 없는 내 몫이 되곤 했다. 이번엔 감을 따다가 넘어지셨다고 했다. 응급실은 여기저기 비명소리와 간호사를 부르는 소리가 여전했다.

잠시 후 노부부가 들어왔다. 침대에 누운 할아버지는 소리치는 게 습관인 듯해서 다른 비명소리를 모두 잠재울 정도였다. 보호자로 따라온 작은 체구의 할머니는 머리가 헤성해서 옆 침대에 누워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큰 목소리로 부르는 '00엄마'의  00는 분명 오늘도 오지 않을 자식의 이름일 것이다.      


저녁 무렵 형이 병원에 들렸다. 잠시 집에 들러 샤워를 하고 잠깐 누웠는데 간사한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출근할 형과 교대를 해야 하는데 잠깐이라도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응급실 밖에서 만난 형은 이미 할아버지의 고함에 질린 표정이었다. 그의 유일한 보호자인 할머니도 어디론가 가버렸다고 했다. 형은 나를 보며 해방된 표정이었다. 형에게 받은 보호자 명찰을 목에 거는데 목이 무거울 지경이었다. 형은 푹신한 온수 침대가 있는 그의 집으로 서둘러 가고 있을 것이다. 응급실 문 밖에서도 노인의 절규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노인은 팔 한쪽을 제외하고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는 담요를 더 갖다 달라, 베개를 다리 밑에 괴여 달라 끝없이 요구했고. 가끔 곡을 하듯 흐느꼈다. 간호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응급실의 밝은 전등 아래 비명과 고함과 발자국 소리가 오고 갔다.  아버진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노인이 아무리 불러도 그의 보호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도 오지 않아도 그는 여전히 소리쳤다. 노인의 간병은 내 몫이 되었다. 차라리 그의 요청을 들어주는 게 나을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담요를 말아 다리 밑에 괴어주거나 친절함을 가장한 교양인의 목소리로 그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위장된 것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새벽 5시가 넘자 병실 사람들은 조금씩 날카로워졌고 나는 그에게 응급호출벨 누르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는 호출벨을 누르는 것보다 큰소리로 부르는 것을 선호하는 부류였다. 우리는 얼굴도 본 적 없는 그 아들 이름을 계속 들어야 했고, 병실의 어느 누구도 그에게 대꾸하지 않았으므로 결국 나는 폭발했다. 그에게 성큼 다가가서 말했다.

"선생님! 제가 아까 벨 누르라고 하셨잖아요" 분명 내 목소리엔 응급실에서 밤을 새운 짜증과 피곤과 화가 묻어 있었을 것이다.  

잠든 것 같은 아버지가 눈을 떠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아버지께 대답했다.

"뭐라고 하셨어요?"

아버진 다시 힘없는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저 환자 가만 놔둬라"     


아버진 지금껏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목소리를 높여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겉으로만 약자 편에 선 것처럼 할 뿐이었다. 내 옆에 비명을 지르는 노인의 목소리를 못 듣는 것처럼 주변을 빙빙 돌뿐이었다.

6시가 되자  한 간호사가 큼직한 쿠션을 가져왔다. 8시간 동안 소리친 노인의 작은 소망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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